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제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미리 보기
2002-06-28

자연, 신의 분노

사인즈 오브 라이프

Lebenszeichen ┃1968년 ┃87분

베르너 헤어초크의 장편 데뷔작이다. 헤어초크는 자신이 쓴 각본으로 얻어낸 30만마르크의 기금으로 영화 제작에 착수했다. 1942년 2차대전 당시의 한 섬을 무대로 하고 있다. 주인공 슈트로첵과 그의 그리스인 아내 노라, 그리고 그의 두 친구 마인하르트와 베커가 영화의 중심인물이다. 마인하르트와 베커는 이 고립된 섬에서 자신들만의 강박적인 일- 혁신적인 바퀴벌레덫의 개발이나 다소 기이한 고고학적 연구 따위 - 에 매달리며, 그 가운데 주인공 슈트로첵은 서서히 미쳐간다. 슈트로첵이 산정에 올라 보게 되는, 평원에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수많은 풍차들의 파노라마, 그리고 자신을 압도하는 풍경에 대한 반응으로 점점 미쳐가는 그의 모습은 이후 전개될 헤어초크 영화를 예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1968년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했다.

난쟁이도 작게 시작했다

Auch Zwerge haben klein angefangen ┃1970년 ┃96분

일군의 난쟁이들이 자신들이 거주하던 곳의 소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폭동을 일으킨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오직 난쟁이들뿐이며 따라서 영화의 배경이 난쟁이들만이 거주하는 상상적 세계라고 생각해보는 것도 가능하다. 단 영화 초반부에 난쟁이를 취조하는 이의 목소리- 그의 모습은 화면을 통해 보여지지 않는다- 만은 보통 사람의 그것처럼 들리는데, 이는 어쩌면 자신에게 도전한 인간을 심판하는 신의 목소리일 수도 있다. 난쟁이들이 십자가에 원숭이를 매달고 불붙은 화분들 사이로 행진하는 장면, 한바탕 소동으로 귀결되고 마는 만찬장면 등은 지극히 그로테스크하다. 멕시코와 카나리아 제도에서 촬영된 이 영화는 브뉘엘적인 암시로 가득하며, 개봉 당시 영화의 모호하고 냉소적인 정치적 알레고리로 인해 독일 내 좌파들을 자극하기도 했다.

파타 모르가나

Fata Morgana ┃1970년 ┃79분

제목 ‘파타 모르가나’는 신기루를 의미한다. 영화는 비행기가 착륙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해 사막의 풍경과 신기루를 황홀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넘어간다. 전체적으로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천지창조’, ‘낙원’, ‘황금시대’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헤어초크가 풍경에 대한 매혹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첫 번째 작품이며, 특히 기나긴 수평이동 촬영의 효과가 압도적이다. 죽은 동물의 시체, 부서진 비행기 잔해, 버려진 건물들 등을 보여주는 폐허 이미지는 이후의 영화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들이다. 마치 사막의 경관을 보여주는 자연다큐멘터리처럼 시작했던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더 부조리해지는데, 헤어초크는 여기서 이미지와 이미지간의 병치, 이미지와 사운드의 병치를 거의 부조화의 극한까지 몰고 간다. 초기 헤어초크 영화를 논하는 데 중요하게 다뤄지는 영화 가운데 하나이다.

조각가 슈타이너의 황홀경

Die Große Ekstase des Bildschnitzer Steiner ┃1973년 ┃47분

나무 조각가이자 스키 플라이어인 발터 슈타이너를 다룬 다큐멘터리영화. 그가 경기에 출전하여 스키를 타고 허공을 가르는 모습이 포폴 부의 음악과 함께 신비스럽게 보여지는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동시에 이 영화는 짜릿한 매혹과 공포가 가장 극적인 형태로 공존하는 헤어초크 영화로 꼽힐 만하다. 헤어초크는 스키어가 허공에 떠 있는 순간을 고속촬영을 통해 보여줌으로써 홀린 듯한 느낌을 전해주는데, 때로 스키어가 거칠게 눈에 처박히며 미끄러지는 모습에서는 전율이 느껴지기도 한다.

라 수프리에르

La Soufriere ┃1977년 ┃31분

헤어초크가 카메라맨 둘을 동반하고 화산폭발 경고로 인해 주민들이 모두 떠나버린 섬으로 들어가 찍은 다큐멘터리. 텅 빈 거리에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으며 굶어죽은 개의 시체, 배회하는 짐승들만이 쓸쓸한 풍경을 흡사 폐허처럼 보이게 만들 뿐이다. 하지만 헤어초크는 시종일관 연기를 뿜어대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산에 올라 그 장엄한 광경을 카메라에 담고자 하며, 그 가운데 섬을 떠나지 않고 죽음을 기다리는 부랑자들과 만나 인터뷰를 하기도 한다. 우리 지각의 한계를 넘어서는 압도적인 대상을 찾아 매혹되며, 이러한 경험이 화면 전체를 통해 흘러 넘치게 만들고자 하는 헤어초크 자신의 관심이 가감없이 드러난 영화.

