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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사운드
2001-03-27

그림으로 표현한 소리, 소니 오디오 광고

2000년, 광고주 Sony 대행사 Leo Burnett, Warsaw

아트디렉터·카피라이터 Michael Long, Lechoslaw Kwiakowski, Kerry Keenan

뮤즈는 잔혹하다.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사로잡아버린다. 일단 그녀의 마수에 걸리면 모든 감각기관은 향락의 포로가 되어버리고 만다. 뮤즈가

조용히 말을 걸어오면 아무리 바빠도 가쁜 숨을 고르고 그녀의 메시지에 귀를 귀울여야 한다. 누구나 그녀 앞에서는 온몸을 맡기고 그 가혹한

고문을 받아들일 태세가 된다. 접신의 경지에 이르면 젊은이들의 영혼은 낡은 청바지처럼 진이 빠져버린다. 의식은 마비되고 사지는 해파리처럼

흐느적거린다.

소니의 광고들을 보라. 왜 아이들이 저 모양을 하고 서 있는가? 가슴, 머리, 다리, 아랫도리가 이어폰 와이어에 칭칭 감겨 있다. 카세트플레이어,

CD플레이어, MP3플레이어 등 소니가 만든 오디오 기기들이 젊은이들을 향해 더듬이를 내뻗고 있는 형국이다. 무슨 곡절일까?

이것이 바로 오디오의 마력 아니겠는가?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헤드폰으로 머리를 동여매고 있으면 세상이 그 안에 갇혀버린다는 얘기. 감성과

지식, 활력과 열정…, 그 모든 것들을 소니 오디오가 그 튼튼한 오랏줄로 동여매버린다는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그렇게 예단하기에는 뭔가 찜찜하다. 비주얼에 담긴 상징적 의미가 장님 코끼리 더듬기다. 오디오 광고 특유의 시끌벅적한 광란도 보이지 않는다.

음악의 코드는 기호로 대치돼 있다. 갑갑한 차에 이 광고 캠페인을 제작한 광고대행사 레오버넷에 메일을 보내서 힌트를 요청했다. 보름간의

기다림 끝에 날아온 회신치고는 너무나 불친절한 답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광고캠페인의 슬로건 ‘Protect yourself’에 답이

있다고 거드름을 피운다. 소니 오디오는 당신을 세상의 모든 소리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준다는 메시지. 그런 얘기를 그림만 봐도 느낄 수 있게

사운드를 비주얼적으로 은유한 작품이란다.

소리를 그림으로 표현했다고? 김광균의 시 <외인촌>의 한구절이 문득 떠오른다. “…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 광고에도 이처럼 오감을

총동원해야 감을 잡을 수 있는 시ㆍ공ㆍ감각적 표현이 있다니. 요즘 소니 광고는 갈수록 정말 오리무중이다.

그렇다. 이미지는 모든 것을 삼키고 사운드는 모든 것을 잠재운다.

요즘 가요를 보면 소리(聲)는 있되 음(音)이 없고 음은 있어도 악(樂)이 없다. 겉으로 드러나는 소리는 온 사방을 울리고 있지만 인간의

본성에서 우러나는 참된 소리가 없는 것이다.

논어는 낙이불음(樂而不淫)을 종용했다. 즐기되 지나치게 빠지지 말라는 타이름이었다. 애이불상(哀而不傷)이라고도 했다. 슬퍼하되 자신을

상하게 하지 말라고 했다. 조성모가 내뿜는 애상의 발라드는 깊은 슬픔을 녹여서 영혼을 정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뮤직앨범 <아시나요>는

젊은 가슴들에 쉽사리 아물지 않을 상처를 남기고 말았다.

김광석의 절규는 아직도 지상을 떠돌며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을 할퀸다. 서태지의 하드코어는 마니아들에게는 천상의 유포니였지만 문외한에게는

악마의 굉음이었다. 그의 컴백 타이틀곡 <울트라맨이야>는 대중을 겨냥하기보다는 자신의 음악을 알아주는 10, 20대 골수 팬들과의 교감을

염두에 둔 음악이었다고도 한다

H.O.T의 티켓 한장을 구하기 위해 엄동설한 속에서도 2박3일을 길거리에서 노숙했던 극성 팬클럽. 뉴키즈 온 더 블록의 공연장에서 광분하다

못해 울부짖으며 속옷까지 벗어서 내던졌던 여중생들. 무엇이 그토록 아드레날린을 분비하게 했을까? 그들에게 음악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소니의 오디오 광고 연작은 이렇게 대답한다. ‘음악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음악이 너희에게 길을 열어줄지니 그 계시에 귀 기울일 지어다.’

카피를 한번 음미해 보자. 카세트플레이어의 포로가 되어 있는 아가씨를 향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곧 그들이 말해줄 거야. 네가 어떻게

느껴야 할지.” 누군가의 음악에 빠져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가슴을 송두리째 맡겨버리고 있는 비주얼. 그런 젊음을 향해 소니 오디오는 사운드를

제대로 감상하는 방법을 제시해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는 것이다. CD플레이어 광고는 또 이렇게 말한다. “어느 날 그들이 말해 줄 거야.

네가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어느 날 그들이 말해 줄 거야. 누구랑 함께 자야 할지.” 소니 오디오에 머리와 아랫도리를 맡겨봐. 생각까지

대신 해주고 섹스파트너까지 소개해 줄게. 뭐 이런 식이다. 참으로 솔깃한 감언이설이 아닐 수 없다. MP3플레이어 광고는 두 다리를 와이어로

묶어놓고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언젠가 그들이 말해줄 거야. 네가 어디로 가야 할지.”

이쯤되면 음악은 예언자요 메시아의 경지에 등극한다. 소니의 오디오 기기들 속에서 뮤지션들은 21세기에 부활한 마호메트요 예수로 자리잡는다.

그런 맥락에서 지금 브라운관의 총아로 떠오르고 있는 ‘god’는 결코 건방진 그룹네임이 아니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이미 이름 그대로 신이

되어버렸는지 모른다. 뻔히 보이는 ‘거짓말’일지언정 그들이 읊조리는 노래가사는 복음이 되고 계시가 되어 아이들의 삶을 인도하고 있다.

이현우/ 프리랜서 카피라이터·광고칼럼니스트 hyuncom@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