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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세 미키오 회고전,8월24일부터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려(3)
2002-08-21

미지의 아버지를 영접하라!

나루세의 인물들 - ˝살겠다!˝

우리가 만약 나루세적인 세계라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면 그 세계의 거주자로서 우선 편입될 만한 인물들은 가족과 자기 자신의 삶을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들이다. 나루세의 영화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문제를 주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돈을 빌림으로써 해결하려 한다(아니, 그들의 처지상 그럴 수밖에 없다). 예컨대, 오빠로부터 소아마비로 고생하는 아들을 수술시켜야 하니 수술비를 마련해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받는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1960)의 게이코가 그런 인물이다. 어떤 인물이 누군가에게 돈을 빌린다는 것은 나루세의 영화에서 가장 빈번하게 나오는 장면들 가운데 하나다. 이것은 돈을 빌리는 나루세의 주인공들을 종종 무능력한 기식자와 거만한 빚쟁이 사이에 끼여 어쩔 줄 모르는 인물로 만들곤 한다. “영화역사상 가장 (섬세하게) 물질주의적인(materialist) 영화감독”- 저명한 영화평론가 필립 로페이트의 말을 빌리면- 인 나루세는 이런 식의 설정을 통해 그의 주인공들이 사회 속에서 얼마나 고통받는 존재들인가를 이야기한다.

나루세적인 세계에 살고 있는 또 한 부류의 중요 인물들은 상대방의 사랑을 온전히 차지하지 못해 불행을 겪는 자들이다. 이들 또한 나루세의 세계에서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부운>(1955)의 유키코는 예전의 사랑했던 기억을 못 잊어 유부남인 도미오카를 찾아오지만 병든 부인과 새 애인 모두와 작별한 그와의 사랑을 결국 이루지 못하고, <여자가 계단을 오를 때>의 술집 마담 게이코는 사별한 남편에게 했던 약속을 어기면서까지 자신이 평소 마음에 두고 있던 은행 간부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바로 그때 그녀는 자신이 어느 쪽과의 관계도 모두 단절되었음만을 알게 될 뿐이다. 이런 관계의 엇나감은 <산의 소리>의 경우에서 보듯 부부 사이라고 해서 비껴가지는 않는다. 정말이지 퉁명스런 태도로 여간해선 관계의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는 나루세의 영화들은 도널드 리치의 표현대로 “삶 그 자체의 불가능성”에 대한 영화라고 말해도 결코 틀리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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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세의 여인들-패배와 더불어 사는 세상살이

나루세의 주인공들, 특히 여성들은 삶이라는 굴레 속에서 운신의 폭이 넓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런 자신의 인물들에 대해 나루세는 이렇게 표현한다. “만일 조금만 움직인다고 해도 그들은 곧 벽에 부딪치고 말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에게는 삶을 산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고통과 위험에 직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할 때 나루세의 여인들은 미조구치의 여인들과 만나게 된다. 궁녀의 신분에서 전락을 거듭하는 오하루(<오하루의 일생>, 1952)의 예에서 보듯이 미조구치의 여인들은 종종 나루세의 여인들과 마찬가지로 수난의 과정으로서의 고통스런 삶 앞에 서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 앞에서 미조구치의 여인들은 억압을 우아하게 감내하면서 점차 미학적 존재쪽으로 다가갔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우미(優美)적 세계의 일원이었다. 그러나 지극히 현실적인 존재로서 나루세의 여인들은 희망이 산산이 박살난 비극적 세상 속에서도 쉽게 굴복하지 않는다. 그들은 여하튼 삶을 힘겹게 견딤으로써 자신들만의 품위라고 표현할 만한 것을 이끌어낼 줄 안다.

<만국>(1954)에는 과거에 화려한 게이샤였다가 지금은 그저 볼품없는 중년여성일 뿐인 두 여인이 같이 술을 마시는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한 여인이 “…인생은 끝없는 여행/ 당신은 홀로 걷네/ 여행이 끝나면/ 당신은 홀로 죽고 다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네”라고 술에 취해 노래한다. 자식들마저 품에서 떠나보내고 홀로 남을 이들은 인생의 허무함을 이야기하는 이 노래가사가 그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심정을 잘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곧 이들은 자신들이 이 고통스런 세상에서 살아남을 이유가 있음을 깨닫는다. 나루세의 영화들은 무엇보다도 이들처럼 외로운 여인들이 패배가 예정된 이 세상에서도 끈질기게 살아가는 모습을 흘러가는 그대로 면밀하게 포착함으로써 관객에게 미묘한 감동을 주는 명편들이다.

평범한 컷, 비범한 숏

촬영현장에서 본 나루세 미키오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는 나루세 미키오의 1937년작 <눈사태>에 조감독으로 참여하면서 많은 것을 건질 수 있었다고 말한다. “나루세는 아주 짧은 숏들을 연결하는 방식에 의존했는데, 완성된 영화를 보면 이들 접합된 숏들은 마치 단 한개의 롱테이크처럼 보였다. 흐름이 너무 뛰어나서 접합된 표시가 전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얼핏 보면 조용하고 평범해 보이는 짧은 숏들의 흐름은, 사실상 격렬한 조류가 조용한 수면 밑에 가려진 깊은 강과도 같았다. 이것에 있어서 그의 자신만만한 재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나루세 영화의 대표적 ‘얼굴’ 역할을 했던 여배우 다카미네 히데코는 나루세의 영화들이 분명 배우 중심의 영화이면서도 실제로 나루세가 연기지도를 거의 하지 않았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전해준다. “나루세는 그저 과묵한 사람에서 그치지 않았다. 영화를 촬영하는 도중에도 그는 무엇이 좋거나 나쁜지, 무엇이 흥미있거나 진부한지에 대해 결코 말하지 않았다. 그는 완전히 반응이 없는 감독이었다. 나는 그의 영화들 가운데 20편 정도에 출연했지만, 그가 내게 연기지도라는 걸 한 순간은 한번도 없었다. 그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연기할지를 결정하는 건 항상 순전히 내 몫이었다.”

나루세 밑에서 조감독을 했던 오카모토 기하치는 로케이션 촬영을 싫어했고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적은 스탭과 함께 일하려고 했던 나루세라는 영화감독의 ‘소심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가 로케이션 장소를 찾아다닐 때였다. 촬영감독이 ‘여기가 촬영할 곳인가요?’ 하고 묻고는 팔을 넓게 펴서는 넓고 복잡한 두 대로가 교차하는 지점을 가리켰다. 그러면 나는 머리 속으로 대충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엑스트라는 50에서 60명 정도, 자동차 대여섯대, 교통 통제할 사람 열명이 필요하겠군.’ 그러나 그때 나루세는 반대방향을 향하더니 두손으로 프레임 모양을 만들어 협소한 프레임을 가리켰다. ‘여기면 되겠어.’ 그것은 지하철 입구였다. 이 비좁은 장소에서 우리는 다카미네 히데코라는 스타 곁에 불과 두세 사람만이 지나가게 하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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