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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의 오!컬트 <죽은 시인의 사회>
2002-07-24

소 롱∼ 캡틴 마이 캡틴!

존경하는 키팅 선생님.

선생님께서 닐의 자살사건 때문에 150년 전통의 명문 웰튼고등학교에서 축출당하신 이후 선생님의 소식을 다시는 들을 수 없었습니다. 잘 계시는지요. 여기는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자리한 한국이라는 나라입니다. 선생님의 고향 영국과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이지요. 이렇게 먼 곳까지 날아온 ‘필름’을 통해서 선생님을 뵌 것이 어언 13년쯤 되는 것 같습니다. 당시에 열혈 20대 청년이었던 저는 미술학원에서 대학 입시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저의 제자들에게도 키팅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고 싶어서 원장 선생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창 입시 준비를 해야 하는 미술학원 학생들을 이끌고 극장으로 단체 관람을 갔답니다. 새벽별보기 운동을 하던 고3 학생들이 눈물을 펑펑 쏟아내더군요. 그리고는 병든 닭 같던 아이들의 눈빛은 조금이나마 달라졌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 아이들의 마음속에 강한 에너지를 넣어주셨습니다. 그 다음주에 저는 학원에서 권고 사직을 당했습니다. 그때는 마치 키팅 선생님의 뒤를 따르는 듯한 기분까지 들더군요. 그 이후로 다시는 입시 학원은 기웃거리지도 않았고, 선생님의 가르침처럼 제 삶에 가장 가치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우선으로 생각하며 지금까지 살아왔답니다.

세월은 흐르고, 열혈청년이었던 저는 아저씨가 되었고, 당시에 10대였던 입시생들도 벌써 30살이 됐겠군요. 그렇게 세월이 흐르는 동안 키팅 선생님의 존재도 일상 속에서 가물가물 잊혀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이렇게 불쑥 선생님을 전깃불처럼 기억해내고는 새삼 편지까지 띄우게 된 것은 여기 대한민국이라는 먼 나라에서 혹시 키팅 선생님이 아니실까 하는 분을 실제로 보았기 때문이랍니다.

그분은 이름까지도 왠지 키팅 선생님과 비슷한 어감을 가지신, 히딩크라는 분입니다. 하하… 네덜란드에서 오신 축구 감독인데 1년6개월 동안 저희 나라 대표팀을 맡아주셨답니다. 그러고보니 키팅 선생님께서 웰튼고교 학생들에게 축구를 통해 인생을 가르치던 장면도 생각나는군요. 제자들에게 슛 한방에 자신을 둘러싼 껍질들을 날려버리도록 하신 것처럼 그분께서도 월드컵이라는 게임을 치르면서 우리가 가진 수 많은 콤플렉스와 한계상황들을 스스로 깨부수도록 이끌어주셨답니다. 결정적인 찬스를 번번이 놓친 선수들을 끝까지 교체하지 않음으로 결국 스스로 만회하도록 하셨던 것도 우리에게 너무도 큰 선물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인은 원래 체격조건이 서양인에 비해서 열등하다는 식의, 우리의 패배주의적 고정관념조차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통해서 세계에서 가장 강한 체력의 팀으로 바꾸어놓으면서 세계 40위권의 팀을 월드컵 4위에 올려놓으셨답니다.

그분이 하신 일은 새로운 축구기술의 전수가 아니라 ‘자신을 발견하는 새로운 눈을 뜨게 하는 것’이었음을 이제서야 알고나니 퍼뜩 키팅 선생님이 생각났답니다. 지금은 그분도 키팅 선생님처럼 떠나셨습니다. 우리 스스로 기적을 이룰 수 있게 해주신 그분을 이 나라는 그냥 돌려보냈습니다. 사실은 효용가치가 종료되어 쫓아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 겁니다.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분은 “굿 바이”라고 말하지 않고 “소 롱”이라는 인사로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저는 키팅 선생님이 떠나시던 그날의 제자들처럼 감사와 미안함과 분노가 뒤범벅된 채 그저 “캡틴 마이 캡틴…”이라고만 마음속 깊이 외쳤답니다.

소 롱, 캡틴 마이 캡틴 키팅 선생님. 당신은 그렇게 나타났다가 또 가시는군요.

감사합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김형태/ 화가·황신혜밴드 리더 http://hshband.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