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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리스본행 야간열차>
진영인 2023-01-17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 전은경 옮김 / 비채 펴냄

스위스 베른의 김나지움에서 고전문헌학을 가르치는 그레고리우스는 비 오는 어느 날 출근길 다리 위에서 자살하려는 한 여성의 목숨을 구한다. 모국어가 “포르투게스”라는 여성의 대답에서 묘한 매력을 느낀 그는 시계처럼 정확하고 실수 없던 일상을 버리고 충동적으로 리스본을 향한다. 원래는 컬러텔레비전의 생생함도 참지 못하고, 너무 빨리 새로운 세계로 인간을 안내한다는 이유로 비행기 여행도 싫어하던 사람이었으니, 엄청난 일탈이다. 그레고리우스의 손에는 헌책방에서 우연히 구한 아마데우 드 프라두라는 포르투갈 작가의 매혹적인 책 <언어의 연금술사>가 들려 있다. 리스본에 도착한 그레고리우스는 원래 쓰던 두꺼운 안경을 실수로 깬 다음 새로운 안경을 맞춘다. 가볍고 날렵한 새 안경으로 선명하고 강렬한 세상을 어색하게 바라보는 그레고리우스의 모습은, 기존의 삶과 이별하고 프라두라는 아름답고 낯선 존재의 삶을 들여다보는 리스본에서의 여정을 은유한다. 학창 시절의 프라두는 진부한 언어 사용을 견디지 못하는 예민하고 영민한 천재이자 자유를 억압하는 세상에 분노하는 사람이었다. 훗날 의사가 되어서는 환자들을 아낌없이 도왔다. 그렇지만 시대가 프라두를 그냥 두지 않았다. 그때는, 안토니우 살라자르의 독재 속에 비밀경찰들이 시민을 잡아들여 무자비하게 고문하고 감금하던 시절이었다. 프라두는 우연히 악명 높은 비밀경찰의 목숨을 구하는 바람에 배신자 낙인이 찍히고, 그 죄책감을 벗기 위해 저항운동에 발을 들였다. “우리의 삶에 형태와 색채, 멜로디를 주는 경험은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프라두의 여동생이며 그와 함께 저항운동을 했던 친구와 동료를 하나둘 만나면서 그레고리우스는 과거의 먼지에 가려져 있던 프라두의 인생에 숨을 불어넣고 색깔을 입힌다. 언제 죽음이 닥칠지 모르는 공포 속에 살면서도 사랑과 우정을 위해 몸을 바치고 철학적 사유를 갈고닦은 프라두의 삶을 만나며 그레고리우스의 삶 또한 변하게 된다. 책의 여운을 리스본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느끼고 싶다면 제러미 아이언스가 주연을 맡은 동명의 영화도 추천한다.

283쪽

“완전하지 못하다는 자각은 반대로 죽지 않고 살아 있는인생을 위한 조건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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