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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맨> 등의 애니메이션 프로듀서, 이언 하비
황혜림 2002-06-12

눈사람의 온기

푸근한 풍채의 눈사람이 살아나고, 그와 함께 밤하늘을 날아 환상의 여행을 떠나는 소년의 꿈을 기억하는지. 이언 하비는 해외는 물론 국내에도 비디오로 소개돼 꾸준한 인기를 누려온 영국 애니메이션 <스노우맨>의 프로듀서다. 영국의 대표적인 동화작가 레이몬드 브릭스의 원작에 바탕한 <스노우맨>과 <산타할아버지의 휴가> 등 주로 동화를 애니메이션의 상상력으로 옮겨왔다. 올해 전주영화제의 ‘전쟁과 애니메이션’에 소개된 장편 <바람이 불 때>와 단편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기> 역시 그의 손을 거친 애니메이션. <지상에서…>는 그의 작품을 국내에 배급해온 인피니스에서 최근 비디오로 출시되기도 했다. 전쟁에 대한 우회적인 경고를 담은 2편의 작품과 함께, 그는 지난 5월 초 한국을 다녀갔다. 은빛 수염 아래로 나이를 가늠키 어려운 천진한 미소를 띠곤 하던 그는, 스노맨만큼, 자신이 제작해온 작품들의 판타지만큼 선량한 인상이었다.

“다양한 문화가 혼합된” 런던에서 나고 자란 하비는 셰필드의 대학에서 회계와 경영을 전공했다. 어렸을 때야 부모님의 손에 끌려 극장에 가길 좋아했지만, 애니메이션 프로듀서는 아이들이 선뜻 직업으로 꼽을 수 있는 업종이 아니었다. 잡지 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디딘 하비는 즐거움만큼 “텅 빈 흰 종이를 메워야 하는” 두려움을 느끼면서 우연히 출판업계로 발길을 돌렸다. 아직 인쇄매체가 TV 이상의 문화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던 70년대의 해미시 해밀턴 출판사. 마침 <스노우맨>의 출판을 준비하던 그곳에서, 인쇄도 거치지 않은 레이몬드 브릭스의 오리지널 작품을 마주한 그는 섬세한 그림과 색감에 한눈에 반했다고. 출판사에서 영화 관련 판권 계약을 담당했던 하비는, <스노우맨>을 애니메이션으로 기획하던 프로듀서 존 코츠를 만나면서 “자신도 모르게” 항로를 틀었다. <스노우맨> 그림책을 오려서 찍고 하워드 블레이크의 음악을 깐 5분짜리 테스트 비디오를 보고, 경영진들에게 나머지 제작비를 대자고 적극 제안할 만큼 움직이는 눈사람의 동화에 빠져든 것이다. 제작비와 제작기간이 예상을 초과했고, 투자 및 제작과정에 대한 책임이 늘어나면서 하비는 자연스레 프로듀서 수업을 톡톡히 쌓았다.

82년작 <스노우맨>과 마찬가지로 브릭스의 동화에 바탕한 지미 T. 무라카미의 86년작 <바람이 불 때>는 일상을 파괴하는 핵전쟁에 대한 경고를 아기자기한 파스텔 색조로 드러낸 장편애니메이션. 몇편의 TV시리즈, 91년작 <산타할아버지의 휴가>까지 존 코츠와 함께한 하비는, 자신의 제작사 일루미네이티드필름즈를 차렸다. “아무래도 영화가 첫사랑”이라는 그에 따르면 ‘일루미네이티드’(illuminated: 빛, 조명을 밝힌)란 이름도 “극장 뒤편에 앉아 스크린에 영사되는 빛에 매혹됐던 유년의 기억” 때문에 지은 것. 에릭 칼의 동화를 원작으로 한 <배고픈 애벌레>는 아동용이었지만, 피트 크룬 감독과 함께한 97년작인 단편 는 누아르와 스릴러의 장르, 에피소드에 따라 여러 애니메이터의 그림으로 모자이크를 이룬 매력적인 실험이었다.

<바람이 불 때>의 제작비 일부를 지원했던 <채널4>나 등 영국 애니메이션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방송사들의 지원이 급감한 90년대 중반 이후에도 딱히 상업애니메이션도, 오락성 없는 실험도 아닌 작품들로 뚝심있게 줄타기를 해온 비결. “언제나 문제는 돈이고, 돈을 찾아내는 게 프로듀서의 일”이라며, 베스트셀러는 아니라도 세계 곳곳에서 스테디셀러가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넘친다고 말한다. 전쟁 3부작으로 기획한 <지상에서…>의 뒷이야기 두편 역시, 그리고 앞으로의 작품들 역시 <스노우맨>처럼 그리운 온기를 지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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