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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8호 [인터뷰] '인체해부도' 루시엔-카스탱 테일러, 베레나 파라벨 감독, 현실을 감각하고 경험하게 하는 아름다움을 좇는다
이우빈 사진 최성열 2022-10-14

<리바이어던>, <인체해부도> 루시엔-카스탱 테일러, 베레나 파라벨 감독 인터뷰

올해의 특별 기획전 ‘21세기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시선’에서는 루시엔-카스탱 테일러, 베레나 파라벨 감독의 <리바이어던>과 <인체해부도>가 상영되고 있다. 하버드 대학교의 감각민족지연구소에서 만난 둘은 선상의 어업 현장을 고프로 히어로로 촬영한 <리바이어던>으로 21세기 다큐멘터리 미학의 최전선을 개척했다. 그리고 수술대에 오른 신체의 내외부를 초소형 립스틱 카메라로 가감 없이 드러낸 <인체해부도>가 올해 칸 감독주간에서 상영되면서 다시금 세계 다큐멘터리계의 화제로 떠올랐다. 인류학 연구와 영화 만들기의 경계를 오고 가며 현실에 대한 관객의 참여와 체험을 촉구하는 둘의 작업은 서로를 “철저한 상호호혜성의 관계”라 말하는 상호 간의 믿음으로부터 시작된다.

- <리바이어던>의 어업에 이어서 <인체해부도>에선 신체, 의학, 수술 그리고 병원이란 공간을 소재로 삼았다. 구상 계기는

= 베레나 파라벨(이하 파라벨) | 어느 날 보스톤 글로브(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지역의 일간지)에서 그런 이야기를 접했다. 한 의대생이 해부학 실습을 하려고 시신을 들추는 순간 그게 자신의 고모란 사실을 알았고 충격받았다는 일화였다. 이걸 보고 나니 우리가 우리의 몸을 완전히 과학에 맡겨 버리는 작금의 상황에 대해 고민하게 됐고, 관련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당장 우리가 속한 하버드 대학에서 흥미로운 점이 발견됐다. 다른 의과대학은 늘 의료용 시신의 부족에 시달리는데 하버드 대학엔 시신이 차고 넘쳐서 일종의 ‘body traffic’ 현상까지 있단 거였다. 순환이 정체될 정도로 많은 시신이 유통된단 일에 놀랐고 신체와 의학에 대한 문제를 좀 더 알아보고자 보고자 했다. 그런데 미국에선 시신이나 수술 현장을 촬영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 프랑스 공공병원들의 도움을 받게 됐다. 병원과 의사, 환자 모두 흔쾌히 수술 참관을 허락해줬고 곧바로 촬영에 돌입했다. 그러다 보니 인간의 신체 내부가 얼마나 추상적이고 아름다운지를 알게 됐고, 그동안의 영화에서 볼 수 없던 인체에 대한 수술이나 의학적 시선을 보여주고 싶어졌다.

- 기존의 민족지 영화엔 감독이 직접 등장하고 내레이션을 더하는 참여형 다큐멘터리 방식이 많지만, 당신들은 영화 속에 직접 개입하진 않는다. 관찰에 방점을 두려는 건가?

= 루시엔-카스탱 테일러(이하 테일러) | 그렇지 않다. 첫째, 사실 관찰이란 단어 ‘observation'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먼저 흔히 알듯이 눈으로 보는 관찰이란 뜻이 있고, 또 어떤 관습이나 의식을 지킨다는 의미도 있다. 그러니까 우리의 영화엔 단순히 대상을 보는 것뿐 아니라 바라보는 대상에 뛰어들고 직접 보호한다는 맥락도 함께 한다. 둘째로는 인간이란 어떤 행위를 하든 간에 본성적으로 참여와 관찰을 동시에 하게 되어있단 점이다. 로 예를 들면 카메라가 인간의 몸속을 찍다가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장면에서 우리는 그런 행위를 보는 동시에, 그런 행위의 과정에 참여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의료진이 현미경으로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걸 찍으면 그건 단순히 그를 관찰하는 게 아니라 이미 누군가가 무언가를 관찰하고 있는 작업에 우리가 참여하는 거다. 영화 창작자로서 현실을 대하는 게 아니라, 생활 속의 인물에게 빠져드는 식이다. 질문에서 언급했듯 감독이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내며 말하고, 촬영 대상과 윤리적으로 좋은 관계임을 강조하는 식의 'show up'에는 딱히 관심이 없다.

