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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전 <`공동경비구역 JSA`>
2001-03-28

심산의 충무로작가열전 12 송길한(1940∼)

전직경찰 송기열은 악명 높은 빨치산 짝코를 철천지 원수로 여기고 있다.

한국전쟁 직후 요행히 그를 체포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압송 도중 놓쳐버리는 바람에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져내린 까닭이다. 분명 실수로

놓쳐버린 것이지만 경찰당국과 마을사람들은 자신을 믿어주지 않았다. 그는 그 사건으로 인해 경찰에서 쫓겨나고 분한 마음에 술을 퍼마시다보니

재산도 탕진하고 가정마저 파괴되어버렸다. 이제 비참하게 몰락해버린 자신의 인생을 보상하는 길은 오직 하나, 짝코를 다시 체포하는 것뿐이다.

임권택의 걸작소품 <짝코>는 그렇게 쫓고 쫓기며 보낸 송기열과 짝코의 30년 세월을 다루고 있다.

<짝코>는 반공영화 같으면서도 반공영화를 넘어선다. 영화는 송기열과 짝코를

번갈아가면서 보여주는데, 추적자건 도망자건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뜨내기로 비참한 삶을 살아가기는 마찬가지여서, 관객으로 하여금 그 신앙처럼

굳어버린 광기어린 집념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자문하도록 만든다. <짝코>에 나오는 송기열과 짝코는 바로 분단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못난 자화상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철천지 원수로 여겨야만 하는가? 최근 <`공동경비구역 JSA`>가 멋진 방식으로

던진 이 새삼스러운 질문을 <짝코>는 이미 20여년 전에 훌륭한 캐릭터 드라마로 형상화해놓고 있다.

<짝코>가 유신체제 붕괴 직후인 1980년에 발표되었다는 사실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그의 부친이 빨치산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임권택이

이 작품 이후로 서서히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해갔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짝코>에서 처음 맺어진 송길한과 임권택의 파트너십은 이후 10편

가까이 계속되어 <씨받이>까지 이어지는데, 80년대 전반기는 곧 이들 콤비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흥행에서도 좋은 성적을

냈지만 해외평단에서 더욱 주목을 받아 한국영화의 국제적 위상을 크게 높인 작품이 <만다라>이다. 나 역시 대학 초년생 시절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볼 때부터 홀딱 반해서 지금껏 비디오테이프가 뭉개지도록 되풀이해 보고 있다. 법운 역의 안성기도 좋지만 지산 역의 전무송이 압권이며

특히 정일성이 카메라에 담은 수려한 이 땅의 산하는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완성되었더라면 <만다라>의 좋은 짝이 되었을 법한 작품이 <비구니>이다.

<만다라>의 스탭들이 고스란히 다시 모여 실존인물인 김일엽 스님의 일대기를 그리려했는데 주연을 맡은 김지미가 삭발까지 하고 촬영에 들어갔으나

불교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중도하차하고 만 불운의 작품이다. 종교와 인간에 대한 송길한의 관심은 이후 무속으로 옮겨가 <불의 딸>을 낳는다.

분단문제에 대한 좀더 냉철한 탐구가 돋보이는 작품은 <길소뜸>이다. 당시

전 국민을 TV 앞에 모아놓고 연일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 이산가족찾기운동의 여파를 담담히 그려낸 수작인데, 송길한은 여기서 거짓화해의 해피엔드

대신 고통스러운 파국을 선택한다. 모든 이가 바라는 빤한 멜로드라마의 공식을 과감히 무시하고 분단과 이산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 작가적

용기가 대단하다. 강원도 해변도시의 한 티켓다방을 배경으로 다방아가씨들과 마담의 꿈과 애환을 그린 <티켓>은 깔끔하고 따뜻한 소품이었다.

원로여배우 김지미와 안소영, 이혜영, 전세영 등 신진여배우들의 앙상블이 절묘했다. 조선시대의 대갓집 종손잇기 과정을 통해 인간의 추악한

욕망과 봉건적 가부장제의 모순을 파헤친 <씨받이>는 강수연에게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전북 전주 출생의 송길한은 본래 법학도로서 서울대 법대 출신의 엘리트다. 군복무 중 소설을 쓰기 시작해 서른살 되던 해인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흑조>라는 단편소설이 당선된 것을 계기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1973년 같은 제목의 시나리오로 충무로에 데뷔한 이후 현재까지

50편에 육박하는 시나리오를 써온 대표적인 충무로작가인데, 어찌된 일인지 1992년의 <명자 아끼꼬 쏘냐> 이후로는 작품활동이 뜸하여 아쉽고

안타깝다. <넘버.3>와 <세기말>로 유명한 송능한 감독이 그의 동생이다.

심산| 시나리오 작가 besmart@netsgo.com

◆시나리오 필모그래피

1973년

이상언의 <흑조>

1977년

설태호의 <도솔산 최후의 날>

1980년

임권택의 <짝코> ★

1981년

임권택의 <우상의 눈물> ⓥ

임권택의 <만다라> ⓥ★

1982년

임권택의 <안개마을> ⓥ

정진우의 <백구야 훨훨 날지마라> ⓥ

1983년

임권택의 <불의 딸> ⓥ

1985년

임권택의 <길소뜸> ⓥ★

1986년

임권택의 <티켓> ⓥ

임권택의 <씨받이> ⓥ

1989년

장길수의 <불의 나라> ⓥ

1992년

이장호의 <명자 아끼꼬 쏘냐> ⓥ

ⓥ는 비디오출시작

★는 자(타)선 대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