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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리포트]수렁에 빠진 첸카이거
2002-07-02

첫 영어영화 <킬링 미 소프틀리> 런던 개봉, 악평 쏟아져<패왕별희> <풍월> 등으로 유명한 중국 제5세대 감독 첸카이거가 미국으로 옮겨간 뒤 연출한 첫 번째 영어영화 <킬링 미 소프틀리>가 지난주 런던에서 개봉했다. 아쉽게도 이 영화는 언론으로부터 최악의 평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가디언>의 피터 브로드쇼는 나빠도 더이상 나쁠 수는 없는 영화라고 단정짓고 있는데다가, 대개의 유수 일간지들이 별점 10개 만점에 1, 2개의 별점만을 주고 있다.이 영화는 영국 작가인 니치 프렌치(부부작가인 니치 제라드와 숀 프렌치의 공동저자명)의 동명 스릴러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지난해 10월 말부터 런던에서 촬영됐다. 주연인 여자배우는 <오스틴 파워> <부기 나이트> <트윈 픽스> 등에 출연한 바 있는 헤더 그레이엄, 남자배우는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셰익스피어를 연기했던 영국 배우 조셉 파인즈. 영화의 촬영은 <노팅힐> <센스 앤 센서빌리티> 등을 촬영한 바 있는 영국의 베테랑 촬영기사인 믹 콜터가 맡았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소설 원작에, 전설적인 중국 감독에, 낯익은 배우들의 이름만으로도 이 영화는 웬만한 영화들이 갖추어야 할 성공조건을 넘치도록 갖추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영화의 줄거리상의 전개를 보면, 런던에서 일하는 미국 여성 알리스는 남자친구와의 편안하지만 다소 지루한 관계를 끝내고 우연히 만난 아담이라는 핸섬하지만 어딘가 불길해 보이는 산악전문가와 열정적인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다. 이후 알리스는 그를 조심하라는 경고 편지들을 받게 되고, 아담과의 극단적인 섹스에 탐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런던 배경에 히치콕 스타일의 스릴러가 되어야 했던, 그것도 제작사의 광고문구에 따르면, 에로틱스릴러가 되어야 했던 이 영화는 불행히도 이미 올해 최악의 영화 후보작에 올랐다.특히, 격한 섹스신들은 제대로 연출되지 못해 오히려 우스꽝스러워보인다는 게 평론가들의 중평. 첸카이거가 원작 소설의 플롯을 완전히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지적부터 시작해서, 영어로 연기하는 배우들의 감정을 전혀 면밀하게 통제하지 못한 연출의 부족함을 지적하는 비판이 주를 이른다. 그래서 조셉 파인즈는 영화 내내 로저 무어처럼 딱딱하게 굳은 얼굴만을 하고 있고, 헤더 그레이엄 역시 극단적인 감정들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 다른 한편에서는 이런 단점들을 소설을 각색한 카라 린드스트롬의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린드스트롬은 <스트레인지 데이즈>와 <사선에서>의 세트 디자인을 맡았던 인물로 이 영화가 극작가로서의 그의 데뷔작이다. 영화의 원작소설인 <킬링 미 소프틀리>는 날카로운 캐릭터 소설을 무시무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감동적인 심리스릴러로 이끌어갔다는 호평을 받았었다.첸카이거는 한 인터뷰에서 이 영화를 중국에서라면 절대 만들 수 없었을 에로틱한 영화라고 말한 바 있다. 영국의 비평가인 토니 레인즈는 <타임 아웃>에 실린 그의 리뷰 마지막에서, 첸카이거가 이 영화를 그의 서구에서의 데뷔작으로 택한 것은, 베이징에서는 허락되지 않던 그런 유의 섹스신을 연출해보기 위한 의도였든가, 아니면 단순히 그가 무엇이 좋고 나쁜지 판단할 수 없다는 증거일 것이라고. 한편에서는 중국의 위대한 감독 중 하나였던 첸카이거가, 빈약한 스크립으로도 영화를 만들어내야 하는 할리우드의 고용 감독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우려를 낳고 있다.런던=이지연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