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커버스타
[인터뷰] ‘생즉필사 사즉필생’의 마음으로, <소년시대> 임시완
정재현 2023-11-22

“Boys, be ambitious!” 모름지기 소년이라면 야망을 가지라는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의 격언을 격동의 1980년대를 살아가던 소년 병태(임시완) 또한 한번은 외워보지 않았을까. 하지만 병태의 이상은 그맘때의 남학생이 품을 법한 야망과 독자 노선을 견지한다. “소년은 꿈이 있어야 허는 법이여. 나의 꿈은 말이여 아주 소박햐, 안 맞고 사는 것. 딴 놈들맨치로 평범하게 사는 것.” 청소년기의 막연한 환상이 붕괴되는 순간 어른이 된다지만, 병태의 꿈은 다른 방식으로 좌절된다. 정신을 차려보니 병태는 전학 간 학교에서 전설의 싸움 짱 ‘아산 백호’라 입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조용히 살고 싶었던 병태는 일순간 부여농고 패거리의 우두머리가 된다. <소년시대>는 배우 임시완의 가장 무구한 얼굴을 만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병태가 눈을 느리게 끔뻑이며 입술을 삐죽 내민 채 화면에 가득 차는 순간, 분위기에 휩싸여 마셔본 적 없는 소주와 피워본 적 없는 담배를 머금는 순간, 최근 <비상선언>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등에서 섬뜩한 눈빛으로 등장인물과 관객 모두를 옥죄던 임시완은 온데간데없다.

- 다양한 작품에서 청춘을 연기했지만, 고등학생 연기는 오랜만이다.

= 대본을 읽자마자 이 작품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내 물리적 나이를 반으로 깎아주셔서 어찌나 감개무량하던지! 실제 나이보다 젊은 캐릭터로 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웃음)

- <변호인> <오빠생각> <왕은 사랑한다> 등에서 시대극을 경험한 적 있지만 <소년시대>처럼 특정 시대와 지역의 10대 학생을 연기한 건 처음이다.

= 1980년대 말의 고등학생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부여라는 공간적 배경이 연기에 몰입할 수 있는 훌륭한 장치가 됐다. 설정이 주는 힘을 믿고 편한 마음으로 병태를 연기했다. 공간적 배경이 충청도로 특정되는 한 자연스러운 사투리를 구사해야 했다. 그래서 실제 충청도 지역을 찾아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사투리를 습득해갔다.

- 병태는 충청도 특유의 너스레와 돌려 말하기를 결합한 화법을 구사한다. 쌀집 주인에게 “머리가 그렇게 좋으면 서울대 가서 대통령을 하시지”와 같은 대사를 예로 들 수 있다. 재밌다고 여긴 병태의 말투나 대사가 있나.

= 지영(이선빈)이 병태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지자 “자꾸 간섭하는 거 아니냐, 그만 물어봐라”류의 대사로 맞받아치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그 신을 찍을 당시 한창 충청도 스피릿이 내 안에 가득 찬 상태였다. 그래서 “구황작물이여? 뭘 자꾸 캐물어 싸”라는 애드리브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 병태의 클로즈업 숏이 많고 그때마다 병태가 짓는 순박한 표정이 인상적이다.

= 지인들 중에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알 수 있는 이들이 있다. 병태를 연기하기 위해 일부러 다양한 표정을 연구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병태가 주어지는 자극에 얼마나 즉각적으로 투명하게 반응하는 사람인지에 초점을 두고 연기했다.

- 병태는 오해와 우연이 중첩되며 점점 ‘아산 백호’가 되어간다. 심지어 병태는 좋은 연기자이기도 해서 ‘아산 백호’ 연기를 꽤 준수하게 해낸다.

= 오히려 그 반대로 비치길 바랐다. 백호입네 하는 병태의 연기가 시청자들에게는 어색해 보이지만, 그 어색한 연기에 속아 넘어갈 만큼 철홍(김정진)의 패거리들도 어수룩해 보였으면 했다. 작가님이 캐릭터들이 특정 상황에서 오해를 쌓을 수밖에 없도록 교묘하게 스토리를 짜주셨다.

- 병태는 내가 아닌 다른 인물을 연기하다 그에게 동화돼간다. 이런 병태에게 배우로서 동질감을 느끼는 순간도 있었나.

=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 중 병태만큼 어수룩하고 순박했던 캐릭터는 없었다. 그래서 그 어떤 배역보다 병태가 실제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병태와 나는 다른 구석도 많다. 가령 단순 산수에도 서툰 병태의 모습은 나와 다르다. (웃음)

- 서현철 배우가 연기하는 아버지와의 관계도 퍽 재밌다. 서현철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

= 선배님과 호흡을 맞추는 매 순간이 즐겁고 배울 것투성이었다. 선배님이 병태의 담임 선생님에게 병태에 관한 칭찬을 듣는 장면을 촬영하는 날이었다. 기분이 좋아진 아버지의 마음을 애드리브로 표현하는 게 신기해서, 어떻게 그런 애드리브를 생각해내는지 여쭤본 적이 있다. 촬영 오는 길에 라디오에서 나온 사연이 재밌어서 기억해두었다 애드리브로 사용했다는 말을 듣고 몹시 놀랐던 기억이 난다.

- 극 중 대사에 인용되는 ‘생즉필사 사즉필생(生卽必死 死卽必生)’은 타이틀 시퀀스에 흐르는 O.S.T 가사에도 끊임없이 반복된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는 의미의 문장은 결국 부여에서 새로운 삶을 도모해야 하는 병태의 삶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병태에게, 그리고 배우 임시완에게 ‘생즉필사 사즉필생’은 어떤 의미인가.

= 병태는 생즉필사 사즉필생을 가치관 삼아 학교생활과 교우 관계를 정립해나갔을 것이다. 배우 임시완에게 생즉필사 사즉필생은 직업인으로서 매 작품 연기를 잘하려고 노력하는 마음이다.

- 병태는 여러 오해가 겹치며 다양한 페르소나를 입어간다. 그 과정에서 놓치지 않고 표현하려 했던 일관된 심지가 있나.

= 병태에겐 지질함이 있다. 학창 시절엔 누구나 지질했던 순간이 존재하지 않나. 지질했지만 소중했던 과거의 기억을 <소년시대>와 병태가 상기했으면 한다. 나는 병태를 절대 선인으로만 그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래서 시청자들이 병태로부터 어른이 되기 전 관계 속에서 누구든 마음 한구석에서 겪었을 법한 욕심과 이기심까지 발견했으면 한다.

관련영화

관련인물

사진제공 쿠팡플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