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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더 글로리’ 차주영, “매일 혜정이만 생각했다”
이유채 사진 백종헌 2023-03-23

진중한 목소리에 자분자분한 발걸음. <더 글로리>의 스튜어디스 혜정이와 전혀 다른 분위기의 차주영은 배우란 참 신기한 직업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했다. 어디 있다가 이제 나타났나 싶지만 사실 그는 2016년 드라마 <치즈인더트랩>으로 데뷔해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키마이라> <어게인 마이 라이프> 등 10편 이상의 작품에 출연한 알토란 같은 배우다. 차기작인 KBS2 50부작 드라마 <진짜가 나타났다!>를 한창 촬영 중인 차주영은 “자기 능력을 테스트”하며 그다음 영광을 기다리고 있다.

- 캐릭터 조형은 어디서부터 시작했나.

= 레퍼런스를 찾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실패했다.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촬영 직전까지도 혜정은 내게 너무 모호한 인물이어서 혼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지니까 오히려 단순하게 접근하자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더라. 대사 다 외웠고, 나는 매일 혜정 생각뿐이고, 감독님도 나를 진지하게 혜정으로 봐주시니 내가 곧 혜정인 거였다.

-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가가 중요한 인물인 만큼 의상, 분장팀과의 고민이 깊었을 듯하다.

= 혜정이를 예뻐 보이게 하고 싶을 때마다 “우리 혜정이 그런 캐릭터 아니다” 하면서 다 같이 마음을 비웠다. 없어 보이는 게 컨셉이었다. 의상도 거기에 맞췄다. 헤어는 벼락 맞은 것처럼 파삭파삭한 느낌이 났으면 좋겠다고 내가 의견을 냈다. 한끗 차이로 귀여운 파마머리가 돼서 머리카락 한올씩 잡아 만지느라 애먹었다.

- 커튼을 열어젖히며 퍼스트클래스로 들어가는 모습이 성인 혜정의 첫 등장 신이다. 계급 상승을 갈구하는 혜정을 생각하면 이 신은 의미심장하다.

= 말해줘서 고맙다. 내가 이 신을 되게 좋아한다! 혜정이 신 중에 유일하게 이 친구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보여주면서 온전히 섹시한 신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비행기 내부의 공기, 커튼 열리는 소리, 발걸음에 따른 몸의 흔들림까지 전부 기억한다.

- 약혼반지를 바라보며 “연진이 거보다 커. 크잖아, 뭐가 문제야?”라고 말하는 장면을 찍을 때는 어땠나.

= 우리 드라마가 보통 두 테이크면 끝나는데, 나도 감독님도 그 장면만큼은 다양한 변주가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판단해서 여러 번 찍었다. 그 순간의 내 감정을 현장에서 다 받아주셨다. 그래서 눈물을 한번 닦고도 가보고, 맺힌 채로도 가봤다.

- <더 글로리> 파트2의 혜정을 떠올리면 박연진(임지연)과 손명오(김건우)의 대화 녹음 파일을 확보한 혜정의 기괴한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 웃음소리가 대본에는 대체 뭐라고 쓰여 있었나.

= 김은숙 작가님 대사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은데, 아마 ‘미친년처럼 웃는 혜정’이었을 거다.

- 어렵다. 어떻게 표현하고자 했나.

= 역시 단순하게 접근했다. 연기하다 보면 어차피 그렇게 웃게 될 거라고 믿었다. 재준(박성훈)의 안약에 동은(송혜교)이 준 약물을 채우고 흔드는 장면에서는 아마 ‘기괴하게 웃는 혜정’이라고 쓰여 있었을 거다. 목을 찔렸고 배신당했고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며 몰입하다 보니 자연스레 지문에 근접한 웃음이 나온 것 같다. 이런 신들을 찍으면서 내가 현장감이 중요한 배우라는 걸 확실히 느꼈다. 완벽하게 준비해 가되 열어두자고, 현장에서 감독님 말씀도 들어보고 동료 배우들과 합도 맞춰보며 완성해나가자고 그렇게 마음먹었다.

- 사라(김히어라)에게 연필로 목을 찔린 뒤 그전까지와는 다른 목소리와 신체 연기를 해야만 했다.

= 장례식장 신은 배우들끼리 촬영 전부터 정말 기대하고 있었다. 모든 인물이 폭발해서 난리가 나는 지점이었기 때문에 찍을 때 다들 신이 났었다. 목을 다친 환자들의 레퍼런스를 많이 찾았다. 최종적으로 위트 있게 가도 괜찮겠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여서 고통 묘사를 극사실적으로 하지는 않았다. 연필은 의료 자문을 받아서 다칠 경우 딱 그 정도의 목소리가 나오는 목 위치에 정확하게 찔렀다.

- SNS에서 혜정과 사라의 관계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 왜 우리 둘을 그만큼 사랑해주시는지 아직도 답을 못 찾았다. 언니랑 내가 서로 많이 좋아하고 의지하는 사이라는 게 티가 났나. (웃음)

- 예술 분야에 호기심은 있으나 보수적인 집안에서 엄두를 못 내다가 미국에서 경영학 전공으로 대학 졸업 후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 영화 속 인물로 살아보고 싶다는 갈망이 어릴 때부터 있었다. 그 속으로 들어가려고 TV를 분해한 적도 있는 어린이였다. 대학 졸업하고 직업을 고민할 때가 되니까 그런 꿈들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는데 배우가 되면 이룰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했다.

- 데뷔 초반 인터뷰에서 맨땅에서 시작해 불안하다는 말을 자주 했더라. 8년차가 된 지금은 어떤가.

= 이제 더는 현장에 피해주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 현장 경험이 쌓인 덕분이다. 시간이 해결해준 부분도 크다. 내가 잘한다면 어디든 속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생겼다. 영화 같은 경우 기회는 있었는데 늘 드라마를 하게 됐다. 영화에 특히 열려 있다는 말씀을 드리는 거다. (웃음)

최혜정의 치밀한 순간

“절에서 동은과 독대하는 신은 정말 대본대로 해보고 싶었다. 혜정이 동은과 제대로 맞붙는 신이라 중요했다. 대본에 명시된 바로 그 지점에서 정확히 눈물이 흘렀으면 했다. 감정이 격해져서 먼저 나오거나 하는 일이 절대 없길 바라며 철저히 준비했다. 간절해서였는지 모든 순간이 들어맞았고 한번에 오케이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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