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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닫은 천국 / 신경숙
2002-06-12

신경숙의 이창

종로서적이 부도가 났다고 한다. 종로서적이? 한참 동안 신문기사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종로서적 경영이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는 종종 듣긴 했다. 종로에 나갈 일이 있을 때 간혹 들러보면 사람들이 별로 없어 좀 썰렁해보이기는 했다. 복잡하지 않아 좋았지만 그것이 부도로 이어진 걸까, 싶어 여간 애석한 게 아니다. 서울의 대표적 대형서점으로 종로서적 홀로 존재했을 때와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부도라니.

서울에 올라와 내가 한강 너머로 처음 나가 본 곳은 명동성당 다음으로 종로서적이었다. 벌써 25년 전 일이다. 낮에는 회사에 나가고 밤에 학교를 다니는 데다 오빠 둘과 외사촌과 자취하던 시절이라 늘 시간에 쫓겼다. 해결해야할 일들이 늘 눈앞에 쌓여 있어 영등포구 바깥으로 나가볼 기회란 좀처럼 오지 않았다. 지하철을 타고 종각이란 곳에서 내리면 종로서적이란 곳이 있는데 그곳엔 책이 어마어마하게 많을 뿐 아니라 책을 사지 않아도 서점에 서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얘기를 소문으로 듣고 있었을 뿐이다. 책을 사지 않고 읽고만 와도 된다고? 세상에 그런 천국이 어디 있담, 마음에 새겨두고만 있었다. 어느 날이던가. 순서라는 친구가 교실에 들어가지 말고 종로에 나가보자고 나를 꼬드겼다. 나는 수업을 빼먹고 영화를 본다든지 부모 말을 거역하고 내 뜻대로 뭘 도모한다든지 하는 체질이 아니다. 그런데도 종로? 종로서적이 있는 곳? 싶어서 무작정 그애를 따라나섰다. 버스를 잘못 탔는지 아니면 그 애도 길을 잘 몰랐던 것인지 광화문쯤에서 내려 번화한 세종로를 가로질러 불이 켜지기 시작하는 거리를 싸돌아다니는 기분은 근사했다. 그날 본 종로서적은 과연 천국이었다. 세상의 모든 책이 다 그곳에 모여 있는 것 같았다. 계단이며 매장이며 인파에 어깨가 치였다. 과연 소문대로 사람들은 매장 여기저기에 선 채로 책읽기에 빠져 있고 노트를 펼쳐놓고 숙제를 하는 사람들이 허다한데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날 이후로 종로서적은 나에게 비밀의 장소가 되었다. 없는 시간이었지만 조금만 시간이 주어지면 지하철을 타고 그곳엘 갔다. 외사촌과 투시락거리며 싸운 날은 말할 것도 없고 오빠들이 마뜩하지 않았던 날, 학교에 가기 싫은 날에 나는 종로서적엘 갔다. 선 채로 소설도 읽고 시도 읽는 순간이 참 좋았다. 일요일엔 그곳에 가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빨래를 해서 옥상에 널어놓고 그곳으로 내빼기도 했다. 책을 살 만한 돈이 생겼을 때는 종로서적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의기양양했는지. 대학에 들어와서는 숙제하러 종로서적엘 갔었다. 소설창작시간은 50년대에서 70년대까지의 대표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리포트를 작성한 뒤에 토론으로 이어지는 것이 수업방식이었다. 다른 학생들은 도서관을 찾아가는데 나는 종로서적엘 갔다. 리포트를 써야할 책을 다 살 수는 없었으므로 진열장 앞에 서서 단편 한편은 금세 읽고 노트를 펼쳐놓고 메모까지 했다. 오늘 다 못 읽으면 다음날 또 가서 다음 장부터 읽기도 했다. 때로는 다리가 아파 바닥에 앉아서 책을 읽기도 했다. 그래도 점원들은 언짢은 기색이 없었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 광화문에 교보문고가 생기기 전까지도 여전히 많은 시간을 종로서적에서 보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종로서적 앞은 늘 약속한 사람들로 붐볐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종로서적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들을 하는지 종로서적 앞은 늘 무슨 집회장소처럼 붐볐다. 실제로 종로에서 시위대를 만나거나 최루탄 속에 섞이게 되면 눈물을 흘리며 종로서적으로 피해 들어가 서성이다가 나왔던 적도 수없이 많았다. 훗날, 첫 장편소설을 내고 처음으로 작가와의 대화 시간을 가졌던 곳도 종로서적이었다. 그날의 부끄러움 속에 섞여 있던 얼마간의 설렘은 종로서적에서의 지난 추억들이 되살아나서였다. 세상은 변화하고 그것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우리 곁에 오래 머물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경우는 손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하지만 종로서적이 부도가 났다는 기사를 읽는 마음은 오래된 친구가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것처럼 마음이 짠하다. 종로서적이 없는 종로거리를 생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