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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순간을 믿어요>

이석원 지음 / 을유문화사 펴냄

층간 소음에 특히 예민한 석원은 꼭대기층에 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아래 14층에 살게 된다. 어느 날 위층에 새로운 이웃이 이사 온 후 밤마다 콩콩대는 소리가 들린다. 오후까지는 아무 소리도 나질 않다가 잠을 청하려 눕기만 하면 귀신같이 들려오는 불쾌한 소음. 참다못해 항의하러 위층에 올라가지만 그 집 문에는 이러한 경고문이 쓰여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초인종을 누르거나 문을 두드리지 말 것. 절대.’ 초인종을 누르기라도 했다가는 무슨 사달이 생길지, 이후로 어떤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될지 흥미진진하지만. ‘어길 시 법적 조치’ 운운하는 경고문이 붙어 있는 문 앞에서 석원은 돌아선다. 관리소에 문의했지만 돌아오는 대답도 희한하다. “어쩝니까. 절대로 연락하지 말라고 하는데. 연락하면 큰일 난다고 하는데요.” 연락을 취할 수 없는 위층과의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가 시작될 것 같지만, 예민하고 소심한 우리의 주인공 덕분에 더욱 황당한 사건들이 펼쳐진다.

<순간을 믿어요>는 에세이일까 픽션일까. 표지에는 ‘이야기 산문집’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작가 역시 인터뷰에서 “이야기 산문에는 스토리가 있지만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것은 아니”라고 밝힌다. 에세이라는 틀 안에서 이야기를 쓰고 싶었을 뿐이라고 한다. 주인공 이름도 작가와 동명이다. 전작인 <언제 들어도 좋은 말>에도 중간에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더 긴 호흡의 이야기 산문이다. 극 중 석원이 층간 소음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아 대출까지 받아 집을 하나 더 구하는데 이 역시 작가의 경험담이다. 층간 소음이라는 소재는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처럼 공감하며 이입하기 쉬운데, <순간을 믿어요>는 소재가 다른 곳으로 통통통 튀어간다. 그토록 찾던 환상의 냉면을, 위층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마주치게 되면서 석원은 소음보다 냉면 레시피 전수에 더 집착하게 된다. 이석원의 산문을 애정하는 독자라면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으면서도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주인공 역시 사랑하게 될 것이다. 중간중간 삽입된 짧은 글에서는 통찰력과 위트가 빛난다.

299쪽

“지난 2년간 겪은 내 삶에서 미스터리는 단 1도 없었다는 것. 그저 나의 오해와 세상에서 벌어진 여러 우연과 엇갈림들이 난무한 끝에 벌어진 믿기 어려운 해프닝일 뿐이었다는 것. 물론 내 삶에서 더이상 미스터리가 존재하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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