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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영감탱이 얘기는 왜 자꾸 꺼내니!˝
2002-08-01

비디오 카페

간만에 우리집에 와계신 할머니는 거실에서 양말을 개고 계셨다. <러브레터>를 다시 빌린 건 할머니에게 일본영화의 감수성을 전달해보고 싶은 생각 때문이었다. 팔순이 다된 나이지만 할머니는 십대에 배운 일본말도 그대로 기억하고 케이블TV의 일본방송도 가끔 보시곤 하니까. 그래서 너나 실컷 보라는 할머니를 꽉 붙잡고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영화를 봤다. 와타나베 히로코와 후지이 이쓰키의 헷갈리는 외모와 관련한 각각의 상황을 열심히 설명하면서. 머리모양과 목소리까지 같은데 처음 보는 사람은 어떻게 식별하라고!

할머니는 자신이 혹시라도 이해하지 못한 부분은 돌려서 다시 보여주고 다른 빨랫감을 가지러 잠깐 자리를 뜰 때면 아예 일시정지를 걸어놓고 기다리는 나에게 손사래를 치며 됐다고 귀찮다는 듯 반응하셨다. 그러나 나의 정성에 결국은 탄복한 건지(라기보단 더이상 갤 빨랫감이 떨어진 뒤에) 마침내 할머니가 오로지 화면에만 집중하는 시간이 오고야 말았다. 어떻게든 별 흥미가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셨지만 나는 그녀가 이미 영화 속 눈의 하얀 이미지에 젖어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3초가 지난 뒤 할머니는 느릿한 이북사투리로 말씀하셨다. “그래도 꽤 괜찮은 영화두나∼!” 그러나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묻자 할머니는 원래의 톡 쏘는 말투로 나를 째려보며 매섭게 한마디 하셨다. “죽은 영감탱이 얘기는 왜 자꾸 꺼내니!” 손원평/ 자유기고가 thumbnail@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