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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은 변하지 않는다?
2001-03-29

<6시 내고향> 등 농촌 프로그램이 담은 고향의 모습

KBS1 월∼금요일 오후 6시

서울에서 난 이들에게도 고향이란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이다. 그리움 속에서 고향 개울가는 발 동동 걷고

들어가서 가재를 잡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가득하고 봄이 오는 논가에는 메기고 받는 이들의 노랫소리가 가득하다. 농촌드라마에는 현실보다는 그런

향수, 그런 바램이 더 많이 묻어 있다. <전원일기> 양촌리 주민은 그래서 그런지 늙지 않는다. 20년의 세월이 흐르고, 중간에 5년을

건너 뛰어 금동이는 결혼했건만, 젊어서 나이 많은 이의 역을 맡아 분장에 신경썼던 배우들은 자신들의 자연나이로 복귀한 게 고작이다. 마음에

새겨진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대로 드라마의 어머니, 아버지도 그대이다. 현대화 농법에는 상관없이, 똥값이 되어버린 농산물 가격에는 상관없이

김회장에게 농사는 직업이나 돈벌이가 아니라 소명이다.

고향에 대한 향수, 도시와 농촌을 잇다

지난 3월4일로 <전원일기>는 1천회를 맞았다. 1천회 방송에서는 지방 방송국의 리포터가 김회장 댁을 방문한다. ‘사라져가는 미풍양속,

대가족’ 취재가 방송팀이 밝힌 목적. 어머니는 방송국 팀에게 진지 잡숫고 가라고 말씀하신다. 에 나오는 어머니들 모습 그대로

수줍고 어색하다. 대가들이 펼쳐보이는 이 징글맞은 리얼리티란. 그 방송 프로그램은 연유해보건대 <고향은 지금>이나 이 아니었을까.

도 <전원일기>에는 못 미치지만 역사가 오래되었다. 1월21일로 2천회를 맞으며 만 10년을 겪었다. KBS1의 농촌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도 12년째다. 농촌의 느림과 은근함이 방송의 바탕이 되는 빠름과 신속함에 대비돼 과장되어 보이는 탓인가.

지금 방송되고 있는 농촌 관련 프로그램이 의외로 많다. 눈앞의 봄철 개편을 지나면 어떻게 될 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당장 손에 꼽으면

KBS1 오후 6시 , MBC 아침 8시 <고향은 지금>, KBS2 아침 6시 <고향의 아침>, SBS 오후 4시35분 <네트워크

현장, 고향이 보인다> 등이 있다. 지방 방송국을 연결해 네트웍을 유지가동시키는 효과도 안겨주는 프로그램들이다. 거기에 앞서 말한 농촌

드라마가 두편. 잃어버린 고향을 보고 싶은 이들이 많기 때문이겠지, 서울의 시청률이 지방보다도 높다.

에 몇월며칠 나왔다는 건 출연자들에겐 플래카드나, 액자로 해서 내걸만한 ‘사건’이다. 그들에게 이 프로는 최고의 프로다.

제조 간장의 유통 틈새를 비집어 낼 수 없는 영세 상인들, 메주를 쑤어서 일년을 묵힌 노력을 누가 알아봐주었던가. 전기 사고가 빈번하니

농기구 관리에 조심하라는, 산불 조심하라는 그런 당부를 누가 해주던가. 모내기하는 데 덥석 뛰어들어서 노랫자락으로 흥을 돋구다가, 김치에

막걸리 한잔 내온 참에 맛있다고 호들갑을 누가 떨어주는가. 리포터는 연신 놀라며 그들의 고생을 치하해주고, 방송 나가면 그들에겐 판로도

열린다. 여가문화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에게도 나들이 채비를 할 때 이 프로그램은 좋은 길잡이가 된다. 워낙 문의가 자주 들어오는 탓에

방송 끝에는 전화번호와 위치를 가르쳐준다.

현실, 꿈속의 고향과는 너무도 다른

<전원일기>를 방문한 그 방송 프로그램의 결론은 “그들은 오손도손 살고 있었다”였다. 그런데 카메라에 비치지 않는 동안에 김회장

댁에는 큰 사건이 벌어졌다. 아파트를 구해서 나가자는 애들 말에 그러마라고 이야기는 했지만 아버지는 밥을 제대로 먹지도 못한다. 그러면

왜 애들에게 나가자고 했냐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윽박지른다. 결국 TV를 보면서 단란한 가정이 회복되지만 그 리포터는 금동이에게 젊은 사람이

왜 아직 농촌을 떠나지 “못했느냐”고 묻는다.

그리워하는 이는 그곳에 없다. <시사매거진 2580>이 봄기운을 느끼러 간 카메라에는 모두 60이 넘은 아버지, 어머니들만 담겼다(3월18일

방영). 그 고향에 있는 70 먹은 아버지는 아들이 셋이나 있지만, 오라고 하면 저녁에 왔다가 차 막힌다고 다음날 수저를 드는 둥 마는

둥 떠난다 한다. 모가 파릇파릇 자라나는 게 애 키우는 것 마냥 재미가 있어서 농사를 짓지만, 나 다음에 지을 사람이 누구일까 걱정스럽다.

그 옆에 선 어머니는 자신의 발목을 내보이며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해댄다. 언젠가부터 정신을 놓아버린 것이다.

을 보고 산양 키우는 것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해서 농촌으로 내려온 사람이 있다(3월20일 방영). 뜨내기들의 여가활용법이나

농촌 풍경에 목젖이 자극되는 일보다 살 길을 함께 찾는 게 큰일이지 않을까. 그런다면, 팀이 찍는 카메라에도 ‘꿈에도 잊히지

않는’ 고향의 풍경만이 담기지는 않을 것이다.

구둘래/ 객원기자 anyone@cartoon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