노스페라투

Nosferatu: Phantom der Nacht ┃1978년 ┃103분

스스로를 독일 표현주의의 거장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의 후계자로 자처했던 헤어초크가 무르나우의 원작에 대한 존경을 담아 만든 영화. 헤어초크는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를 “가장 위대한 독일영화”라 부르기도 했다. 이자벨 아자니가 조나단 하커의 아내 루시 역을 맡았고, 클라우스 킨스키가 드라큘라 백작으로 출연한다. 한편 조나단 하커 역은 <베를린 천사의 시>의 천사 브루노 간츠가 맡아 연기했다. 헤어초크 영화 가운데 처음으로 국제적인 대자본이 투입된 영화로, 프랑스의 고몽이 합작했고 20세기 폭스에 의해 배급되었다. 헤어초크 영화 가운데 가장 매력이 덜한 작품인 것도 사실인데, 단 특유의 낭만주의적 터치로 백작의 성이 있는 트란실바니아의 풍광을 묘사하는 데서는 그만의 특징이 잘 살아나고 있다. 원작과 달리 흡혈귀가 된 조나단이 지평선을 향해 말을 타고 달려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맺는 결말도 헤어초크답다.

피츠카랄도

Fitzcarraldo ┃1982년 ┃157분

헤어초크가 역시 클라우스 킨스키를 주연으로 삼고 아마존 정글로 들어가 자연에 도전하는 위대한 몽상가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은 작품. 오페라, 특히 엔니코 카루소의 목소리에 매혹된 피츠카랄도는 오지에 오페라 하우스를 건설하여 카루소를 초청해 공연을 열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 피츠카랄도가 수많은 원주민을 동원해 배를 끌고 산을 넘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장면을 만들어내는 헤어초크에 대해 거의 경외심 가까운 감정이 들기도 한다. 영화 제작에 얽힌 사연은 이번 영화제에서 같이 상영되는 헤어초크의 다큐멘터리 <나의 친애하는 적>이나 레스 블랭크의 <버든 오브 드림스>를 통해 접할 수 있다. 촬영중 킨스키의 광기에 놀란 원주민들이 헤어초크에게 자신들이 그를 죽여주겠다고 제의하기도 했다고 한다.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어둠의 교훈

Lektionen in Finsternis ┃1992년 ┃52분

영화는 “우주의 붕괴는 화려한 광채 속에서 마치 창조처럼 다가올 것이다”라는 파스칼의 말로 시작한다. 여기서 헤어초크는 걸프전 이후 폐허가 된 쿠웨이트의 유전지대를 찾아간다. 헬기 촬영을 통해 전쟁 이전의 풍경이 신비스럽게 펼쳐지는 도입부를 지나면 의 자료화면이 잠깐 보여지는데, 이는 멀리서 바라본 관찰자에 의해 스펙터클이 되어버린 이미지에 대한 헤어초크의 비판 내지는 혐오로 읽힐 수도 있다. 검게 변색된 대지, 흡사 물처럼 빛나는 오일 호수, 하늘로 치솟는 불기둥 등의 이미지는 다시 한번 헤어초크만의 무시무시한 매혹의 경험을 선사한다. 90년대 들어 헤어초크는 주로 다큐멘터리 작업에 집중했는데 <어둠의 교훈>은 그 가운데 단연 최고로 꼽힐 만한 작품이다. 구스타프 말러, 프로코피에프, 베르디, 그리고 바그너 등의 음악이 전편을 휘감고 있는 이 영화는 헤어초크의 오페라 연출 경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그만의 ‘스페이스 오페라’이자 강력한 문명비판서이다.

나의 친애하는 적

Mein liebster Feind: Klaus Kinski ┃1999년 ┃95분

헤어초가 자신과 다섯편의 영화작업을 같이한 바 있는 클라우스 킨스키에 대해 다루고 있는 작품. 킨스키에 대한 (애정이라기보다는) 애증을 담아 만든 다큐멘터리다. 킨스키 사후, 헤어초크는 자신이 어머니와 함께 살던 옛 집을 방문해, 지금 그곳에 살고 있는 노부부에게 킨스키에 관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들려준다. 그리고 장소는 바뀌어 헤어초크는 킨스키와 첫 영화 <아귀레, 신의 분노>를 찍었던 곳으로 향하는 열차에 몸을 싣고 있다. 영화에 등장한 몇몇 장소를 돌아다니며 그는 킨스키와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들을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여기엔 언론에 의해 왜곡되거나 잘못 알려진 일화에 대한 언급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보이체크>에서 킨스키와 공연한 에바 마테스, <피츠카랄도>의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등이 킨스키의 숨겨진 따스함과 매력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상영작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코브라 베르데> 등, 킨스키 주연의 다른 영화들의 몇몇 장면도 볼 수 있다.

인빈서블

Invincible┃2001년┃130분

때는 바야흐로 반유대주의의 기운이 끓어오르고, 히틀러가 독일의 강력한 지도자로 급부상하기 시작할 무렵. 폴란드에서 이민온 유대인 대장장이 지세 브라이트바르트는 악몽을 꾸게 된다. 자신이 꾼 꿈에 대해서 라비와 상담한 지세는 그 꿈이 자신의 민족에게 닥친 운명을 경고하고 있으며, 자신은 그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신으로부터 선택되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2차대전 전의 독일 분위기와 그 상황 속의 한 인물을 통해 선민주의와 우상, 강력한 권위를 은유적으로 풍자하고 있는 작품.▶ 독일 뉴저먼 시네마의 기수 베르너 헤어초크 회고전

▶ 제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미리 보기

▶ <피츠카랄도> 메이킹 다큐, <버든 오브 드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