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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드라마톡] ‘유괴의 날’

흰 비둘기에 평화를 떠올리듯, 장바구니 밖으로 비쭉 솟은 대파는 일상과 집밥의 기호였다. 하지만 온갖 식재료의 타격감을 궁리하는 한국 드라마에서 대파라고 예외가 아니었으니, 줄기가 으스러지도록 후드려 패는 ‘싸대기’의 도구로 전락한 대파가 정해연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ENA <유괴의 날>에선 모처럼 찬거리의 입지를 회복했다. 가파른 언덕을 급하게 뛰어오느라 숨이 턱에 닿은 남자는 비닐봉지와 대파를 쥔 손을 흔들며 딸의 이름을 외치고, 그를 기다리던 아이는 평상에 쓰러져 헐떡거리는 남자에게 쏘아붙인다. “밭에서 캐온 거야?” 김명준(윤계상)은 유괴를 실행하기도 전에 자신의 차 앞에서 기절한 아이의 보호자가 되어버린 어설픈 유괴범이고 기억을 잃은 11살 천재 소녀 최로희(유나)는 정황상 아빠 같은데 영 미덥지 못한 명준을 관찰하는 중이었다. 너를 혼자 집에 둬서 미안하다고 여기 반찬거리가 간다고 대파를 홰홰 흔들던 명준의 모습은 로희에게 한심하면서도 안심되는 이로 판단할 근거가 되었다.

미수에 그쳤어도 유괴범인 남자와 자신을 학대하던 부모가 죽고 의지할 곳 없는 소녀가 살인 사건을 풀기 위해 공조하는 동안 친밀감과 거리를 어떻게 다루는가는 <유괴의 날>에서 가장 예민한 문제다. 원작에서 해동검도 신동이었던 로희가 버릇처럼 명준의 목을 겨누고 제압하는 호신 용도로 쓰였던 효자손은 드라마에선 소아백혈병으로 입원 중인 명준의 딸 희애가 명준의 생일날 선물한 물건이라는 설정이 붙는다. 로희가 뻗은 손에 쥔 효자손이 연장하는 안전거리에는 딸 희애의 존재가 더해진다. 원작이나 드라마가 공통으로 가진 미덕은 아픈 친딸 희애와 보호자가 필요한 로희를 두고 저울질을 하지 않는 점이고, 이들을 묶고 연결해 ‘아이들’을 지킬 것인지 거듭 되묻는 이야기에서 명준은 자신이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을까 두려워하면서 몸을 던진다.

CHECK POINT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는 과정에서 원작은 명준과 로희가 무인텔에 묵게 되는 상황이 있었다. 똑똑한 로희가 대실과 숙박 요금의 비합리를 지적하거나 원형 침대를 작동시켜 명준이 기겁하는 장면을 책으로 보면 유괴범과 유괴 아동의 호명과 수행이 어긋나는 블랙코미디의 연장으로 이해할 수도 있으나 드라마는 두 사람이 모텔에 묵는 그림 자체를 만들지 않는 방향으로 각색했다. 좋은 선택이었고 모텔 원형 침대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웃음은 <범죄도시3> 마동석의 몫으로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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