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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개막작, 마이웬 감독의 ‘잔 뒤 바리’
김소미 2023-05-26

마이웬과 잔 뒤 바리. 올해 칸영화제 개막작을 지탱하는 두 인물은 꽤 닮아 있다. 한국 관객에게 친숙한 이름들은 아니지만 그 세부를 들여다보면 대단히 프랑스적인 두 존재의 절묘한 만남이다. 2011년 영화 <경찰들>로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마이웬 감독은 여성배우로 살아간다는 것의 리얼리티를 다룬 <여배우에 관한 모든 것>, 자신의 알제리계 유산을 찾아떠난 <DNA> 등을 만든 재능 있는 다큐멘터리 감독이기도 하다. <잔 뒤 바리>는 그의 첫 시대극이자 과감한 시각적 스펙터클에의 시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전작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감독이자 주연배우를 겸한 마이웬이 파트너로 선택한 인물이 전 부인의 폭행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배우 조니 뎁이라는 사실도 올해 개막작의 주효한 첫인상임을 부정할 수 없다. 개막작 상영 전, 레드 카펫 현장에서 개막작 스타로서의 영예를 온몸으로 누리는 중계화면 속 조니 뎁을 바라보는 상영관의 공기는 미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제작진이 현장에 참석하는 뤼미에르 극장을 제외한 나머지 상영관들에서는- 개막작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이례적으로- 상영 시작 전후로 박수가 나오지 않았다.

제3의 화자의 내레이션으로 전개되는 <잔 뒤 바리>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존재감 뒤로 가려졌던 잔 베쿠(뒤 바리 부인)의 신화를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다시 쓴다. 마이웬은 바람에 나부끼는 잔의 치마폭을 부여잡고 당대의 정치적 맥락을 사뿐히 건너뛴다. 대신 그 자리에는, 태초부터 순수와 정열의 피를 갖고 태어난 어느 죄 없는 여성의 존재에 대한 찬미가 깃든다.

요컨대 <잔 뒤 바리>는 10대 시절부터 오직 사랑을 위해 존재하면서 시대와 무심히 불화했던 한 여자의 일대기로서 로맨티시즘에 충실한 영화다. 문란함을 이유로 수도원에서 쫓겨난 요리사의 딸 잔은 파리에서 기욤 뒤 바리 백작의 파트너가 되고, 이후 고위급 정계 인사들 다수의 연인으로 지내다가 마침내 베르사유에 입성하게 된다. 퐁파두르 부인이 죽은 이후 실의에 빠져 있던 루이 15세는 곧 잔을 사랑하게 된다. 루이 15세의 마지막 공식적 정부로 알려질 운명인 잔은 뒤 바리 백작과 결혼한다. 국왕과 사랑하려면 귀족이 되어야 하기에 우선 다른 남자와 결혼해야 하는 아이러니는 시작에 불과하다. 왕에게 절대 등을 보이지 않고 종종걸음으로 뒷걸음질쳐 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경악한 잔이 궁정 비서에게 묻는다. “이건 너무 그로테스크한 거 아니에요?” “아니요. 여긴 베르사유입니다.” 베르사유에 예외와 일탈을 더하기 시작하는 잔 뒤 바리의 시간이 펼쳐지고, 영화는 시간의 더께가 쌓임에 따라 그 전성기가 서서히 저물어가는 과정도 내밀하게 들여다본다. 첫눈에 서로를 알아본 왕과 정부의 사랑은, 어떤 관계도 해결하지 못하고 어떤 화려함도 가려주지 못하는 인간 각자의 외로움에 관한 문제로 번진다.

말하자면 이 영화의 스펙터클은 일련의 베르사유 드라마들이 보여주는 사치와 부조리의 향연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견뎌야 했던 어느 연인의 애틋한 애착 관계로부터 나온다.

프랑스 언론들은 대체로 호의적이고 뜨거운 반응을 보냈다. 마이웬의 대담한 나르시시즘이 성공했음을 인정하는 반응이 대다수다. 매 숏의 중심에서 살아 숨 쉬는 마이웬은 장면을 시종 장악하면서 객석에 유머, 생동감, 애절함을 전염시킨다. 그 자기 중심성으로 인해 주변부 캐릭터들은 종종 프레스코화의 배경 인물로 전락하고 말지만 주인공이 움켜쥔 정열과 서정의 힘이 단점을 상쇄한다. 18세기 시대극에 적용된 현대적인 미술과 의상을 보는 재미에 더불어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역동적이고 대담한 화면의 구도, 그리고 움직임이다. 프랑스 역사의 상징적인 인물들을 정치적 격동으로부터 분리한 이 영화가 풍광을 활용하는 방식은 잔 뒤 바리, 루이 15세, 나아가 마리 앙투아네트까지도 덧없는 시간의 평범한 희생자로 만들면서 기묘한 감흥을 남긴다.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는 “이 영화의 중요한 미덕은 먼지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다. 삶은 순환하고, 우리는 그 속에 있다”라는 평을 남겼다. 한편 <잔 뒤 바리>는 강한 정념의 보호 아래 미소지니적인 여성 묘사를 피하지 않으며, 이제는 시네마의 유행에서 한 걸음 물러난 프랑스영화의 고전적 낭만과 권위에 대한 복권의 시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표현의 자유를 숭배하는 뤼미에르 극장에 더없이 적합한 영화적 환영일 수도, 혹은 그보다 거대하고 복잡한 백래시의 흔적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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