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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터를 켜라> O.S.T
2002-08-22

생활의 냄새가 물씬

그림을 붓으로만 그리는 게 아니듯 음악을 콩나물 대가리로만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콩나물 대가리를 능수능란하게 잘 솎아내는 프로페셔널 음악가도 있지만 꼭 그 실력이 음악실력과 동격인 것은 아니다. 의외로 음악을 하는 ‘감’은 생활에서 많이 얻어진다. 특히 대중음악의 경우는, 음악 자체가 삶의 환경을(정확히는 ‘소리의 환경’)을 이루는 요소의 하나이기 때문에 삶의 흐름을 제쳐놓고는 좋은 음악을 해낼 수가 없다. 경적 소리, 보일러 소리, 모터 돌아가는 소리, ‘배추사려’ 하고 외치는 어느 배추장수 아저씨의 목소리와 어디선가 라디오 같은 데서 들리는 친근한 음악 소리는 구별없이 섞인다. 음악은 우리의 기억 속에 ‘음악’으로 새겨지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의 일부로 새겨진다.

가수 윤종신은 주로 그 ‘환경의 일부’로 새겨진 음악들의 형식을 의도적으로 참고함으로써 호소력을 획득해왔다. 그가 히트시킨 ‘두왑’ 스타일의,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복고적이고 따뜻한 노래는 그냥 ‘음악’이 아니라 우리 삶에 흔적을 남긴 그 스타일에 대한 회고 자체에 호소하고 있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그의 음악에서는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생활의 흔적’ 같은 것이 느껴진다. 때로는 진부하고 남루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래, 그래도 너밖에 더 있냐’ 싶은 따뜻함과 친근함을 지닌 그 일상의 냄새들 말이다.

그가 015B의 객원가수로 데뷔한 것이 1990년. 1집 <처음만날때처럼>에서 시작하여 최근작 <그늘>까지 벌써 9장의 앨범을 발표했으니 이제 중견 가수이다. 그런 그가 장편 극영화의 음악을 맡았다. 영화음악가로는 데뷔인 셈. 그런데 데뷔작을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도 친분이 있는 모양이지만, <라이터를 켜라>의 장항준 감독과 윤종신은 서로 분위기가 통한다. 300원짜리 일회용 ‘라이터’와 ‘예비군 훈련’ 같은 일상적 소재들을 중심으로 깡패액션과 시대극적인 요소를 버무리고 있는 영화에 윤종신의 음악은 큰 무리없이 맞아들어가고 있다.

윤종신은 이 영화에서 그의 장기인 ‘생활의 냄새 풍기기’를 십분 발휘하고 있다. 메인테마는 70년대 B급 액션물의 테마음악에 뼈대를 제공하고 있는 <샤프트>의 분위기를 활용하고 있다. 와와 기타 사운드와 브라스, 그리고 스트링을 결합한 이 사운드는 비정한 느낌과 상큼한 느낌을 함께 보여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기억 속에 있는 ‘B급’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준다는 장점이 있다. <이등병의 편지>를 위트있게 비튼 <어느 예비군의 편지> 역시 차용과 변형을 통해 기억을 환기시키는 키치적 발상에서 비롯한다. <밤차>에서도 윤종신의 감각이 드러난다. 원곡의 느낌을 살리면서도 약간 과장된 샤우팅을 통해 살짝 코미디를 하고 있다.

물론 그의 코미디는 슬랩스틱이 아니다. 살짝 미끄러짐으로써 사람들의 기억을 잠깐 기우뚱하게 흔든다. 음악을 가지고 이렇게 놀 줄 아는 실력은 콩나물 대가리 배열하는 훈련을 열심히 했다고 해서 얻어지지는 않는다. 윤종신이 예비군 훈련을 받는 걸 한번 상상해 본다. 그 역시 바랜 예비군복을 입고 하릴없이 꽁초를 발로 밟으며 오후 5시가 되기를 염원했을 것이다. 어딘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성기완/ 대중음악평론가 creole@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