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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이 숨겨놓은 것들…‘헤어질 결심’ N차 관람 부른다
한겨레제휴기사 2022-07-05

[한겨레]

박해일·탕웨이 캐스팅 왜? 정훈희·송창식 ‘안개’ 왜? 산과 바다가 상징하는 바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이 관객들의 호평을 받으며 엔(n)차 관람 바람까지 일으키고 있다. 씨제이이엔엠(CJ E&M) 제공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 개봉 첫 주말을 지나면서 50만 관객을 넘겼다. 폭발적인 흥행세는 아니지만, 씨지브이(CGV) 골든에그지수 93%, 롯데시네마 평점 9.0점을 기록하는 등 실관람객 사이에서 호평이 넘친다. “봐도 봐도 또 보고 싶은 영화”(네이버 wi****) 등의 평과 함께 엔(n)차 관람 바람도 불고 있다. 여러번 볼수록 숨은 의미와 상징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헤어질 결심>을, 박 감독과의 화상 인터뷰를 바탕 삼아 핵심 열쇳말로 풀어봤다.

박해일과 탕웨이

박 감독이 영화 구상 때 먼저 떠올린 건 평소 좋아하던 스웨덴 추리소설의 주인공 마르틴 베크 경관이었다. 그처럼 “점잖고 조용하고 깨끗하고 예의 바르고 친절한 형사”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때 떠올린 배우가 비슷한 이미지의 박해일이었다. 지금껏 한번도 작업해보지 않은 박해일에게 출연을 제안하고, 정서경 작가와 함께 박해일에 거의 맞춤형으로 각본을 써나갔다. 남주인공 캐릭터는 진즉 정한 반면, 여주인공 캐릭터는 백지상태였다. 박 감독은 오랜 숙원사업이던 탕웨이 캐스팅을 떠올렸다. 정 작가와 상의해 여주인공을 한국말 잘 못하는 중국인으로 설정했다. 탕웨이를 위한 맞춤형이었다. 결과적으로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애달프게 속으로 삭이는, 그래서 더욱 여운이 긴 사랑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이 관객들의 호평을 받으며 엔(n)차 관람 바람까지 일으키고 있다. 씨제이이엔엠(CJ E&M) 제공

정훈희·송창식의 ‘안개’

마르틴 베크 경관과 함께 영화의 모티브가 된 또 하나는 이봉조 작곡가가 만든 노래 ‘안개’였다. 박 감독이 어려서부터 좋아한 노래였는데, 정훈희 버전만 알다가 트윈폴리오(송창식·윤형주) 버전을 뒤늦게 알게 됐다. “‘안개’가 정훈희씨 목소리로 나오고, 송창식씨 목소리로 또 한번 나오는 영화를 만들면 어떨까” 하며 안개가 많이 끼는 고장을 배경으로 한 로맨스물을 구상했다. 친절한 형사가 나오는 수사극과 피의자와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물의 결합은 이런 과정을 거쳐 태어났다. 영화 중반에 먼저 정훈희 버전 ‘안개’를 넣었다. 그러고는 영화 마지막 안개 자욱한 곳에서 해준(박해일)이 서래(탕웨이)를 찾는 장면에 트윈폴리오 버전 ‘안개’를 넣어봤더니 “관객을 너무 울리는” 분위기가 됐다. 게다가 남자 목소리의 노래는 관객이 해준에게만 감정이입 하게 만들었다. 결국 트윈폴리오 버전을 뺐다. 대신 영화가 다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 자막이 올라갈 때 정훈희와 송창식이 함께 부른 듀엣 버전이 흐르도록 했다. 박 감독은 “듀엣 녹음을 성사하기까지 엄청나게 공들였다”며 “녹음 현장에서 너무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났다”고 떠올렸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이 관객들의 호평을 받으며 엔(n)차 관람 바람까지 일으키고 있다. 씨제이이엔엠(CJ E&M) 제공

산 그리고 바다

<헤어질 결심>은 산에서 시작해 바다로 끝나는 영화다. 서래의 남편이 바위산 꼭대기에서 떨어져 숨지는 사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해준은 직접 산꼭대기에 올라 사건을 수사한다. 하지만 해준과 서래 모두 산보다 바다를 좋아하는 공통점을 지닌다. 영화 마지막에는 바다에서 주요 장면이 펼쳐진다. 박 감독은 “높은 산에서 시작해 바다로, 그냥 바다도 아니고 아예 구덩이로 들어가는 하강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며 “산과 바다가 각각 뭔가를 상징하기보다는 둘이 합쳐져 하나의 세계를 뜻한다”고 말했다. 영화 내내 산과 바다 이미지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둘의 경계가 모호해지기도 한다. 서래 집의 청록색 벽지가 대표적이다. 산처럼 보이기도, 파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서래는 유독 청록색 옷을 자주 입는데, 이는 바다(청색)와 산(녹색)을 섞은 색이다. 이런 중첩적인 이미지는 안개와도 일맥상통한다. 이처럼 경계가 흐린 모호함이야말로 이 영화를 꿰뚫는 열쇳말이다.

한겨레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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