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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의 논픽션 다이어리] ‘가문잔치, 나의 탐라는 결혼’

제주도의 독특한 혼인 관행 ‘가문잔치’는 혼례를 치르기 전날 당(친척)들과 가까운 이웃들을 불러 음식을 대접하는 자리다. 돗(돼지)을 잡아 몸국과 가문반 등을 나누어 먹는 날이기에 “잔치 먹으러 간다”라는 표현을 쓴다. 1960년대 이후 생활권과 통혼권이 변화하며 이러한 전통은 점점 사라졌지만, 올해 한글날을 맞아 사라져가는 제주어를 보존하기 위해 제주 MBC에서 만든 드라마 <가문잔치, 나의 탐라는 결혼>은 바로 이 잔치를 배경으로 한 소동극이다.

결혼식을 앞둔 행복한 신부, 점점 고조되는 가족간의 갈등, 늘 그렇듯 사이 나쁜 동창생인 양가 어머니, 출생의 비밀, 파국으로 치닫다 대화합으로 마무리되는 5부작에는 주말 가족 드라마의 정수가 압축되어 있다. 모든 대사가 제주어로 이루어져 표준어 자막과 함께 볼 수 있고, 고기를 다루는 도감 어른의 역할이나 신부 친구들의 ‘손수건 팔기’ 등 제주만의 혼인 풍습도 깨알같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드라마에 앞서 진행된 배우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전문 연기자는 물론 제주에서 왕성하게 활동해온 방송인, 골드키위를 재배하는 농민, 주부, 보리빵집 사장 등 다양한 이력을 지닌 도민들이 참여한 오디션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서사를 지닌 쇼다. “마흔넷까지 살면서 설렘이나 흥분되는 일이 없어서” 연기에 도전한 채현진씨는 자연스러운 생활연기로 신부 은주의 오빠 역에 캐스팅되었다. 카메라 앞에 서본 적 없는 참가자가 대부분이지만, 제주 여성의 삶을 다 지켜보고 겪었으니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냐고, 육지에서 살았으면 끼를 펼쳤을 거라고 자부하는 이들의 흥과 재능은 무대를 만나자 펄떡펄떡 살아난다. “참가자마다 드라마가 하나씩 들어온 느낌”이라는 심사평처럼, 각자의 드라마를 알고 나면 그들이 출연한 드라마가 한층 더 재미있어진다. 내년에도 새로운 제주어 드라마를 보고 싶다.

CHECK POINT

<가문잔치, 나의 탐라는 결혼>은 의도적으로 ‘막장 가족극’의 구성을 따르는 한편, 제주라는 지역의 특성과 가족이라는 관계 안에서의 미묘한 갈등을 세심하게 짚어낸다. 부모 땅까지 팔아 서울에서 사업하다가 망한 오빠 은철이 오자, 부모와 살며 골프장에서 일하던 은주가 그동안 서운했던 일들을 토로한다. 이때 서울에서 직장 다니는 언니 은임의 대사가 인상적이다. “타지 나간 자식들은 고향도 부담이여. 잘된 자식은 자랑스러워도 못난 자식은 부끄럽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