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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넷플릭스 ‘글리치’② 리뷰, 두 여자가 '이 시국'에서 살아남는 법
김소미 2022-10-13

“지켜보고 있다… 지켜보고 있다….” 외계인은 그저 다정히 알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당신을 잘 지켜보고 있노라고. 지구의 위성 인터넷망을 해킹해 ‘지켜보고 있다’는 말을 찾아낸 다음 인간에게 전송한 결과가 기괴한 인터넷 밈의 조합이 될 줄은, 그러나 몰랐을 것이다. 야근을 하던 어느 날, 홍지효(전여빈)가 홀로 머무는 회사의 컴퓨터들이 일순 오작동해 지켜보고 있다는 말을 쏟아낼 때 평범하고 소심한 여자가 위로 대신 공포를 느꼈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지효는 종종 일상생활에서 외계인을 본다. 뾰족한 타원형 얼굴의 절반을 뒤덮는 기괴하고 커다란 눈, 쭈굴거리는 회색빛 피부 위로 잔뜩 부풀어오른 아랫배까지. 그들은 확실히 이상 생명체다. 더욱이 늘 현대 유니콘스 야구 모자를 쓰고 나타난다는 점에서 뜬금없고 수상하다. 거리에서, 방 안에서, 편의점에서 나타나는 외계인을 애써 못 본 척하며 살아온 지 어느덧 10여년차. 지효는 홍대 근처에서 복층 월셋집을 전전하던 남자 친구 이시국(이동휘)에게 동거를 제안받는다. 여세를 몰아 상견례까지 한 둘의 관계는 이대로라면 결혼에 골인할 것만 같다. 그러자 눈앞의 외계인도 거뜬히 회피하며 잘 살아온 여자의 일상이 갑자기 소리 없이 망가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흘러가면 되는 건가?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가끔 눈에 이상한 게 보여도 무시하면서….”

<글리치>는 1화부터 대뜸 편의점 모서리에 서 있는 외계인을 보여주며 시작하지만 이후로는 태세를 쉽사리 SF로 전환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홍지효의 남자 친구 이시국이 실종되면서 분위기는 범죄물에 가까워진다. 지금이라도 다 때려치우고 도망갈까, 지효가 채 결심하기도 전에 남자 친구가 먼저 사라져버린 것이다. 마치 그를 버리고 싶었던 마음을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대체로 의욕 부족형 인간이었던 홍지효는 갑자기 열을 내며 사라진 ‘이 시국’ 찾기에 나선다. 그녀는 UFO 커뮤니티까지 흘러 들어가더니 ‘진짜 광기’의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행동파 유튜버 허보라(나나)를 만난다.

노덕×진한새의 장르 초월 드라마

모든 것인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혼종의 <글리치>는 그 장르적 태도로 말미암아 동시대의 감수성을 표방한다. SF, 범죄, 버디, 성장물의 공교로운 동행은 홍지효와 허보라가 어느 수상한 종교집단의 의식에 잠입하면서부터 일상성 바깥으로 점점 더 과감히 탈주해나간다. 한발 앞서 방영 중인 tvN 드라마 <작은 아씨들>이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의 욕망을 해부한다면, <글리치>는 ‘가장 평범한 존재에서 가장 신성한 존재’로의 가능성을 점친다. 전자가 유령 난초와 베트남 전쟁에 얽힌 모임을 매개로 한국 근현대사의 폭력을 누설한다면, 후자는 UFO와 사이비 종교집단을 빌려 밀레니얼의 참을 수 없는 무력감을 토로한다. 두 이야기는 주제에 걸맞게 감수성 측면에서 확연히 구분된다. 말하자면 <글리치>는 좀처럼 무게 잡는 법이 없다. 데뷔작인 <인간수업>의 비정함이 무색할 정도로, 작가 진한새는 <글리치>에서 내내 어깨의 힘을 빼고 농을 친다. 웃음과 허무를 괜찮은 방어기제 삼아서. 카메라를 든 기록자인 보라는 내내 감탄사 대신 욕을 남발하며 버티고, 뜻밖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된 지효는 ‘여긴 어디, 나는 누구’의 밈을 자기 인생으로 실현해낸다.

비현실적인 사건, 과장된 인물들이 만들어내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 <글리치>가 노덕 감독을 찾아간 것은 전적으로 그의 신뢰할 만한 이력 덕분일 것이다. 한국 상업영화의 계보에서 다소 독특한 변종으로 분류되는 <특종: 량첸살인기>(2015)는 자기 속내를 까뒤집고 싸워대는 연인들의 수다극 <연애의 온도>(2012)로 주목받은 직후의 행보로 치면 꽤 신선한 선택이었다. <특종: 량첸살인기>에서 아슬아슬하게 거짓말의 경계를 줄타기하는 기자와 그를 둘러싼 웃음기 넘치는 세계를 다룬 노덕 감독은 사건이 아무리 심각하든 그 안을 구성하는 인물의 성격과 행동의 리듬이 상황을 완전히 바꾸어놓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블랙코미디적 소동극의 기운은 <글리치>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가령 절체절명의 순간에 갑자기 인물들이 만담을 나눈다든가 하는. 그러니 이 장르 초월적인 모험담을 지켜볼 때 요구되는 것은 약간의 관조적 자세다. 인과관계가 조밀하게 얽히고설켜 발생하는 스릴러를 기대한다면, <글리치>는 종종 엉뚱해지거나 장황해질 것이다. 덮어놓고 보자면 <글리치>는 간밤에 꾼 아주 길고 사나운 꿈의 서사에 가깝다. 강렬한 감정과 겁 없는 전개, 그리고 희한한 비주얼이 점입가경으로 펼쳐지니까.

