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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히로시마애니메이션페스티벌 [2]
2002-09-03

논쟁도, 발견의 즐거움도 없다

<모두 73개 작품이 경합을 벌인 경쟁부문의 대상은 마이클 두독 드 비트의 <아빠와 딸>(Father and Daughter)이 지난해 안시페스티벌에 이어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아빠와 딸>은 관객이 선정하는 ‘오디언스상’도 함께 수상했다. 2등격인 히로시마상은 영국의 수지 템플턴이 제작한 <개>(Dog)가 수상했다. 오브제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이 작품은 오랫동안 정들었던 노쇠한 개를 안락사시키는 아버지와 아들의 미묘한 심리를 꼼꼼하게 그려 호평을 받았다. 데뷔상은 스탈린 치하의 모스크바의 한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다룬 러시아의 <이웃들>(The Neithbours)이 수상했고, 렌조 기노시타상은 토속적인 색감과 이국적인 이야기틀이 인상적인 프랑스 로사나 리에라의 <물고기 사냥꾼>(Fish Hunter)이 수상했다.언뜻 수상작만 보면 여느 때와 다름없이 명성있는 작가와 신진들이 고루선정된 것으로 보였지만 올해 히로시마페스티벌은 그 어느 때보다 맥빠지고 논쟁도 없는 지루한 대회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웠다. 원래 다른 페스티벌에 비해 행사구성이 단조롭고 평이하다는 특성이 있기는 하지만, 유난히 이번 9회 대회에는 주목할 경향이나 작가, 작품이 보이지 않았다. 그랑프리를 탄 <아빠와 딸>을 비롯해 <이웃들>, 국제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한 폴 드리센의 <빙산을 본 소년>, 우수상을 탄 조지 슈피츠게벨의 <소녀와 구름> 등 입상작의 상당수는 이미 다른 페스티벌, 특히 지난해와 올해 안시페스티벌에서 선보인 작품들이었다.

냉정히 말하면 올해 히로시마페스티벌에서 발굴하거나 탄생시킨 새로운 작품은 없었다. 독특한 작품경향으로 눈길을 끌거나 논쟁을 일으키는 것들도 거의 없었다. 그래도 역대 히로시마페스티벌에서는 애니메이션의 최신 조류를 알 수 있는 작품들이 있었는데, 올해는 이렇다 할 흐름을 이야기할 만한 것들이 없었다. 뒤죽박죽의 작품선정은 작품선정 위원들이 과연 무슨 기준과 시각을 가지고 본선 진출작을 골랐는지 적잖은 의심이 가게 할 정도였다.더구나 경쟁부문을 제외한 기획전은 지금까지 했던 것 중 최악이라는 비판을 들어도 할말이 없을 정도로 부실했다. 올해 기획전은 존 휴블리와 페이스 휴블리 부부의 회고전, ASIFA 거장 회고전과 자그레브 필름 회고전, 일본 OVA의 역사, 애니메이션 속의 일본 등이 마련됐는데, 대부분 기존에 접했던 작품들을 다시 재정리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나마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페렌 카코나 스토얀 두코프의 작품전이 조금 눈길을 끌 정도였다. 상설전시회 역시 일본 ASIFA 20주년 기념전이나 전쟁동화전 등은 억지로 행사를 위해 마련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을 정도였다. 수요·공급 불균형으로 매너리즘 빠져이처럼 히로시마페스티벌이 심한 매너리즘에 빠진 데는 무엇보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심화한 데서 첫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최근 안시페스티벌이 2년제에서 매년 개최로 변경하고 서울과 베이징에도 새로운 페스티벌이 생기는 등 애니메이션페스티벌의 수가 부쩍 늘었다. 한해에만 국제적인 규모의 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 5개 이상 열리는데, 여기에서 관객의 주목을 받을, 일정 수준 이상의 작품은 한정돼 있다. 자연 작품들이 겹치면서 페스티벌간에 차별성을 갖기가 어려워졌다. 실제로 올해 처음 히로시마페스티벌과 같은 해에 열린 안시페스티벌 역시 예년에 비해 저조한 작품수준과 부실한 행사내용으로 많은 실망을 안겼다.히로시마페스티벌이 부진한 데는 ‘사랑과 평화’라는 행사 슬로건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주최쪽의 경직성도 한몫을 했다. 원래 히로시마페스티벌은 2차대전 때 일본에 원폭이 투하된 도시를 무대로, 애니메이션을 통해 반전과 평화를 강조하는 행사이다. 즉 일본이 전쟁의 피해자라는 기본적인 시각에서 출발한 행사였는데, 올해는 유난히 이를 의도적으로 강조하는 경향이 강했다. 어린이 눈으로 본 전쟁의 참혹함과 비극을 다룬 ‘전쟁동화전’이 이런 작위적인 목적성의 대표적인 행사였다. 특별히 눈길을 끄는 작가나 작품들이 부족하다보니 나름대로 택한 차선책이었겠지만 이러한 노골적인 ‘프로파간다’적인 경향은 애니메이션을 즐기고 감상하려는 이들을 크게 실망시켰다. 나름대로 탄탄한 기반을 지녔다고 평가됐던 히로시마페스티벌의 기대 밖의 부진은 올 가을 열릴 우리 애니메이션페스티벌들에도 적지 않은 교훈을 주고 있다.히로시마=글·사진 김재범/ <스포츠투데이> 기자 oldfield@chollian.net▶ 제9회 히로시마애니메이션페스티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