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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제76회 칸영화제 개막 리포트
송경원 2023-05-26

칸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살갗이 따가울 만큼 강렬했다가 금세 구름으로 뒤덮여 쌀쌀해지더니 짧은 소나기가 쏟아지는데, 10분만 지나도 언제 그랬냐는 듯 햇살이 쏟아져 거리의 물기조차 사라진다. 그 와중에 사람들은 덤덤하게 거리로, 식당으로, 극장으로 부지런히 발길을 옮기며 제 할 일에 몰두한다. 영화제의 운명은 뿌리내린 공간을 닮는 걸까.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영화제도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모색을 쉬지 않고 있다. 올해 칸영화제의 행보는 왼쪽과 오른쪽을 동시에 바라보며 영화를 포함한 모든 미디어 경험을 쓸어담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요트 선착장 중심을 점령한 프랑스 TV의 거대한 부스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세간의 관심을 먹고살아야 하는 건 영화제의 숙명이다. 화제가 된다면 구설조차 은근히 즐기는 듯한 모습은 차라리 절박해 보이기도 한다. 올해 논란의 중심에는 배우 조니 뎁의 복귀작이기도 한 개막작 <잔 뒤 바리>가 있다. 심사위원 기자회견에서 배우 브리 라슨에게 “당신은 미투 운동을 지지했는데, 조니 뎁의 복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이 이어졌을 때 기자들이 바란 건 어쩌면 명확한 대답이나 입장 표명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외에도 미성년 여배우의 노골적인 성 묘사 장면으로 인해 논란이 지속된 카트린 코르지니의 <홈커밍>이 최종적으로 경쟁부문에 합류하는 등 칸의 영화 지상주의가 도드라지는 한해다. 칸은 언제나 영화인들의 논란에 관대한 편이었는데 그것이 영화를 향한 존경과 헌사인지 화제작에 대한 필요인지 모호한, 애매한 줄타기가 이어지고 있다.

뤼미에르와 드뷔시 극장을 비롯한 칸의 거리는 공식 포스터의 주인공 카트린 드뇌브로 가득 메워졌다. 1968년 6월, 당시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을 영화화한 알랭 카발리에 감독의 <패배의 신호>(La chamade) 촬영 당시 찍은 이 사진은 영화의 관능과 매력을 한껏 뽐내는 듯하다. 개막식 사회는 카트린 드뇌브의 딸인 배우 키아라 마스트로이안니가 맡아 의미를 더했다. 개막식에 깜짝 등장한 카트린 드뇌브가 우크라이나 여류 시인의 시를 낭송한 후 개막 선언을 마이클 더글러스를 빼놓고 혼자 먼저 해버린 건 귀여운 해프닝에 불과했지만 한편으론 의미심장하게 보이는 구석이 있다. 개막작 <잔 뒤 바리>와 폐막작 <엘리멘탈>을 나란히 놓고 본다면 올해 칸에선 영미권 영화의 강세와 프랑스영화의 저항이 눈에 띈다. 드뇌브의 포스터가 칸 곳곳에 나부끼는 것처럼 명예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마이클 더글러스의 다큐멘터리 <마이클 더글러스, 더 프로디걸 선>(감독 어민메스타)도 영화제에 공개되어 76회 칸영화제의 방향을 선언했다.

칸영화제가 사랑하는 올드보이들의 귀환이 도드라지는 올해, 특히 마이클 더글러스의 명예황금종려상 수상은 영미권 영화가 강세인 올해의 흐름을 상징하는 것 같다. 이러한 경향은 올해 처음 조직위원장으로 취임한 이리스 크노블로흐의 첫 에디션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지난해로 임기를 마친 피에르 레스큐어의 뒤를 이은 이리스 크로블로흐는 독일인 변호사 출신으로 2006년부터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프랑스 자회사 회장직을 맡은 바 있으며 2021년 워너브러더스를 떠난 뒤에는 엔터테인먼트 투자 펀드사를 설립했다. 엔터테인먼트 국제 비즈니스에 능통한 새 조직위원장은 칸영화제의 보수적인 성향에 점진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다.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을 들고 칸을 찾은 마틴 스코세이지를 필두로 미국영화는 토드 헤인스, 웨스 앤더슨, 조너선 글레이저 등 경쟁부문에도 다수 포진해 있으며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과 폐막작 <엘리멘탈>이 대미를 장식할 예정이다.

보이지 않는 충돌과 저항이 공존하는 칸영화제는 올해 거장들의 대거 귀환으로 안전한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인다. 한편으론 올드보이들에 대한 신뢰와 헌사가 마치 마지막 피날레처럼 보여 불안한 구석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경쟁부문을 장식한 거장들의 신작은 하나같이 흥미로운 면이 있다. 예시카 하우스너, 조너선 글레이저 등 흥미로운 작업을 이어가는 감독들의 귀환도 반갑고, 브라질 감독 카림 아이노우즈나 첫 장편으로 주목받는 신예 라마타 툴라예 사이 같은 새로운 에너지는 언제나 우리를 기쁘게 한다. 올해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은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말한다. “모두가 카메라를 가지고 쉽게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세상이다. 이제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이미지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 이미지를 가지고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 배워야 한다.” 설사 (우리가 알고 있던) 영화의 황혼이 온다고 해도 영화는 계속되리라는 기대와 희망을 품고 75년 역사의 칸영화제에 또 한 페이지가 더해질 준비를 마쳤다.

*이어지는 기사에서 제 76회 칸 영화제 기획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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