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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넷플릭스 ‘글리치’③ 배우 전여빈, “점점 머리가 뻗치는 모험”
김수영 2022-10-13

전여빈은 투명하다. 무엇에든 금세 투사되고 쉽게 물드는 투명함이다. 상실이나 분노가 닿으면 감정을 증폭시켜 깊은 슬픔에 휩싸인 <멜로가 체질>의 은정이 되고, 비정한 눈빛으로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복수에 나서는 <낙원의 밤>의 재연이 된다. 강인함과 유머를 더하면 늘 어깨 펴고 당당하게 걷는 <빈센조>의 홍차영이 되기도 한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가지각색으로 물들어 나타났던 전여빈이 넷플릭스 드라마 <글리치>의 홍지효로 돌아왔다. 남들만큼 평범하게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지효는 외계인에게 납치된 남자 친구를 찾으러 이제껏 가보지 않은 방향으로 뛰어나가는 여자다. UFO와 외계인, 이 멀고 낯선 이야기가 홍지효가 된 전여빈을 통해 단단한 설득력을 갖는다. 먼 얘기가 아니라 여기, 우리 내부의 이야기라고 믿게 만든다.

-<글리치>의 어떤 매력에 합류를 결심했나.

=4부까지 대본에는 지효가 어떻게 달려나갈지, 모험의 끝에 무엇이 있을지 명확하게 그려져 있지 않았다. 약간의 두려움과 그보다 큰 호기심을 안고 감독님과 작가님을 만났다. 감독님이 들려준 <글리치>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UFO를 좇는 구체적인 모험이었다. 지효가 모험을 하며 동료를 얻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때마침 드라마 <빈센조>를 마치고 새 작품을 생각하던 중이라 마음이 약간 떠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에너지가 고갈된 채 내 일의 중심에 대해 생각이 많던 차라 감독님의 말이 내 마음을 건드렸다.

-지효의 모험을 마치고 촬영 전 기대한 것들을 얻었나.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모험이라 이러다 우주 밖으로 솟구쳐 나가면 어쩌지 하는 우려와 기대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있었다. 지효와 함께 나 역시 한 단계 성장한 느낌이 드는 날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결말이 만족스러웠다. 글이 가진 잠재력이 영상으로 충분히 표현됐다. 시사하고 나니 마음이 먹먹하면서 여운이 남았다.

-극중 지효는 외계인을 자주 본다. 촬영할 때 외계인이 실제 눈앞에 있었나.

=예고편에 나온 외계인과 거의 비슷한 외형의 옷을 입은 배우가 서 있었다. 영상에서 구현된 것과 같은 귀염둥이가 눈앞에서 웃어줬다. 배를 만져보고 싶고 악수해도 무섭지 않을 것 같은, 내가 어릴 때 상상했던 딱 그런 모습의 외계인이었다. 그래서 현장에서 바로 반응할 수 있었다. 친숙하지만 상상 속에 있어야 할 게 왜 내 눈앞에 나타났지. 왜 나를 쳐다보지. 현장에서 느낀 이질적인 기분을 그대로 표현했다.

-지효는 겉보기에 쉬운 인생을 살고 있지만 남모를 고민을 안고 있다. 얼핏 평범해 보이는 지효의 어떤 특징이 이 캐릭터를 선명하게 만들었나.

=지효는 복잡한 친구다. 평범하게 지내려고 노력하지만 노력할수록 자신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게 된다. 지효는 자기 마음을 무시하고 속이지만 시국(이동휘)의 실종을 겪으면서 더이상 스스로를 기만하지 않게 된다. 의심을 내버려두지 않는 점이 홍지효를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정면으로 질주해 그간 쌓아온 삶의 안정성과 평범성을 던지는 과감한 면모도 있다. 평범하다는 말이 있고 그에 걸맞은 이미지가 떠오르긴 하지만 과연 평범한 사람이 있을까? 먼발치에서 떨어져 보기 때문에 평범하고 무사해 보이는 것뿐이다. 외계인을 보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효는 우리 모두와 닮은 보편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 친한 친구들도 나에게 말 못할 고민을 안고 있을 테고 나 역시 나만의 사정이 있으니까.

-극중 웰시코기 스타일이라고 불린 지효의 스타일도 흥미롭다. 단발에 안경, 내추럴한 화장에서 무심하면서도 당찬 지효만의 개성이 묻어난다.

=내가 떠올린 지효는 귀엽고 엉뚱한 면과 결단력을 가진 이미지였다. <빈센조>의 홍차영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세팅된 사람이었잖나. 홍차영 되기를 멈추고 홍지효가 되려고 하니 모든 게 어색해지더라. 의상, 분장, 헤어 각 분야 전문가과 긴 논의를 했고 수많은 테스트를 거쳤다. 홍조나 주근깨를 드러내 민낯처럼 보이되 너무 거칠지 않게 하기로 했고, 얼굴에 어두운 분위기를 더해 어딘가 골몰해 있는 인상을 만들고자 했다. 짧은 머리로 모험을 시작하기 때문에 그 길이를 계속 유지해야 했는데 지효는 계속 어딘가로 달려나가니까 그 기세를 담아 점차 머리가 뻗쳐도 되지 않을까? (웃음) 이렇게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친숙하고 개성 있는 홍지효 스타일을 만들어갔다.

-<빈센조>의 김희원 감독부터 <글리치>의 노덕 감독까지 주목받는 감독과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에는 나나 배우와 함께 주연을 맡았는데 이렇게 여성 창작자가 주요 역할을 맡은 현장은 드물다.

=데뷔작인 단편 <최고의 감독>의 문소리 선배님부터 시작해 나에게 리더는 대부분 여성의 상으로 떠오른다.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봐도 나를 이끌어준 영어 선생님도 여성이었다. 당연하게 의지해온 엄마가 떠오르기도 하고. 으레 리더는 여성의 얼굴이었다. 일부러 그런 현장을 고른 것은 아니지만, 현장을 경험하고 이 산업을 살펴보면서 내가 만난 리더와 함께한 경험이 엄청난 행운이라는 걸 알게 됐다. 선장님이라고 부르고 따르던 김희원 감독님은 매사 온몸으로 부딪히는 멋진 분이다. 노덕 감독님은 거대한 산처럼 배우들을 품어주신다. 나도 이들처럼 멋진 여자, 나아가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내 생각을 잘 정립하고 꾸준히 내가 할 일을 해나가면 언젠가 이들을 닮아 있지 않을까, 막연하면서도 구체적으로 꿈꾸게 된다.

-<글리치>에서 주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믿음이다. 종교적 믿음뿐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믿음 역시 중요하게 다뤄진다. 커리어 없이 오직 믿음으로 버텨야 하는 신인배우의 시간을 거쳐 여기까지 왔다.

=그런 시기가 있었다. 그저 기회의 날이 와주기를 믿고 달리는 수밖에 없었던 날들. 재능이 있다고 마음껏 믿고 오해하며 ‘셀라’(극중 하늘빛들림교회에서 히브리어 ‘아멘’처럼 외치는 말)를 외치는 날들. (웃음) 이 일은 누가 시킨 게 아니어서 내가 멈추면 다 멈춰버린다. 오로지 내 발과 내 의지에 내 일이 달려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가끔은 최선을 다해도 평가는 내 몫이 아니라서 이 직업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이 간극 때문에 내가 더 이 일을 사랑하려고 애쓰는 것 같기도 하고, 이 위태로움 자체에 매혹되는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도 나의 지금 이 순간을 ‘아주’ 오해하고 계속 믿고 사랑하면서 달려나갈 수밖에 없다. 셀라!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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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