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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 <휴가지에서 생긴 일>
마거릿 케네디 지음 / 박경희 옮김 / 복복서가 펴냄

어느 날의 일이다. 자고 일어나니 감쪽같이, 절벽 아래에 있던 저택이 사라져버렸다. 물론 전조는 있었다. 측량 전문가는 절벽 균열이 커지면 저택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으니 이사를 하는 게 낫겠다고, 진즉 호텔 소유주 시달에게 편지를 쓴 바 있다. 시달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결국 온 가족이 절벽 아래 누워 있는 신세가 되었다. 1947년 여름, 영국의 해변 휴가지 콘월에서 있었던 일이다. <휴가지에서 생긴 일>의 제목과 단란한 표지를 보면 언뜻 여름철 휴가지에서 일어난 흥미로운 멜로드라마가 연상된다. 따사로운 햇볕 아래 사랑에 빠진 연인, 다시금 애정을 회복하는 부부, 모래밭을 뛰어다니는 작은 아이들과 바다 위로 부서지는 햇살과 청량한 웃음들. 마거릿 케네디의 소설 <휴가지에서 생긴 일>에 그런 풍경이 아예 없다고만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보다 한층 음산하고 어두운, 멸망적 징후가 포착된다. 이미 벼랑 끝으로 사라져버린 펜디잭 호텔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여러 투숙객과 직원, 심상치 않은 호텔 사장의 가족까지 등장해 파티 날 이전의 며칠의 상황을 따라가는 장편소설은 사건 자체보다는 그 이면의 복잡한 인물들의 마음속 지옥도를 따라가야 한다. 호텔 투숙객과 직원들 사이에는 영국 사회의 계급을 나타내는 관계도가 그려진다. 거기다 기퍼드 가족과 코브 가족, 페일리 부부 등 같은 계급처럼 보였던 인물들조차도 부의 척도에 따라 미묘한 신경전과 불화를 겪고 있다. “못된 사람은 몇명뿐이지만, 그들이 나머지 사람들을 지옥으로 몰아가고도 남아요. 소수가 다수에게 그토록 해를 끼칠 수 있다니, 믿지 못하실 거예요.” 늘 그렇듯 온순한 인물들의 수긍 속에서 악역을 떠맡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 사이에는 힘의 경계가 존재한다. 교만과 시기, 나태, 탐색, 분노, 정욕, 탐욕이라는 일곱 가지 대죄를 다양한 캐릭터들이 나누어 맡고 있으며 대죄로 인한 징벌은 재난을 통해 드러나도록 설계되어 있다. 호텔이라는 밀폐된 공간 속 인간 군상이 입체적으로 그려져 있다. 우아한 영국식 독설과 현대사회의 축소판과 같은 인물들을 흡수하기 위해선 아주 느린 속도로 페이지를 넘기기를 권한다.

82쪽

"음… 난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대량생산품은 되기 싫어요. 나만의 개성을 가지고 싶다는 말이죠." 낸시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든 것이 너무도 잘 이해되었다.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