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2
[인터뷰] ‘그 해 우리는’ 이나은 작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 하나만 있어도”
김효실 사진 김진수 2023-03-15

사진 김진수 <한겨레21> 선임기자

이 작가에게 스토리를 만드는 행위는 자연스레 “어디선가 누군가 겪고 있는 이야기를 수집해 나만의 언어로 들려주는 것”을 의미한다. “저는 세상에 없던 걸 만들어내는 개발자가 아니라, 이미 구전으로나 경험으로 존재하는 이야기를 새로운 이야기처럼 들리게끔 하는 중간 필터 같은 역할을 하지 않나 싶어요.”

그는 가끔 “너무 작은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고민하다가도 “사소한 것들도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서” 마음을 다잡는다. “드라마 댓글에서 ‘나는 이런 사랑 한 적 없는데 왜 이걸 보며 울고 있나’ ‘난 모솔(모태 솔로)인데 왜 울지’ (웃음) 이런 글을 많이 봤어요. 사랑이란 가치에서 누군가를 전염시키는 힘, 무한한 확장 가능성을 봐요.”

많은 사람이 협업하는 드라마 제작 환경에서 비롯한 믿음과 책임감도 한몫한다. 드라마 대본 집필은 끝없는 피드백과 수정 작업의 연속이다.

<그 해 우리는> 때는 다른 제작진에 초고를 보낸 뒤 회차마다 평균 3~4고까지 고쳤고, 최대 9고(아홉 번째 원고)에 이르기도 했다. 돌고 돌아 2고로 촬영한 경우도 있다. 이 작가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내대본에 설득되지 않는데, 무턱대고 찍는다고 다른 사람을 공감시킬 수 있을까 싶다. 현장에서 불확실한 대본으로 촬영하는 것만큼 불안한 일도 없다. 작가로서 대본에 대한 확신을 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동료들이 대본에 공감하고 확신할 수 있도록 애쓴다는 뜻이다.

이 작가는 작가가 자신에게 솔직한, “지금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지닌 힘을 믿는다. 그는 대학생 때 대학생 이야기를 썼고, 20대 후반에 동갑내기 이야기를 썼다. 이 작가에게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 하나만 있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걸 발전시켜나가면 돼요. 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여겨져도, 어떤 건 사랑받고 어떤 건 사랑받지 못할 수 있어요. 자신이 중심을 잘 잡을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보세요.”

사진 김진수 <한겨레21> 선임기자

에필로그

‘마침내 드라마도 1990년대생이 쓰는구나.’ 2021년 12월 <그 해 우리는> 첫 방송을 보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본방사수’의 시작은 드라마의 트렌디함이 빛났고, 영화 <마녀>(2018)만으로는 감질이 난 김다미최우식의 연기 합을 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면 볼수록 ‘20대의 나’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행복하면서도 괴로웠다. 나와 타인과 세상을 알아가는 데 사랑과 연애만큼 “진한 배움”(Intensive Learning)은 없다는 여성학자 정희진의 글로 청춘을 버텼다. “사랑하는 것은 상처받기 쉬운 상태가 되는 것이다. 상처에서 새로운 생명, 새로운 언어가 자란다.”

생각해보면 벨 훅스, 에리히 프롬 등 사랑을 진지하게 탐구한 석학들은 한결같이 사랑에는 노력과 훈련, 무엇보다 용기가 필요하다고 설파했다. 이나은 작가의 작품들 역시 우리는 사랑을 선택할 수 있고, 그 사랑이 우리를 연결하고 성장시킨다는 믿음을 키운다. 사랑의 가능성과 입체성을 그의 표현대로 “담백하게” 전한다. 드라마 속 일차원적 ‘러브라인’에 질려버린 시청자에게 사랑의 가치를 새롭게 환기한다.

작가를 직접 만나고 나니 역시나 그를 MZ에 가둘 수 없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는 “(내가) 비슷한 이야기를 다르게 포장하는 게 아닐까 고민한다”면서도, “(기본 메뉴를 잘하는) ‘김치찌개 맛집’ 해야지(웃음), 내가 잘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지” 다짐한다고 했다. 여름을 닮은 사람이 아닐까 예상했는데, 사계절을 품은 듯 너르고 단단한 느낌을 받았다. 그가 젊어서 좋은 점은 하나다. 그의 다음 작품을 오래 볼 수 있다는 것.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