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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디어든 감독의 <겜블>
2002-07-24

오라, 대박이여

Rogue Trader 1999년, 감독 제임스 디어든 출연 이원 맥그리거MBC 7월28일(일) 밤 12시20분

이 남자, 위험하다. 회사 임원들은 오지에서 근무하는 그가 ‘큰손’이라고 굳게 믿는다. 몇십억의 돈을 요구해도 마다하지 않는다. 조건은 있다. 짧은 시간 안에 돈을 더 큰 규모로 불려야 한다는 것. 기실 남자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허상이다. 실체가 없는 계좌를 부풀려 돈을 벌고 차익거래 등으로 자본을 불려간다. 전형적인 성공 신화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위험한 거래가 오래 지속될 것이라 믿을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남자는 한순간도 도중에 멈출 수 없다. 아무도 그가 멈춰서길 바라지 않는다.

<겜블>은 실존인물의 이야기다. 영국 베어링스은행의 사원인 닉에게 새로운 업무가 주어진다. 인도네시아 채권정리의 업무가 그것. 닉은 예상을 초월한 수익을 거두게 되고 싱가포르 지사에 임명을 받는다. 증권 매니저가 된 그는 사람들 눈을 피해 유령계좌를 만든 뒤 거래를 시작한다. 불법거래다. 닉은 짧은 시간 내에 회사와 증권계를 놀라게 할 만큼의 수익을 거두지만 곧 빚더미 위에 올라앉는다.

<겜블>은 국제금융 시장을 무대로 하는 범죄영화다. 그런데 언뜻 범죄영화처럼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이 원하는 것은 명백하다. 성공을 꿈꾸고 있으며 더 많은 급여와 뒷돈을 바라고 있다. 그가 활동하는 장소 역시 도시 뒷골목이나 갱단의 소굴이 아니다. 소란스럽고 화려한, 현대 자본주의의 심장인 증권거래소다. 이곳에서 문제의 인물은 법적 제도와 회사의 감시망을 피해다니며 거대한 허상을 만들어낸다. 자신을 ‘미다스의 손’으로 재창조한 뒤 신용과 증권거래의 빈틈을 노리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교활한 사기꾼이자 범죄자다. 그렇지만 스스로는 이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겜블>은 일인칭 내레이션으로 극이 진행되는데 닉 리슨이라는 남자에겐 도덕적 죄의식 따윈 없다. “판돈을 자꾸 키우다보면 언젠가는 큰 벌이가 생기게 마련이야”라고 중얼거린다. 영화는 이 후안무치한 인물의 메마른 내면을 숨김없이 스크린 밖으로 드러낸다.

<겜블>의 제임스 디어든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로 알려졌다. 제임스 디어든 감독은 일상의 그물에 걸린 세속적 욕망의 비상과 추락을 다루곤 한다. 에이드리언 라인 감독의 <위험한 정사>(1987)의 시나리오를 썼고 이후 <죽음 전의 키스>(1991)를 연출해 명성을 얻었다. <죽음 전의 키스>는 성공에 집착하는 남성의 살인과 음모에 관한 스릴러물이었다. <겜블>에서 닉 리슨은 여느 실패한 성공담과는 달리 희생양이 아니었다. 그저 대박 신드롬에 사로잡혀 있을 뿐. 몰락해가는 어느 청춘의 욕망에 관한 보고서라는 점에서 <겜블>은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고전 <젊은이의 양지>(1951)를 연상케 하는 구석이 있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wherever70@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