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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미래는 허밍을 한다>
진영인 2023-07-18
강혜빈 지음 / 문학과지성사 펴냄

“운동화 안에서/ 작은 돌멩이 한 알이 굴러다니는 것을/ 알아챘을 때/ 폴은 느낀다/ 살아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발이 불편했던 일상의 어느 순간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고궁에 산책 간/ 내가 돌아오지 않습니다// 궁이 좋아서”라고, 풍요로운 산책의 시간을 환기하는 대목도 있다. “슈크림의 다정함이라면/ 누구에게도/ 버림받지 않을 거라고”라는 귀여운 표현을 읽으며, 달콤한 디저트를 먹던 순간을 떠올릴 수도 있다. 이 시집에는 일상의 감각들을 환기하면서, 그 감각으로 또 다른 세계를 키워나가는 시들이 있다. <눈사람을 보면 이상해>는, 어느 겨울 SNS를 달구었던 논쟁이 떠오른다. 정성껏 만든 눈사람을 굳이 발로 차서 부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제보와 그들을 향한 비난이 이어지는 한편, 그런 논쟁이 있든 말든 현실에서는 눈사람을 부수는 이들이 계속 있었다. “굴러가는 머리 보면서 웃는 사람은/ 아무래도 이상해”라는 표현에 이어, 시는 굴러가는 눈사람 머리를 따라간다. “굴러라/ 굴러라/ 계속 굴러라”라는 대목은 피식 웃음이 나게 하고, 깨끗함과 외로움과 착함이 깃든 눈덩이의 세계로 슬쩍 들어가는 기분을 선사한다.

시를 읽다 보면 놓칠 수 없는 표현을 만날 때가 있는데, 이를테면 “비 온 뒤 건물은 늘었다 줄면서 뼈마디를 맞춘다” 같은 문장은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여름의 형식>이라는 제목의 이 시에는 여름의 더위와 녹색, 쉽게 잡히지 않아 환상 같은 모기의 흔적이 깃들어 있고 제집이 아닌 것만 같은 공간의 낯섦도 드리워져 있다. 요즘처럼 비가 몰고 오는 습기와 그로 인한 이질적 감각이 돋보이는 계절에는 몇번씩 읽게 된다. 시 <옥수>는 옥수역과 한강의 풍경을 떠올리며 읽으면 좋다. 강을 보며 피자를 먹는 감각을, “덜 익은 마음이/ 반죽처럼 부풀어 올라요”라고 표현하다니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한편 코로나19가 유행하던 시절이 안겨준 새로운 사건과 감각들이 시집 곳곳에 등장한다. 줌 수업의 시간이 “선생은/ 작은 걸/ 좋아한다// 무표정한 얼굴/ 스무 개”로 그려지기도 한다. 지난 몇년의 시간을, 감각과 인상으로 되새겨보게 되는 시집이다.

160쪽

“사랑과 사랑 아닌 모든 것 사이에서/ 느리게 걸어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