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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행증>의 배우 자크 검블랑 Jacques Gamblin
2002-06-27

뜨거운 호기심, 시적인 말솜씨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리는 프랑스영화제 개막에 맞추어 프랑스 영화인들이 한국을 찾았다. 6월17일 오전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한 그들은 영화제 상영작들의 다양한 성격만큼이나 다양한 표정이었다. 프랑스식 농담을 즐기는 여유로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웬만하면 웃지 않는 진지한 얼굴도 있었는데, <통행증>의 자크 검블랑(45)은 후자에 속했다. 오후에 따로 마련된 인터뷰 자리에서 그에게 스스로를 무거운 성향의 배우로 보느냐, 가벼운 성향의 배우로 보느냐 물었더니, 그는 “어느 쪽도 아니다. 나는 어느것에나 호기심을 느끼고 항상 배우로서 열려 있다. 내 필모그래피는 무거운 영화와 가벼운 영화가 고루 섞여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1984년 단역배우로 영화에 입문한 이래 가브리엘 아기옹의 <페달 듀스>(1996)에서 낮에는 은행원으로 밤에는 게이로 사는 남자로, 필립 리오레의 <마드모아젤>(1999)에서 상처입은 즉흥극 배우로, 클로드 샤브롤의 <거짓말의 빛깔>(2001)에서 질투심 많은 화가로, 다채로운 연기를 선보인 자크 검블랑은 지난 베를린영화제에서 <통행증>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으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통행증>은 2차대전 중 프랑스에서 독일영화사 콘티넨탈 필름의 영화 조감독이자 프랑스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던 실제 인물의 이야기를 그리는 베르트랑 타베르니에의 영화. 검블랑은 주인공 장 드베브르 역을 맡아 그의 영화에 대한 열정과 영화작업의 고단함, 레지스탕스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내면의 풍경 등을 진중하고도 인간미 있게 표현해 깊은 인상을 준다. 실제로 연극 기술스탭으로 일한 바 있는 검블랑은 영화 조감독이라는 배역이 낯설지 않았다고. “조감독이란 영화현장에서 가장 어렵고도 빛이 안 나는 스탭입니다. 권위도 있어야 하지만 친근감도 있어야죠. 나는 초기에 연극현장 기술직으로 일한 경험에다 영화촬영 중 현장에서 조감독들을 관찰한 경험으로 이를 그려내려 했습니다.”

한국방문은 이번이 처음인 검블랑은, 그러나 몇해 전 이마무라 쇼헤이의 <간장선생>을 찍을 때의 경험을 대단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포로 수용소에서 탈출한 네덜란드 병사 역을 맡아 (통역은 있었지만) 주로 바디랭귀지로 스탭들과 소통하며 영화를 촬영했던 그는 “프랑스인으로서 일본에서 독일어를 하는 네덜란드인”을 연기했던 일을 이야기하며 즐거워했다.

검블랑에게 연기란 “영화라는 하나의 조각품을 만들기 위해 맡은 역할에 해당하는 어느 한 부분을 조각하는 일”. 그는 최근 1년간 영화를 쉬고 있는데, 이는 “내 우편함에 내가 잘할 만한 역할이 도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와의 인터뷰는 이처럼 시적인 언변들로 가득했다. 단순한 질문에도 오랫동안 한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넘어가며 에세이를 쓰듯 답하는 그에게서는 고다르 영화에서 자주 보듯 카페에 앉아 추상적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즐기는 프랑스인의 기질이 진하게 배어났다. 한편, 스크린쿼터 등으로 할리우드에 맞서 자국영화 보호에 신경쓰는 한국영화계에 동지의식을 표시하면서, 그는 “프랑스도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많이 싸웠다. 그리고 그 일은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늘 반복된다”고 전하기도 했다.글 최수임 sooeem@hani.co.kr·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