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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드림팰리스’ 이윤지, 나를 닮은 수인을 만나
이우빈 사진 오계옥 2023-06-06

뻗친 머리에 남루한 옷차림, 항시 근심 가득한 표정. 수인의 외양은 그간 우리가 봐온 배우 이윤지와 영 딴판이다. 성격도 마찬가지다. 산업재해로 남편이 사망한 이후 수인은 어두운 기척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해사하고 따스한 성정의 배우 이윤지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캐릭터다. 그러나 <드림팰리스> 속 이윤지는 놀라울 정도로 수인과 닮았다. 이것은 진심으로 수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보듬으려는 배우의 깊은 공감과 몰입에서 비롯된 결과다.

- 수인의 겉모습과 성질은 배우 이윤지의 이미지와 무척 다르다. 그런데 지금껏 맡은 배역 중 수인이 평소의 본인과 가장 많이 닮았다 느꼈다고.

= 수인과 나 모두 두 아이의 엄마라는 점이 컸다. 어쩔 수 없이 자연스럽게 수인의 처지에 공감이 됐다. 그리고 사실 수인의 초췌한 외모가 요즘의 나랑 비슷하기도 하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집에선 어쩔 수 없이 수인 같은 모습이 되니까. (웃음) 물론 수인이 평소 배우로서의 내 이미지와 다르다는 건 안다. 그래서 더 수인 역이 좋았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배우 이윤지보단 수인이라는 인물이 강조되길 바랐다. 다음에도 작품 속 나를 보며 “쟤 누구야?” 할 정도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 수인은 ‘어머니’인 동시에 사별한 남편의 ‘아내’다. 어머니로서 아이들을 챙겨야 한다는 책무와 아내로서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야 한다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처럼 보인다.

= 수인은 아내이자 엄마로서 느끼는 할당 책임량을 양어깨에 무리할 정도로 짊어진 사람이다. 그렇다고 해서 수인이 마냥 남편을 위해서만 힘든 삶을 택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인과 나의 닮은 점이기도 한데 주위 사람들의 어려움을 모른 척하지 못한다. 수인이는 특별히 사회적 정의나 남편의 보상을 위해 희생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저 지금 당장 내 주변의 사람을 챙기고 싶어 한다. 그러니 이건 수인이 본인을 위해 한 일이기도 하다.

- ‘수인이’라며 실제 친구처럼 부르는 게 인상적이다. 배역에 무척 깊게 감정적으로 몰입한 것 같다.

= 나도 엄마, 아내, 딸 그리고 배우로서의 삶을 모두 챙기려 늘 노력하는 편이다. 이제는 그 역할들 사이의 완급 조절을 어느 정도 해내는 것 같다. 이런 점에서 수인이는 꼭 옛날의 나 같다. 그래서 더 챙겨주고 싶고 수인이가 좋아졌다. 만약 수인이가 동네에서 함께 아이를 키우는 동생이라면 붙잡고 얘기라도 해주고 싶다. “네 슬픔을 내가 어찌 다 알겠냐만 너무 그렇게까지 힘들 필요는 없지 않을까. 네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니”란 위로를.

- 영화는 혜정의 드림팰리스 입주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수인과 혜정에겐 그에 앞서 훨씬 깊고 긴 전사가 있다. 가성문 감독은 이런 둘의 관계성과 감정이 서로를 보는 눈빛만으로도 느껴지길 바랐다는데.

= <드림팰리스>의 가장 큰 특징이다. 과거의 이야기, 심지어 현재의 이야기조차 수면 위로 전부 올라와 있진 않다. 무언가의 폭발 후에 남겨진 잔해들만이 영화의 곳곳에 퍼져 있는 셈이다. 혜정, 수인, 유가족, 분양사, 입주민이란 모래 알갱이들이 점성 없는 채로 구석구석에 놓여 있단 느낌도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배우에게 주어진 숙제는 연기하는 인물의 감정, 전사를 본인만은 알고 느껴야 한단 거다. 설령 그것들이 영화에 드러나지 않더라도. 현장에선 이런 마음을 먹으며 최선을 다했을 뿐이고 결과적으로 성공할지엔 확신이 없었다.

- 결과물을 보고 나서는 어떻게 느꼈나.

= 비유를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평소에 여행 짐을 아주 큰 부피로 챙기는 편이다. 심지어 아버지가 “너 그렇게 하면 남들이 싫어한다”라고 얘기할 정도다. (웃음) 연기도 마찬가지다. <드림팰리스>라는 기차가 출발해야 하는 상황에서 난 연기에 필요한 짐을 최대한 가득 챙겨서 급히 올라탄 승객이었다. 나중에 편집본을 보고 나니 그래도 ‘내 짐의 부피가 그렇게 부족하진 않았구나’라고 느꼈다. (웃음)

- 그렇다면 수인의 연기 중 인상 깊었던 장면을 언급해야 할 것 같다. 분양사 직원에게 혜정의 커미션에 얽힌 사실을 들은 후 혜정을 찾아갔을 때다. 혜정에게 크게 실망하며 화낼 법도 한데 수인은 외려 아주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며 커미션에 관해 묻는다.

= 나였으면 절대 그렇게 못했다. 수인의 상황에 정말 마음이 답답하고 터질 것 같았다. (웃음) 그래도 수인이는 나보다 좀더 강단 있는 사람이었나보다. 나였다면 다리가 후들거려서 제대로 하지 못했을 말들을 꺼내는 데 성공했으니까. 얼마 안된 사이였으면 차라리 멱살이라도 잡고 화냈을 거다. 그런데 오래 정을 쌓은 혜정이니만큼 ‘진짜 아무리 그래도 우리끼린 이러면 안되지’란 절망을 느꼈고, 그런 아픔의 깊이만큼 도리어 침착해졌던 것 같다.

- 산재 합의 후에 농성장의 다른 유가족들을 찾아가 오열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 수인의 목소리와 내 목소리가 가장 닮아진 순간이 두번 있었다. 그중 하나가 질문에서 말한 장면이다. 영화를 통틀어 슬픔의 극단을 달릴 때였고 그때만큼은 이윤지가 수인이, 수인이 이윤지가 된 느낌이었다. 반대로 혜정과 당구장에 갔던 장면은 가장 기뻤던 때이기에 수인과 내 목소리가 같아졌다. 두 장면 모두 정해진 대사가 딱히 없었고, 당구장 장면은 대사를 녹음하 는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더 극적인 감정을 느끼고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어느덧 연기 인생 20년차에 접어들었다.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연기가 있다면.

= 내 삶과 내 배역들의 삶이 하나로 이어지고 있단 생각을 늘 한다. 비슷한 시기에 엄마의 삶을 시작했던 나와 수인의 경우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하든지 걱정보단 기대가 크다. 거스를 수 없는 시간에 따르면서 당시의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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