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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AN #6호 [인터뷰] ‘호랑이 소녀’ 아만다 넬 유 감독, 금기를 깨는 용기
이자연 사진 오계옥 2023-07-04

<호랑이 소녀> 아만다 넬 유 감독

평범한 10대 소녀 자판(자프린 자이리잘)은 어느 새벽, 생리라는 낯선 변화를 맞닥뜨린다. 불편함과 어색함이 여전하건만 자신을 둘러싼 친구들의 따돌림까지 견뎌야 한다. 2차 성징을 먼저 경험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무시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자판은 자기 안의 또 다른 변화를 조용히 받아들인다. “사춘기에 접어든 여자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기대를 마음껏 무너뜨리는 주인공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아만다 넬 유 감독을 만나 호기롭게 호랑이가 되길 선택한 여자 아이에 관해 이야기 나누었다.

- <호랑이 소녀>로 76회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그 순간의 소회를 말해준다면.

= 말레이시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라 지역성이 두드러지는 작품인데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공감을 표해서 무척 신기했다. 모두가 자판의 상황과 감정을 이해하고 있었다. 사실 수상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수상 발표 전 총평을 먼저 읽어주는데 “외적인 힘과 내적인 힘을 잘 연결시켰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무덤덤했다. 그런데 “동물의 에너지로 이야기를 잘 구현시켰다”는 문장이 들리자마자 “동물의 에너지? 나잖아!” 하는 생각이 들면서 다리에 힘이 풀렸다. (웃음) 혼신을 다해 정신을 붙잡으려 했다.

- 자판의 2차 성징으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제 막 생리를 시작한 자판은 자신을 대하는 주변인들의 태도 변화에 다소 당황해한다. 이 소재를 선택한 이유는.

= 신체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쾌락이나 고통, 몸에 담긴 기억들을 영화로 표현하고 싶었다. 2차 성징은 아이가 어른이 되는 분기점이다. 2차 성징 전까지 아이들은 자기 몸을 자유롭게 쓰는데, 2차 성징을 통과하는 순간 자의적·타의적으로 자신을 재정의하게 된다.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고 외적인 아름다움을 강요받으면서 여자 아이들은 은연중 자신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자판은 호랑이처럼 모든 금기를 깨트리려고 한다. 이제 막 신체 변화를 겪는 아이의 시선에서 자신을 수용해나가는 과정을 담아내고자 했다.

- 영화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자판을 두고 꼭 한 소리를 한다.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라”는 선생님, “밖에서 노출하고 걸어다니지 말”라는 엄마. 자판이 호랑이로 변한 데에는 이러한 억압의 목소리가 촉매제가 된 것인가.

= 사람들은 통제하기 어렵고 개구진 아이들을 두고 ‘괴물 같다’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얼마큼 더 포악해질 수 있을지, 얼마나 더 괴물같아질 수 있을지 보여주고 싶었다. 자판은 자신을 억압하는 모든 것에 저항하는 친구다. 많은 10대 소녀들이 생리를 한 순간 사회적 규율에 갇히는 기분을 느끼는데, 자판은 자신이 무엇에 대항해 싸워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타인이 아닌 스스로 결정하고 싶은 욕구가 강한 인물이라 더더욱 호랑이가 된 자신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자랑스러워한다.

- 자판은 생리를 시작했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다. 사실 다른 아이들도 언젠가 겪을 일이라는 점에서 낯설게 느껴지는 설정이기도 한데.

= 사실 그건 영국 유학 시절 내가 직접 목격한 일이다. 당시 기숙사 학교를 다녔는데 생리를 시작한 친구를 두고 반 아이들의 태도가 갑자기 바뀌었다. 타인의 신체적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무도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 더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그 친구의 책상이나 침대에 생리대를 붙여 놓았다. 그때의 일화가 무척 충격적이어서, 같은 성별의 친구 사이에도 성장 징후에 대한 정확한 정보나 교육이 없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려 했다.

- 아이러니하게도 자판을 향한 괴롭힘을 주도한 건 가장 친한 친구 파라다. 브래지어를 입고 있거나 생리를 시작했다는 자판의 말을 유난히 불편하게 여긴다. 자판의 성장담에 파라는 어떤 역할을 하는 인물인가.

= 파라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파란색 히잡을 쓴다. 그건 반장이라는 뜻이다. 모범생으로서 파라는 어른들의 관심과 총애를 받으면서 어른이 규정한 착한 아이가 되고 싶어 한다. 파라의 인정욕구가 강해질수록 타인에 대한 통제적인 성향도 강해진다. 그런 파라에게 자판은 무척 자유로워 보였을 것이다. 어른들이 정한 사회적 규율을 착실히 따르는 자신과 달리, 자판은 거부하고 저항할 줄 안다. 그러면서 자판은 주체적으로 질문을 건네는 사람이 된다. ‘너는 과연 호랑이가 될 만큼 용기가 있니?’ 하면서.

- 또 다른 친구 마리암은 자판의 모습을 틱톡 영상으로 기록하면서 그의 곁에 남는다. 마리암은 자판에게 어떤 존재인가.

= 사실 마리암도 자판과 모든 것을 함께 하기 위해 용기 내는 친구는 아니다. 같이 호랑이가 되기로 결심하진 않지만, 자판의 변화와 삶의 여정을 곁에서 지켜봐주고 받아들여주는 유일한 인물이다. 자판의 가족들의 경우, 어머니는 지나치게 집착하고 통제하려는 반면 아버지는 모든 것을 방치한다. 누구도 제대로 된 관심을 주지 않는 사이 오직 마리암이 그 결핍을 채워주는 것이다. 파라와 마리암 그리고 자판, 세 친구는 자기정체성을 받아들이는 이 첫 난관을 각기 다른 방법과 태도로 반응한다. 이 모든 과정이 이들만의 우정이라고 생각한다.

- 자판이 호랑이로 변한다고 하지만 변신한 모습이 정확히 호랑이의 이미지로 연결되진 않는다. 머리가 반쯤 빠진 채 손가락이 구부러져 있어 기괴한 느낌을 준다. 이 이미지는 어떻게 고안했나.

= 온화한 소녀 이미지와 정반대로 가고 싶었다. 찰랑거리는 풍성한 모발을 없애고, 여드름난 울긋불긋한 피부, 제멋대로 자란 손톱과 발톱, 거뭇한 수염까지 모두 합쳤다. 앞서 말한 것처럼 10대 특유의 ‘괴물 같음’을 돋보이게 표현했다. 혹시 낯설고 이상해 보인다면 스스로가 만들어낸 소녀의 이미지가 무엇이었는지 반대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