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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냐, 권태냐
2001-03-28

숏컷 - 김지운칼럼

아는 친구의 콘서트를 갔다왔다. 마지막날 마지막 공연이어서 그런지 콘서트장은 수많은 인파로 발디딜 틈조차 없었다(나중에 듣기론 첫날부터

매진 행렬이었다고 한다). 공연내용도 대단히 성공적이어서 무대 뒤로 찾아온 사람들이 꽤 많아 보였다. 거기엔 내가 아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고

텔레비전이나 신문 잡지에서나 볼 수 있었던 분들도 있었다. 그들은 공연자에게 다가가 자신들이 받은 감동의 표현을 어떻게 해야 온전하게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한마디 한마디가 평생을 살아도 나는 들어보지 못할 것 같은 찬사의 파노라마였고 일종의 헌정시였으며 감동의 물결이었다. 나는 그 틈에 끼어

꼼짝 못하는 상황이었고 내가 조금만 여린 놈이었으면 그 한마디 한마디를 들을 때마다 뜨거운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엉엉 소리내며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그 표현, 너무 아름다워요…. 엉엉.” 그들은 진심이었다. 나는 그때 엉거주춤 그 틈에 끼어 이런 생각을 했다. 왜 나는 그런 말을

못할까? 왜 나는 그런 표현을 못할까? 나도 분명히 감동받았는데…. TV의 연예정보 프로그램이었다. 거기서 어떤 방송현장을 찾아갔는데 연출자가

오케이 사인을 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열연을 아끼지 않은 배우에게 뛰어가 바로 그거야!를 외치면서 그 배우를 거의 안다시피 했다는

애길 들었다. 그 얘길 들으면서 난 정말 한번이라도 내가 배우나 스탭한테 느낀 감동을 그렇게 표현한 적이 있었나? 하고 생각해보았다. 한번도

없었다. 분명 감동받은 적은 있지만…. 이런 일을 하다보면 몇 가지 떠오르는 화두 같은 게 있는데 그중에서 나를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단어가

바로 열정적 또는 정열적이란 말이다. 누군가에게 열정적이다 혹은 정열적이다라고 말할 때는 그것은 대개 그 누군가에게서 보여진 또는 표현된

어떤 것들을 근거로 말을 하게 된다.예를 들어, 그 사람, 말하는 게 참으로 열정적이야. 또는 거참, 일하는 모습이 정말이지 열정적이더군.

하다못해 그 친구, 밤새 정열적으로 포커를 치더니만…. 뭐 이렇게 누군가에게 시지각적으로 인상지워진, 보여진 것들이거나 표현된 것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나는 하나의 인간으로서 열정이나 정열이 한개도 없는 인간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바꿔 말해 나는 너무 표현

못하는 거 아닌가? 하고 말이다. 왜 안 되지? 표현하는 순간 그 진정성이 훼손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고작 이렇게 유치한 발상이 내가 표현에

미숙한 이유의 전부일까? 그냥 그도 저도 아닌 습관일 뿐인 걸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시원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인정머리없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상당히 건조하고 차가운 사람처럼 보이면서 다른 이를 섭섭하게 만들기도 하고 나 스스로도 갑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왜 가장 고조되고 충만되는 그 순간에 싸늘하게 냉각되는 걸까?

오래 전에 고 김현 선생이 죽파 김난초 선생을 두고 “김죽파는 계면조에 미친 젊은 예술가가 아니고 예술의 권태를 사랑하는 분이다”라고 써놓은

글을 읽고 감동받은 적이 있다. 나는 대중예술을 하는 사람으로뿐 아니라 한 자연인으로서도 열정적으로 표현하고 뿜어내는 삶을 살고 싶은 욕망과

과연 궁극은 무엇일까 하고 회의하고 반문하는 노예술가의 처연함에 대한 동경, 그 사이에서 불안하고 게으른 화두를 짐처럼 들고 서 있다.

“그 짐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김지운 | 영화감독·<조용한 가족> <반칙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