- <인체해부도>는 감각민족지 연구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영화 작품이다. 암세포 화면 앞에서 연구하고 대화하는 의료진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보이는 장면에선 단순하게 숏이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숏의 시각적 아름다움이나 완성도도 신경 쓰는 편인가?

= 파라벨 | 아마 루시엔과 내 대답이 극명하게 다를 거다. (웃음) 우리가 늘 논의하는 게 이런 아름다움의 문제다. 사실 난 내 다큐멘터리나 영상 연구에 미적인 요소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일단 영화니까, 영화적으로 가치가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단 의미다. 물론 다큐멘터리가 정치적, 윤리적, 사회적, 인류학적으로 흥미 있는 대상을 찍는 것도 중요하다. 실제로 많은 다큐멘터리가 미적인 부분은 살짝 방치한 채 이런 주제 측면에 신경을 기울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린 미적인 부분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또 이미지만큼이나 사운드에도 공을 들인다. 소리 역시 미적, 감각적인 것의 일부이니만큼 영화에 있어서 비주얼이 오디오보다 우세하다는 혹자의 의견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루시엔이 더 말할 게 있을 거다. (웃음)

= 테일러 | 베레나의 의견에 더할 말은 없고, 뺄 건 있다. (웃음) 사실 작정하고 아름다운 영화를 만드는 건 쉽지만, 그런 일에 집중하고 싶진 않다. 세상엔 아름다운 영화가 많다. 하지만 추한 영화도 많아야 한다. 왜냐면 세상에는 추한 것들이 많으니까. 영화는 현실을 담아야 한다. 현실엔 아름다운 것, 추한 것, 지루하거나 심지어는 ’무‘의 상태인 것도 있다. ‘aesthetics’(미학)의 어원부터가 감각, 감각적인 인지에 관한 것이지 아름다움과는 무관하다. 그러니 미적인 부분을 과하게 뽐내서 관찰당하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관객을 현실에 참여시키며 대상을 인지하고 경험하게 만드는 아름다움을 찾는 게 중요하다.

- 그렇다면 감각적 경험을 극대화하는 VR이나 4D 기술을 사용할 예정은 없나?

= 파라벨 | 글쎄. 기술적 요소는 적게 사용할수록 좋다. 실제 세상과 작품 사이에 겹이 적을수록 현실이 더 잘 나타나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2D를 사용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고도화 기술을 사용한다고 해서 이미지가 더 좋아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VR이 미디어와 사람들의 경험을 완전히 변화시킬 것이란 예상도 있었으나 결국 사람들은 VR 세계가 가상이고 인위적임을 알 수밖에 없다. 대신 바깥세상은 훨씬 풍요롭고, 직관적이고, 다양하다. 이런 현실을 최소한의 기술만 사용해서 보여주고, 새로운 세계처럼 여기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 테일러| 베레나가 저런 말을 하다니 놀랍다. (웃음) 그녀는 과학기술 분야에 엄청난 전문가고 학문적인 경험도 갖고 있는데 말이다. 일본의 후쿠시마 사태를 다룬 란 작품에서 베레나는 완전히 급진적인 기술로 이미지를 만들기도 했다. 난 반대로 굉장히 구식이고 기술에 대한 공포도 있다. 심지어 2D 이미지조차 너무 감각적이고 공격적이라고 느낀다. 아무튼 나도 VR이나 4D의 사용 같은 것엔 반대한다. 내 생각에 3D 영화는 실패했다. <아바타>가 나오면서 영화가 3D 세계가 될 것이라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삼성이나 일본, 중국에서 만드는 3D TV도 딱히 사용되지 않는다. 물론 특정한 장면들을 3D로 촬영하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을 종종 하고 구글 글래스 같은 기술을 무척 신기하게 느끼긴 한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이런 기술을 가짜라고 여긴다. 조작된 현실이란 걸 내심 알고 있다. 반면에 2D로 만들어진 영화 세상에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너무나 쉽게 빠져든다.

- 듣다 보니 둘의 공동 창작이 마냥 쉬울 것 같지는 않다. (웃음) 협업의 과정이 듣고 싶다.

