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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광의 밤, 그리고 슬픔이 문을 두드리다
2002-06-27

신경숙의 이창

십오년 전 그해의 6월10일을 기억한다. 나는 운동권 학생도 뭣도 아니었지만 그날 아침 일찍 연세대학교 이한열 장례식에 참석했다. 친구들과 함께였다. 눈썹이 유난히 짙었던 청년의 죽음은 그 당시 젊은이들을 한데 결집하게 했다. 그처럼 많은 인파 속에 섞여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새벽부터 장례식장에 도착한 사람들은 차례로 줄을 지어 앉았다. 그 행렬이 정문 바깥까지 이어졌다. 담장 위, 나무 밑, 틈나는 공간이면 어디나 사람들이 가득이었다. 간간이 구호를 외치고 나면 거대한 침묵이 사람들 사이를 흘러 다녔다. 노제를 지내기 위해 연대에서 시청까지 이어지는 운구 행렬을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뒤따랐다. 고통은 가슴을 유월의 태양은 눈을 찔렀다. 그날의 시청 광장을 가득 메운 열기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덕수궁 돌담 위 지하철 출입구의 지붕 위까지 사람들이 모래알 같이 모여들었다. 모르는 사람들과 손을 잡고 한마음이 되었던 그날의 열기는 울분과 슬픔 속에서도 이제는 자랑할 수 있는 역사를 새로 짜보고자 하는 희망의 열기이기도 했다. 늘 시달리던 두통도 걷히고 한없이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것만 같던 무기력도 사라졌던 날이었다. 결국 또다시 최루탄이 터지는 와중에 친구들을 잃어버리고 가방도 신발도 잃어버렸다. 그래도 깊은 밤중까지 거리를 쏘다니며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한번도 쐬어보지 못한 그 열기가 지나가고 났을 때 뜻밖에 친구의 부음을 들었다. 얼마나 당혹했는지. 내가 혹은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과도 손을 잡고 희망에 부풀어 있을 때 그녀는 단독으로 치악산 밑에서 죽었다. 수줍고 말을 더듬고 사회성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사인은 거식증이었다.

시청 앞을 지날 때면 저절로 그날의 열기가 떠올라 깊은 숨을 쉬곤 했다. 그때와 같은 인파를 어찌 다시 볼 수 있겠는가 생각했다. 깊은 숨의 뒤끝엔 어김없이 죽은 친구의 얼굴도 함께 떠올랐다. 가장 고통스러웠을 때 함께 있어주지 못했던 자책과 우리를 휩쓸던 그 열기는 다 어디로 갔나, 싶은 쓸쓸함에 얼굴을 매만져보곤 했다.

그런 그 열기를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축구 때문에 다시 느끼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축구에 완전 백치인 나 같은 사람조차 그렇게 기쁘고 흥분이 될 줄은 몰랐다. 게임의 룰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내가 사람들 속에 섞여 긴장하고 흥분하고 안타까워하며 응원을 하게 될 줄이야. 종내엔 이탈리아전이 있던 날 거리의 열기를 함께하고 싶어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집 바깥으로 나가게 될 줄이야. 경기가 끝나고 난 뒤 오토바이와 트럭과 자동차에서 흘러나오는 경적소리가 그렇게 듣기 좋을 줄이야. 뺨에 태극기를 붙이고 양손을 쳐들고 대한민국을 외치는 젊은 친구들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줄이야. 그들은 모르는 나를 향해 함박웃음을 쏟아내며 손바닥을 부딪혀왔다. 어디서나 누군가 오- 하고 운을 떼면 일제히 합창하며 마무리를 짓는데 어쩌면 그렇게 착착착 맞아떨어지는지. 둥둥둥- 서로 어깨동무를 하며 흥이 나 있는 젊은 친구들 속에 섞여 있는 시간은 즐거웠다. 누가 그런 친구들에게 단결심이 없고 개인적이며 국가와 민족에 무관심하다고 했던가. 그들은 정열적이었고 서로 협력했으며 질서정연했다. 게다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으며 투명하기까지 했다. 아, 우리나라에도 이제 무엇에도 억압받지 않고 구김없이 축제를 즐기는 세대가 등장했구나, 싶어 가슴이 벅차기까지 했다. 밤이 늦어 버스는 끊기고 오가는 택시도 눈에 띄지 않아 집에까지 걸어가야 되나 어쩌나 거리를 방황하고 있는데 태극기를 단 승합차 한대가 멈춰 서며 내가 사는 동네 이름을 외쳤다. 승합차는 사람들을 태울 수 있는 만큼 태우고 출발했다. 차 안에서도 모르는 사람끼리 신나게 웃고 떠들었다. 동네 입구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 올라오다가 차를 세워둔 곳에 가서 그 깊은 밤중에 시동을 걸고 경적을 한번 울려봤다. 거리에서부터 왜 그게 그렇게 해보고 싶었던지.

다음날에야 자동응답기 재생버튼을 눌러봤다. 동료소설가가 타계했다는 음성메시지가 흘러나왔다. 뭐? 순식간에 피가 식고 전신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그는 이제 겨우 마흔인데? 고인이 원해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가족끼리 장례를 치른 뒤라고 했다.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유럽의 강팀을 꺾은 기쁨에 들떠 있을 때 그는 홀로 다른 세상으로 간 모양이다. 그가 몸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알았지만 죽음에 이를 정도라는 건 생각조차 못했다. 게다가 최근 새 작품을 펴내기도 했고 계간지에 연재소설을 시작하기도 해서 이제 건강을 되찾은 줄 알았다. 근일에 볼 수 있으려니… 했다.

거리를 메운 엄청난 인파와 환호, 그리고 한 인간의 쓸쓸하고 가여운 죽음. 마음을 스치고 지나가는 이런저런 상념들. 2002년 여름의 초입에 나는 다시 한번 깊은 숨을 내쉰다.신경숙/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