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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8호 [프리뷰] 이시카와 케이 감독, ‘한 남자’
송경원 2022-10-14

한 남자 A Man

이시카와 케이/일본/2022년/123분/폐막작

10월14일/20:00/영화의전당 야외극장

이름, 성별, 직업, 가족 관계. 자신을 소개할 때 반사적으로 나오는 순서들이다. 이 모든 정보의 총합이 당신을 설명할 수 있는가.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무지의 공포로부터 마치 잘 아는 것마냥 이름을 붙인다. 하지만 때로 이름은 대상의 앞자리에서 본질을 잡아먹기도 한다. 히라노 게이치로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옮긴 <한 남자>는 신분을 도용해 세상을 속였던 한 남자의 진실을 탐문하는 한 변호사의 걸음을 따라간다.

여기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나는 여자가 있다. 리에(안도 사쿠라)는 사고로 아이를 잃고 후 남편과 사이가 멀어져 이혼했다. 그 후 아버지가 물려준 문구점을 운영하며 또 한 명의 아이 유타와 함께 살지만 슬픔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다이스케(구보타 마사타카)를 만나기 전까진. 다이스케와 리에는 서로의 쉴 곳이 되어주고 마침내 결혼한다. 행복도 잠시 딸을 낳고 안온한 가정을 꾸리던 중 다이스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남편의 장례식, 연락을 끊고 살았다던 남편의 형이 찾아와 영정 사진 속 남자가 다이스케가 아니라고 말한다. 혼란에 빠진 리에는 변호사 키도(츠마부키 사토시)에게 자신이 함께 살았던 남자가 누구인지 밝혀달라 의뢰한다.

<한 남자>는 얼핏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화차>처럼 비밀을 파헤치고 해결하는 서사처럼 보이지만 실은 남자의 정체 같은 건 그다지 중요치 않다. 이 영화의 본격적인 이야기는 키도의 시점에서 다시 시작된다. 재일교포인 키도는 보이지 자신을 외면하는 주변사람들, 특히 아내와 처가 식구들에게 지친 상태다. 키도는 다이스케의 이름을 도용한 남자 X의 사연을 조사하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새삼스러운 질문을 마주한다.

<한 남자>는 ‘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정체성에 대해 깊숙이 파고드는 이야기다. 관객은 키도의 걸음을 따라가고, 키도는 다이스케의 걸음을 뒤쫓는데, 다이스케라 불리던 남자는 어느새 관객 앞에 거울을 들고 서 있다. 재일교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만큼 정치 사회적인 부분에 목소리를 높이기 쉽지만 이시카와 케이 감독은 절묘하게 균형을 유지하며 정체성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놓지 않는다. 미스터리를 동력 삼아 몰입시키는가 싶더니 고요하고 잔잔한 스크린은 어느새 관객들이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안도 사쿠라, 츠마부키 사토시, 구보타 마사타카 등 배우들의 밀도 높은 연기가 감정의 부피를 더한다. 특히 리에의 사정을 보여주는 초반 30분의 에피소드는 그걸로 ‘다이스케가 누구인지’에 대한 해답이기도 하다. 한 남자가 있었고, 그는 사랑을 했고, 행복을 남기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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