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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 음악감독 박정원
2002-07-10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즐거움

첫사랑의 느낌이 딱 이랬을 것이다!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노래한 <I am not a girl, not yet a woman>의 제목 그대로, 소녀와 여인 사이에서 묘한 떨림을 내는 ‘마리’의 목소리는 음악감독 박정원(40)의 귀와 가슴으로 예민하게 파고들었다. 50여명이 모여든 오디션장에서 열에 아홉이 R&B창법으로 박화요비, 휘트니 휴스턴, 머라이어 캐리, 카디건스 등을 불러젖힐 때, ‘마리’는 조금의 기교도 없이 어린아이 같은 목소리로 지정곡 <Graduation Tears>(진추하 노래)를 소화해냈다. 그 순간 박정원의 가슴속에는 ‘와! 멋있다’는 감탄이 절로 터져나왔다.

노래를 불러줄 가수가 결정됐지만, 주제곡 <Surprise>는 더디게 제 모습을 드러냈다. 진작에 작곡을 마친 뒤에도, 가사가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 공모된 여러 편의 가사 중에서 영화의 분위기에 맞는 걸 찾기가 힘들었다. 스무편 정도를 반려하고 난 뒤였나. 문득 가사 한줄이 눈에 띄었단다. “살금 살금… 다가가도 괜찮은 거니….” 그 말투가, 내용이 어찌나 조심스럽고, 예쁘던지 입가에 웃음까지 걸렸다. <Love>를 부르게 된 임성훈 역시 그 음색이 맑고 상큼할뿐더러, 수줍은 느낌을 간직한 외모 덕분에 박정원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케이스. 오디션에서 지정곡으로 쓰였던 <Graduation Tears>는 분위기가 잘 맞아 애초에 영화에 직접 쓸 생각이었으나 대만 매니지먼트먼사에서 개사를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됐다고.

음악작업 전, “단서가 되는 한 가지의 느낌”을 찾기 위해 박정원은 여러 편의 코믹멜로영화를 참조했다. 그러다 푼수끼 가득한 이요원의 캐릭터가 멕 라이언과 닮아 있음을 깨닫고,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등을 통해, 상큼하고 풋풋한 이미지를 악보 속에 벤치마킹했다. “일단 영화가 예쁘잖아요. 음악도 그렇게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신선하고 예쁘게….” 박정원의 특기는 무엇보다 ‘가벼움’이다. 그는 칙칙하고, 무겁고, 진한(그의 표현이다) 음악, 과격한 음악을 젤 싫어하고, 그의 말마따나 젤 못한다. 그래서 코드를 써도 무조건 마이너보단 메이저다. 인간의 희로애락을 표현하기엔 피아노만한 악기가 없다고 하면서도, 그의 전공은 베이스 기타다. 이미 중학교 때 진로를 결심한 그는 귀가 상할까봐, 등교길에 큰소리로 트로트를 틀어주던 버스기사 아저씨와 충돌한 웃지 못할 추억도 가지고 있다. 대학 때 다양한 그룹사운드를 활동을 통해 퓨전재즈 음반을 내기도 한 그지만, 당시 너무 투쟁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통에 사람들과 적잖은 갈등을 빚기도 했다고. 지금은 어느 때보다 즐기면서 음악을 하는 중이다.

영화에 앞서 드라마음악의 연이은 대박(<가을동화> <겨울연가>)이 그에게 많은 자신감을 실어준 것도 여유로움의 큰 이유가 됐다. 앞으로 제작될 국내 애니메이션에도 보폭을 넓힐 예정이라는 박정원은, 끝으로 “창작은 정보가 아니”라며, 확산되는 음악 무료 다운로드 사이트의 폐해를 경고했다.글 심지현 simssisi@dreamx.net /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프로필

→ 1963년생·동아대학교 관광경영학과 82학번

→ 대학 재학 중 그룹사운드 ‘평균율’, ‘허니문’ 등에서 베이스 기타리스트로 활약하며 음반을 내기도 함

→ 3인조 그룹 ‘모노’로 활동

→ 드라마 <종이학> <가을동화> <겨울연가> 등의 음악 맡음

→ 영화 <댄스댄스> <서프라이즈>의 음악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