= 테일러 | 우린 5센트짜리 영화(20세기 초 미국에서 값싸게 보던 영화)를 만드는 아마추어다. 집에서만 작업하고 할리우드처럼 어디 작업실에 가서 체계적으로 일하진 않는다. 사람들이 우리를 영화감독이라고 부르는데 심지어 우린 'directing'을 하지도 않으니 감독이라 말하기에도 뭐하다. (웃음) 그렇게 촬영, 편집, 음향, 그리고 배급까지 모든 걸 같이 하다 보니까 계속 다른 의견이 나오곤 한다. 특히 편집할 때는 견원지간처럼 심하게 싸우기도 한다. 내가 어떤 시퀀스를 싫어해서 빼자고 하면 베레나가 절대 안 된다고 반대한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잠든 후, 다음 날 아침에 그래 그 시퀀스를 넣자고 말하면 그때는 베레나가 싫다고 반대하는 식이다. (웃음) 물론 서로의 차이로 작업을 발전시키는 과정이다. 철저하게 상호호혜적인 관계다. 촬영 때 한 명이 배 밑을 찍으려 카메라를 들고 누우면 한 명이 다리를 열심히 붙잡아주던 것처럼 말이다. (웃음) 사실 <리바이어던>의 기획 자체도 우리가 공통으로 지닌 부모에 대한 콤플렉스로부터 시작했다. 내 아버지는 배를 만드는 사람이었고, 베레나의 아버지는 낚시꾼이었다. 우린 태생적으로 서로를 보완해주는 관계였고, 이런 공통점으로부터 해양 파괴의 내용을 떠올렸다.

= 베레나 | 난 우리 협업이 꽤 쉽다고 생각하는데. (웃음) 우린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한다. 다만 개인을 믿는다기보다는 하나가 된, 연합체가 된 우리를 신뢰한다. 머리가 두 개 달린 하나의 괴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갑자기 혼자 결정하고 작업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머리가 굳어 버린다. (웃음)

- 연구와 영화 만들기 간의 이질감은 없나?

= 테일러 | 사실 우리는 영화로 어떤 연구를 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가 인류학자일 뿐 훈련받은 연출자는 아닐지라도 연구가 아닌 영화를 하려고 한다. 인류학이 다른 학문과 비교하면 물론 세상과 무척 가까운 학문이지만, 진짜 세상은 인류학으로 바라보는 것과 다르다. 그래서 난 인류학뿐 아니라 모든 학문과 학문적인 표현에 늘 의구심이 있다. 우리가 영화를 만들 때도 어떤 연구를 하자고 미리 말하진 않는다. 그냥 어떤 대상을 촬영하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연구의 일종이 되는 거다. 굉장히 내적이고 주관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나와 다르게 베레나는 정말 24시간 중 한시도 쉬지 않고 끝없이 아이디어를 내뱉고 거의 토해내는 사람이다. 이런 아이디어가 내게 공유되고 변이되고, 해체되는 과정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작품이 만들어진다.

- 한국에 더 머물며 차기작 작업을 한다고 들었다

= 테일러 | 방금 말했듯이 우리가 영화를 처음부터 구상하는 편은 아니라서 차기작 작업 과정을 정확히 설명할 순 없다. 만들어놓고 3~4년 뒤에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나서야 우리 영화가 무슨 영환지 알게 되는 식이다. (웃음) 다만 흥미 있는 두 가지 소재가 있다. 한국에서 찍을 수도 있다. 하나는 영적인 것에 관한 영화다. 우리는 무신론자지만 무언가 영적이고 초월적인 것을 믿는다. 서울에서 수만 명이 방언을 터뜨리며 함께 기도하는 장면을 봤는데 그런 곳에 들어가 관찰하고 참여하고 싶기도 하다. 다른 하나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를 타고 오면서도 너무 많은 고층빌딩을 봤고, 그중 2개는 한참 공사하며 오염물질을 내뿜고 있었다. 우리가 자연에 비해 얼마나 작은 존재이며,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면서도 자연을 파괴하고 있단 걸 느끼게 하고 싶다. 그렇게 자연의 모습을 찍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름다움이란 것을 탐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설악산에서 촬영할 계획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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