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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더버그 <풀 프런틀> 로 초심복귀
2002-08-21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1989년 26살에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미국 독립영화의 새 황금기를 이끌어갈 재목으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이후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고, 98년 <조지 클루니의 표적> 이후로는 2000년 <에린 브로코비치>와 <트래픽>, 2001년 <오션스 일레븐>을 잇따라 내놓으며 할리우드 입맛에 너무나도 딱 맞는 흥행감독으로 사뿐히 변절했다.

번개같이 대작 한 편을 만들어내고 배우들을 잘 다루기로 소문난 그는 <에린 브로코비치>와 <트래픽>이 같은 해 동시에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고, 줄리아 로버츠에겐 첫 주연상을 안겨주었다. 이쯤 되면 할리우드에서 적당히 파워를 과시하면서 마약과도 같은 흥행영화 제작의 묘미에 푹 빠질 법도 하건만 올 여름 그가 내놓은 작품은 초심으로 돌아간 저예산 실험영화다.

마니아들로부터는 “흥미로운 영화”, 일반 관객들로부터는 “뭐가 뭔지 헷갈리고 지루하다”는 상반된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화제작은 완전누드란 뜻의 <풀 프런틀>(원제 Full Frontal). 소더버그 자신이 “지금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를 만든다면 바로 <풀 프런틀> 같은 영화가 될 것”이라고 말한 이 영화는 18일동안 2백만달러를 들여 완성됐다. 그래도 캐스팅만은 화려하다. 줄리아 로버츠(벌써부터 줄리아 로버츠 주연 영화 중 최저 흥행수입을 기록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데이빗 듀코브니, 캐더린 키너가 중심인물로 등장하고, 브래드 피트와 <세븐>의 데이비드 핀쳐 감독이 크레딧 없이 카메오로 출연한다. 배우들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는 소더버그의 동원력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영화 속 영화의 형식을 취하는 <풀 프런틀>은 할리우드 영화산업과 관련을 맺고 있는 9명의 하루 일상을 쫓으면서 할리우드의 생리를 풍자한다. 중심을 이루는 축은 여배우인 프란체스카(줄리아 로버츠)가 흑인배우 캘빈(블레어 언더우드)과 함께 찍는 영화 속 영화 <랑데부>다. 여기서 잡지사 여기자 캐더린 역을 맡은 프란체스카는 캘빈이 연기하는 잘 나가는 흑인배우 니컬라스를 인터뷰하면서 사랑에 빠진다. 소더버그는 이 영화 속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처럼 깨끗하고 반들반들한 35mm 필름으로, 현실세계인 9명의 일상은 보기에 불편할 정도로 거친 디지털 화면으로 찍어 두 세계와 매체를 선명하게 대비시킨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랑데부>의 프로듀서인 파워맨 거스(데이비드 듀코브니)를 통해 연결되어 있고, 모두들 그의 40세 생일파티에 초대돼 한 자리에 모여 비극적인 사건을 목격하면서 영화는 절정에 이른다. 거친 화면, 왔다갔다 파편적인 줄거리 전개 등이 영화를 난해하게 만들지만 영화에 대한 유머섞인 자의식이 마니아들에겐 큰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소더버그가 맨 마지막에 드러내는 트릭 또한 거친 화면을 보상해주고도 남는다.

도그마 영화처럼 찍은 <풀 프런틀>을 만들기 위해 소더버그는 배우들에게 10계명을 적은 노트를 전달했다고 한다. 개인 트레일러는 제공되지 않으며 촬영장엔 스스로 운전해서 올 것, 하지만 재미는 만끽하게 될 것이란 게 주요내용이란다. 아무튼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실험하는 ‘초심으로의 복귀’를 목격하는 것은 늘 즐거운 일이다.

로스앤젤레스/이남·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