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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외계 문학 걸작선>

이갑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이갑수 소설집의 주인공들은 모두 무언가 하나씩 결여된 인간들이다. 특수한 재능이 있되 타인의 감정을 읽지 못하거나, 우주 원리와 칼 세이건에 대해서는 줄줄 외면서도 자기 감정에 대해서는 한줄도 설명하지 못하는 식이다. 그 어려운 물리 현상이나 공식은 빠삭하게 알지만 가장 친밀한 관계에 대해선 이해하지 못해서 줄곧 “널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되뇌기도 한다. 전부 일인칭 시점 소설들이기에 독자는 화자가 설명하고 바라보는 대로 소설 속 세상을 따라가고 이내 주인공이 나사가 하나 빠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읽는 사람은 인물의 결핍을 간파하지만 주인공만은 끝까지 퀘스트를 달성하지 못하고 “GAME OVER” 문구를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일인칭 소설이며 단문인 소설의 특성상 정보가 충분히 주어지지 않음에도 독자는 화자보다 전지적 위치에 존재한다. 이는 작가가 매우 유기적으로 논리적 구조를 쌓아올렸기에 가능한 일이다. 잔혹한 현실 세계에서 승자가 되기에는 모자란 인물들. 소설 속에서 그들은 주인공임에도 사는 것 자체가 오류가 된다. 갈림길에서는 항상 어려운 길만 선택하고 우물을 열심히 팠는데 지구 반대편이 나와버리고 공들여 쌓아온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기 일쑤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들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눈치가 없어서 실패조차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갑수의 소설은 한번 읽을 때보다 두 번째 읽을 때 그 구조가 더 눈에 보이고 곳곳에 숨겨둔 블랙 유머도 발굴할 수 있다.

"‘이갑수의 소설은 특유의 위트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구조를 시니컬하게 조망한다’고 말해봤자, 나는 그 방법론으로서의 위트를 증명하는 데에는 실패할 운명에 처해 있다. 왜냐하면 그 위트는 설명할수록 위트가 아니게 될 것이고, 나는 선천적으로 남을 웃기는 데에 아무런 재능이 없기 때문이다." 임지훈 평론가의 해설처럼 이 소설집의 유머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소설가 이갑수는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 서점에서 한국 작가의 책은 사인본만 판매한다. <외계 문학 걸작선>을 쓴 소설가가 운영하는 서점다운 고집이다.

232쪽

나는 아들이 순진하다고 생각했다. 기계가 일을 하는 세상이 올지는 모르지만, 그런 형태는 아니다. 기계가 일하고 기계의 소유자들이 노는 그런 세상이다. 자기 대신 일할 기계를 소유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계로 할 때보다 돈이 덜 드는 일을 찾아 헤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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