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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팔찌가 있던 자리
2002-08-22

신경숙의 이창

나는 액세서리가 거의 없다. 목걸이 한개, 반지 한개, 그나마 귀걸이는 한개도 없고 다른 것들도 한개씩이나 있을까 말까이거나 없다. 스무살 안쪽으로 기억된다. 서울에 있던 내가 목걸이를 하고 시골에 내려간 적이 있다. 아버지가 물끄러미 내 목을 보셨다. 그리고는 목걸이가 어디서 났느냐고 물으셨다. 어디서 나고 말 것도 없는 하잘것없는 것이라 내 대답도 시큰둥했을 것이다. 내가 시골에 머무는 동안 내내 내 목에 걸려 있는 반짝이는 목걸이가 마음에 걸린 아버지는 기어이 그런 것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고 꾸지람하듯 말씀하셨다. 나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아버지가 또 말씀하셨다. 그런 것은 정인들이나 나눠 갖는 것이라고 하셨다. 아버지에겐 목걸이나 반지는 무슨 정표로만 쓰인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이제 스무살 된 딸이 반짝이는 목걸이를 목에 걸고 다니는 게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늘 병약하신 탓에 아버지는 일찍부터 내 연민의 대상이었다. 유년 시절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늘 어딘가 아파 보이는 아버지의 말씀을 가능하면 다 들어주는 것이었다. 참, 별나시네, 생각했지만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목걸이를 풀었다. 그냥 스쳐지나가듯 생긴 일이었는데 은연중에 아버지 생각이 내게 각인된 모양으로 그뒤로 목걸이나 반지를 스스로 사게 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누군가에게 받고 싶은 적은 이따금 있었지만 돈이 드는 것이라 사달라고 말하기도 그랬고 그런 것은 또 말해서 얻어내는 것은 아니라고 여겨졌다.

그런 내게 한꺼번에 많은 양의 나무팔찌가 생겼다. 지난해 여름과 올 여름에는 외출할 때 오른쪽 팔에 나무로 만든 얇은 팔찌를 네개쯤 겹쳐서 달고 나가곤 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 팔찌에 관심을 보였다. 줄까? 물으면 여성일 경우에는 어김없이 네, 이다. 그렇게 나눠준 사람이 꽤 여럿인데도 이년 전 겨울에 앙코르와트에 갔을 때 생긴 나무팔찌는 아직도 상당한 숫자가 내게 남아 있다. 앙코르를 여행했을 때의 느낌은 아직도 내게 생생하다. 비록 밀림 속에 천년 동안 감춰져 있던 것이라 해도 그런 찬란한 유적을 품고 있는 민족의 당대의 현실은 말할 수 없이 열악했다. 그 장엄했던 유적들. 일부러 찾아나설 것도 없었다. 앙코르에 들어서기만 하면 그냥 여기저기 광대한 유적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우리나라에 있으면 국보로 취급될 탑들과 조각품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우뚝우뚝 서 있는 풍경이라니. 그런 유적이 민망할 정도로 그곳 사람들은 너무나 궁핍해 보였다. 거대한 예술품이랄 수 있는 앙코르사원들을 품고 있는 씨앰립에 도착했을 때는 늦은 밤이었는데 거리는 가로등 하나 없이 캄캄했다. 시설은 되어 있는데도 그랬다. 어떻게 된 일인가 물으니 일년에 단 한번 국왕의 생일날 가로등을 켠다고 했다. 홍수가 나 길이 유실된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국가에서 손을 쓰지 못하니 주민들이 징검다리를 놓은 모양이었다. 자동차가 그곳을 지나가려하니 통행세를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주면 받고 안 주면 안 받았다. 돈을 안 내고 지나가는 이에게 오히려 미안한 듯 그들은 손을 흔들었다. 그런 사람들을 어찌 찬찬히 살펴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놓여 있거나 그보다 더 누추할 수는 없을 지경인데도 사람들은 대개들 선하게 웃고 있었다. 그들을 측은하게 봤던 마음이 나중에는 그들이 불가사의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어느 날인가. 물을 지나 있는 사원에 들어가려고 배를 탔을 때 깡마르고 눈은 까맣고 얼굴은 구릿빛인 꼬마아이들이 우르르 따라붙었다. 그중 우리와 함께 배에 오른 아이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둘이었다. 애처러워서였을 것이다. 일행 중의 한분이 여자아이가 팔려고 들고 있던 해적판 책을 샀다. 여자아이의 얼굴엔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팔지 못한 나무팔찌가 팔에 잔뜩 걸려 있는 남자아이의 눈은 흔들렸다. 값이 정확히 얼마인지를 몰라 1달러를 내밀었더니 양팔에 걸고 손에 들고 있던 나무팔찌를 죄다 내주며 행복하게 웃었다. 1달러에 그렇게 많은 팔찌를 갖게 될 줄도 몰랐지만 1달러에 누군가 그렇게 행복하게 웃을 줄은 더욱 몰랐다. 나무팔찌를 매달고 외출했다가 누군가에게 풀어주고 오는 날은 그 남자아이의 입가에 번지던 웃음이 무슨 정표처럼 떠오르곤 한다.신경숙/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