지켜보다가, 지켜주는

바야흐로 사이비의 시대다. 본질은 없고 허상만 있는 것, 그러나 강렬한 매혹과 믿음을 불러내는 것들 사이에서 누구나 오작동하지 않기란 어렵다. 유튜버 허보라는 외계인이든 종교집단이든 가리지 않고 우선 찍는다. <글리치>의 후반부는 이런 면에서 조던 필의 <>과 겹쳐 보인다. 다만 진한새 작가가 새긴 한국적 리얼리티는 할리우드 역사가 불러낸 유장미와는 거리가 멀다. 하필이면 이시국이 SH 청년매입입대주택에 당첨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진 것이 특히나 애석하다면, 그래서 그 집은 어떻게 되는 건지 좀 염려스럽다면 당신은 <>보다 <글리치>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홍지효란 인물을 사회인류학적으로 바라보자. 아빠 친구 회사에 취직해 적당히 성실하게 일하고, 4년 만난 남자 친구와 미래를 도모할 시점이 되었으며, 아빠가 재혼으로 만난 새엄마는 날로 커리어가 탄탄해져 부모의 부양 같은 것은 걱정할 필요 없는 캥거루족. 30대의 홍지효는 그래서 자신의 방황과 우울이 꽤 사치라는 걸 너무도 잘 아는 여자다. 특별한 인물이 되기엔 꿈과 재능이 부족하고, 평탄하게 살아와 비련의 주인공조차 될 수 없는 나, 미치도록 평범한 나의 삶이 의심스러울 때 <글리치>의 작동 오류가 시작된다. 그래서

홍지효에게는 가장 보통의 청년이자 비현실적으로 동화적인 인물이라는 모순 형용이 성립 가능하다. 어쩌면 참 어려운 캐릭터다. 배우 전여빈은 사소한 말투와 표정에서부터 타고난 재능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비관습적인 표현을 구사함으로써 이 유별난 잔 다르크가 때늦은 사춘기와 작별을 고하는 화형식을 무사히 치를 때까지 관객의 인내심을 붙잡아둔다. <글리치>의 서사가 왜 꼭 버디 무비여야 했는지에 관해서는 여성 듀오의 관계에 단순한 우정 이상의 복잡한 뉘앙스를 불어넣는 나나의 연기가 대답해준다. 남자 친구와의 동거 계획이 모든 소동의 시작점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글리치>의 엔딩에서 두 인물이 내리는 선택은 꽤 다양한 의미로 풀이될 수 있을 것이다. 1P용 게임이 버그에 걸려 2P로 바뀌더니, 앞으로는 두 캐릭터가 서로를 지켜준다는 새 컨셉마저 생긴 채로 위험한 모험은 지속된다.

지효와 보라, 무키무키만만수적 조합

“지켜보고 있다. 내가 한번 간 적 없어도, 내 등 뒤에 붙어 있다. 지켜보고 있다. 저기 안에 있는 사람은, 우릴 조종하고 있다….”(<남산타워>) <글리치>에서 지효와 보라의 관계는 그들이 20대 초반일 무렵에 유행한 어느 여성 듀오 가수의 가사에 빗대볼 수 있겠다. 그사이 영화음악가로 변신한 이민휘가 소속된 무키무키만만수는 2012년 5월에 결성해 이듬해 3월 해체할 동안 UFO만 찾지 않았다 뿐이지 <글리치>에 버금가는 희한한 정신세계를 펼쳤다. <남산타워>에서 이어지는 가사, “넌! 망한다 망한다 망한다 망한다 무너진다”처럼 혹은 <7번 유형>의 외침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에요 나의 문제는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글리치>의 듀오도 실은 악을 쓰며 생존의 방식을 모색하고 있을 뿐이다. 미확인 비행물체에 그들이 그토록 집착하는 까닭은, 그것이 어디까지나 미확인, 즉 여전히 어떤 가능성이 남아 있는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게 무슨 장난인가 싶지만 이들은 모두 진지, 아니 정색 중이다. “그냥 잘 살고 싶다오. 편히 잘 살고 싶다오. 있는 그대로 살고 싶다오. 그게 그리 큰 꿈이었던가….”(<투쟁과 다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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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