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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덕분에 목숨을 건진 적도 있어˝
2002-08-14

영화를 위해 안전도 기꺼이 내놓았던 감독·배우·스탭들

1984년, 김기영 감독과 <바보사냥>(엄심정·김병학)을 찍는 도중 태백의 탄광촌에 머무른 적이 있어. ‘갈 데까지 갔다’는 뜻의 막장을 그때 처음 경험했는데, 한 사람이 겨우 무릎걸음으로 기어다닐 수 있도록 만든 작은 굴 안에서 질식과 압사의 공포를 느껴야 했지. 당시, 촬영팀을 따라 굴 안으로 들어가려던 나를, 주위에선 “거기까지 뭣하러 동행하냐? 그냥 밖에 있어라”고 만류했지만, 장소를 가리면서 찍는 스틸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극구 함께 갔지. 그런데 공간이 그렇게 작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지. 좁은 굴 속을 떠나니는 매캐한 석탄매연과 쉴새없이 흐르는 땀으로 얼굴과 손이 온통 까만 연탄반죽으로 뒤덮였지. 얼마 안 가 카메라도 작동을 멈추고 말았어. 탄가루가 렌즈와 셔터 등 미세한 기계의 부품에 날아들면서 생긴 일이었어. 결국 카메라 한대를 버리고, 지독한 폐쇄공포를 경험한 것이 그날을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한 거지. 카메라가 고장났지만, 촬영을 마치기 전까진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던 터라 지옥 같은 더위에 시달리면서도 갱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어.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기다리던 탄차가 도착하고, 밖으로 나와 맑은 공기와 햇살을 느끼는 순간 ‘살았구나’ 그런 생각밖에 안 들더라고. 온통 탄가루를 뒤집어쓴 통에 배우나 스탭이나 누가 누군지 모르겠더라고. 지금 생각하면,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저 스틸을 찍겠다고 막장으로 뛰어든 행동이 충분히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었지. 영화를 위해 어디라도 달려가는 사람들이 바로 감독이고, 배우고, 스탭들이야. 영화 이외엔 자신의 안전도 부차적인 문제인 거지.

같은 해 찍었던 <아가다>(김현명 감독, 유인촌·이보희 주연)에서 이보희의 몸을 사리지 않은 연기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거야. 아버지의 간호를 위해 환속한 아가다 수녀가 사모하던 이의 배신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려 눈밭을 헤매는 장면을 찍을 때였어. 눈밭을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몸으로 뛰어가라는 지시를 받자마자 이보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바로 옷을 벗고 몇번이고 같은 장면을 연기했어. 영하 20도의 추위에 모두들 오그라 붙었지만, 이보희는 마치 추위를 모르는 것처럼 행동했지. 컷 사인이 날 때마다 코디네이터와 스탭들이 입혀준 점퍼로 눈사람 모양이 되어선 방금 촬영한 장면을 재차 확인했어. 그런 그녀를 보며 ‘아, 배우는 정말이지 아무나 되는 게 아니구나. 저렇게 자신을 생각지 않은 채 감독의 지시에 무조건 따른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책임감이 무서운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지. 우스갯소리긴 하지만, 배우의 배(俳)자를 가만히 살펴보면, ‘사람(人)이 아니다(非)’란 뜻으로 풀이할 수 있거든. 그게 딱 내 생각이야. “배우란 보통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사람이 바로 배우다.”

보통 현장을 나설 땐 두대에서 세대의 카메라를 기본으로 갖추고 다녀. 흑백, 컬러, 스냅사진을 따로 찍을 수 있도록 말야. 카메라의 모델도 많이 바뀌었지. 니콘 F2까지는 취급해봤는데, 요즘엔 니콘 F5가 최신형이라고 하더군. F3까지는 수동카메라로 출시됐는데, 그중 F2는 완전 기계식 카메라의 명기라고 할 수 있지. 프로용으로 만들어져 가장 많이 썼던 모델은 니코마트(Nikomat)였어. 줄잡아 네댄가 다섯대가 내 손을 거쳐갔을 거야. 니코마트는 70년대 등장한 모델로, 무겁긴 해도 내 입맛에 딱 맞는 기종이었어. 무거운 반면 흔들림이 없고, 어디 부딪혀도 큰 고장이 안 났지. 그만큼 내구성이 좋았고, 마운트 호환도 자유로웠어. 또한 니콘에서 나온 다양한 렌즈를 쓸 수 있었지. 그 밖에도 내 손을 거쳐간 카메라는 독일 카메라 롤라이 플렉스와 롤라이 코드, 일본 교세라 그룹의 야시카 카메라 등이 있었어. 차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부 장식과 개조, 옵션 장착에 온통 돈을 들이붓듯이, 카메라 만지는 사람은 그저 돈만 생기면 좋은 렌즈, 신형 카메라와 기자재에 눈독들이기 바쁘지. 그나마 아이들이 크면서 크지 않은 벌이에 사치를 부리긴 힘들었지만 나도 그런 욕심이 없었던 건 아냐. 좋지 않은 형편이지만, 아이들이 학교에서 재산 현황을 체크해오라는 숙제를 받으면 카메라만큼은 꼬박꼬박 적어낼 수 있었어. 카메라가 텔레비전만큼이나 귀하던 시절의 얘기야. 그렇게 목숨같이 아끼던 카메라 덕분에 목숨을 건진 적도 있어. 국내 영화제작 사상 최대의 참사로 꼽히는, 93년 <남자 위에 여자>의 헬기 추락사고 현장에 바로 내가 있었어. 그때도 스틸을 찍고 있었어. 아침에 현장을 가려고 길을 나서는데, 카메라에 달린 줌 렌즈(Zoom lens)가 툭 하고 떨어져 깨진 거야. 현장에 도착해서 촬영감독과 조명기사에게 그 이야길 했더니, “아, 백 기사님, 오늘 일은 다 하셨네요. 어쩌죠” 하고 놀림 반, 걱정 반을 하는 거야. 하긴, 남자주인공이 헬기를 타고 신부가 기다리는 결혼식장에 도착하는 장면을 찍는데, 줌 렌즈가 없으면 말짱 헛일이었지.

구술 백영호/ 스틸작가

54년간 영화현장 사진에 몸담음

<유관순> <생명> <임꺽정> <만다라> <바보사냥>

<바보선언> <아다다> 등 100여 작품 5만여컷의 스틸작업

정리 심지현 simssisi@dreamx.net·사진 정진환 jungj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