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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AN #7호 [인터뷰] 호야 세이요 감독 “빛과 어둠 사이의 그라데이션을 표현하고 싶었다”
정예인 사진 백종헌 2022-07-13

<외계인 아티스트> 호야 세이요 감독

소년의 망상이 현실이 된다. 학교 폭력을 당하던 중학생 호스케는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만화를 그린다. 미국의 스파이 죠지 와타나베가 랩으로 교리를 설파하는 허무달마를 암살하기 위해 K시에 침투한다는 내용의 만화다. 영화는 호스케의 상상이 실제 세계와 겹치는 순간을 포착한다. 호야 세이요 감독은 선과 악, 현실과 망상 사이의 경계선이 불분명한 중학생의 감각을 극화하기 위해 만화의 서사와 소년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교차 편집하는 전략을 택했다. 컬러 화면의 만화와 흑백 화면의 현실이 반복해서 포개어지면서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판단을 유보케 한다. 빛과 어둠을 선명히 구분 짓기보다 그 사이의 스펙트럼을 살펴보고 싶었다는 호야 세이요 감독은 소년의 순수하고도 위험한 상상력에 깊이 매료돼 있다. 1999년생인 호야 세이요 감독과 만나 그가 구축한 재기발랄한 세계에 대해 물었다.

-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부천 초이스: 장편’ 부문에 초청됐다. 소감을 전한다면.

= 오늘(7월12일) 관객과의 대화가 예정되어 있다. 한국 관객과 만나게 돼서 기쁘면서도 긴장된다. 한국에 방문한 것은 처음이어서 관광을 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없어 아쉽다. 부천 근처를 돌아보고 영화제 상영작을 관람하는 것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 한다.

- 2020년 가나자와 영화제에서 <쿨한 오빠는 왜 공원에서 흙무덤을 만들지 않을까>로 ‘기대의 신인감독’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수상 덕에 이번 작품을 제작할 수 있다고 들었다. 전작에 대해서도 소개한다면.

= 하늘을 나는 능력을 가진 대학생이 주인공인 영화다. 무차별적인 폭력과 살육이 자행되는 현실과 개인적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청년의 망상이 그를 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는 <외계인 아티스트>와 연결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주인공이 평행세계와 유사한 망상의 세계를 자신 안에 구축하고, 신의 관점에서 세상을 굽어본다는 전제가 닮아 있다.

- 교토대학교에서 종교학을 배우면서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들었다. <외계인 아티스트>에도 종교적인 색채가 묻어나는데.

= 전통적인 일본의 선불교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종교 철학을 영화 안에 노골적으로 담아내고자 한 것은 아니지만, 철학을 배우며 드문드문 떠올랐던 아이디어가 감각적인 수준에서 녹아든 듯하다. 추상적인 이야기일 수 있는데, 어둠이 극한으로 향하게 되면 풍성한 빛으로 전환되는 지점을 포착하고자 했다. 빛과 어둠이라는 이항대립적인 구도에서 벗어나, 빛과 어둠 사이에 있는 그라데이션을 표현해 세계의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 실제 래퍼로 활동 중인 료후 카르마가 허무달마 역을 맡았다.

= 료후 카르마는 프리스타일 랩배틀로 유명한 래퍼다. 그의 음악에 이끌려 트위터 메시지로 캐스팅 제의를 했고, 긍정적인 답을 줘 함께 할 수 있었다. 랩은 ‘말을 내뱉는 행위’의 재미를 지닌 장르다. 료후 카르마는 독특한 일본어 랩을 구사하는 힙합 아티스트다. 특히 누가 노래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가사가 여러 겹으로 쌓여 들리는 음악을 만든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료후 카르마의 랩 속에서 중첩된 목소리들이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느껴졌고, 그것이 <외계인 아티스트>의 세계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 애니메이션이나 사진을 내러티브 사이에 삽입하는 등 다양한 기법을 영화에 녹여내고자 시도했다.

= 솔직히 말하면 영화의 마지막에 들어간 애니메이션 파트는 CG를 활용한 실사로 제작하고 싶었다. 그러나 예산이나 촬영현장의 환경을 고려하는 과정에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방법으로 바뀌었다. 사진의 경우에는 아이들의 표정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애니메이션과 매끄럽게 연결할 수 있는 방식이어서 의도적으로 택한 부분이 있다. 픽션의 차원을 끌어올려 강조점을 찍기 위해서 사진을 활용했다.

- 이번 영화에 삽입된 애니메이션을 1개월가량 혼자서 작업했다고 들었다. 그 결과물로 전시도 했다고. 이전부터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았나.

= 애니메이션보다는 만화를 좋아했다. 특히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를 좋아해서 어릴 때부터 많이 읽었다. 영화 속 호스케처럼 줄곧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소년이기도 했다. 영화를 시작하고 나서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지만 이번 영화를 만들며 애니메이션을 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여 다시 그림을 그렸다. 처음에는 그림 연극처럼 여러 장의 그림을 연속적으로 노출시켜 하나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방식을 취하려 했다. 그런데 그리다 보니 그림이 움직이는 기쁨을 느끼게 돼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게 됐다.

- 잔혹한 아이들의 세계에서 도피하기 위해 만화를 그리는 호스케에게 눈길이 간다.

= 학교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지내는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를 다루려 했다. 사회적인 억압을 받으며 왕따를 당하는 호스케는 이 세상이 전부 사라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소년이다. 호스케를 통해 아이들이 순수하게 만들어가는 세계는 새로운 가능성을 지니면서도 위험한 일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는 예술가의 태도와도 맞닿아있는 지점이다. 예술가들은 때로 신의 시점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기도 한다. 조금은 독특한 호스케라는 캐릭터를 통해 예술가의 일면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 태평양전쟁이라는 민감할 수도 있는 소재를 들여왔다.

= 주인공인 호스케가 중학교 생활에서 갖고 있는 불만을 투사해서 만화를 그릴 때 태평양전쟁을 배경으로 차용한다. 호스케나 나 같은 세대에서 전쟁은 종결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픽션의 세계에서 전쟁을 소비하는 것은 여차 방심하면 큰 죄악으로 변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영화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역사적인 문제가 끝났다는 식으로 말하는 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직접 말하기보다 그저 보여주고 싶었다.

- 앞으로 만들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 종교, SF, 호러를 담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 우주에서 날아온 우주인과 땅 속에 사는 존재들의 싸움과 그 사이에 말려드는 인간의 이야기를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와 연결하고, 이를 호러영화로 만들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