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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킨 파크의 <Pts. Of. Athrty>
2002-09-04

상업과 예술 사이

제작연도 2002년 감독 네이선 콕스, 조셉 한 출연 체스터 베닝튼

그것이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되었건 진지한 예술적 고민의 소산이건 간에, 궁극적으로 뮤직비디오의 제작동기가 음반의 판매홍보 목적에서 비롯된다는 사실 자체에 영향을 끼치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것은 곧 뮤직비디오가 상업광고의 중요한 속성을 숙명으로 타고난 미디엄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따라서,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게 제작되었음을 전제로 한다면, 그 둘 사이의 차이점은 프로그램의 안과 밖으로 나뉘는 적용 위치와 허용되는 러닝타임의 길이 따위로 밖에는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게 되고 만다.

주지하다시피, 상업광고의 미덕은 소비자들에게 상품에 대한 이미지를 각인시켜 판매량을 극대화하는 데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에 따르자면, 가장 뛰어난 광고는 별볼일 없는 ‘후진’ 상품을 질적으로 비교우위에 있는 경쟁상품보다 더 많이 팔아먹도록 만든 것일 터다. 메타포를 인용한 내러티브와 가공할 스펙터클로 무장한 영상은 결국 상품의 이미지를 격상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도구인 셈이다.

아이로니컬한 것은 그것의 예술적 가치가 만약 존재한다면, 바로 그 같은 도구들을 사용하는 과정 중에 확보된다는 점이다. 그것은 곧 하나의 상업광고가 상품의 판매 촉진에 기여해야 한다는 필요조건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그 자체로 완결된 상상력 혹은 그 밖의 영상 이미지의 예술성에 대한 기존의 보편적 기준을 넘어서는 경우를 가리킨다.

뮤직비디오의 경우도 음반이라는 상품을 광고하(고자 하)는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생래적으로 상업광고의 성격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소구하는 마케팅의 궁극적 대상이, 엄밀히 말해서, CD 알맹이라는 플라스틱 덩어리로 구체화된 사물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예술의 범주에서 파악되는) 음악이란 무형의 창조물에 있다는 것은 그 양자간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며 그 가치기준의 적용범위를 또 다른 모호한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근거가 된다.

(예술적 작품성을 지닌 뮤직비디오를 제작해왔다고 평가받곤 하는 밴드) R.E.M.의 마이클 스타이프(Michael Stipe)는 “음악 자체의 본질을 희석시킬 만한 요소들을 요란하게 덧붙이지 않는”다는 조건을 만족시킴으로서 뮤직비디오가 예술양식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그것은 “최소한, 아주 뛰어난 상업광고”로 평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뮤직비디오의 비실제적 예술>(The Visionary Art Of The Music Video)이란 책의 서언은 “지금 이 시대에 잘 만들어진 뮤직비디오들보다 더 우월한 형태의 ‘상업예술’(Commercial Art)은 없다”고 단언하고 있기도 하다.

린킨 파크(Linkin Park)의 새로운 비디오클립인 <Pts. Of. Athrty>는 상업광고와 예술작품의 미묘한 경계선상에 있는 ‘상업예술’의 쟁점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사례라고 할 만하다. 정교하고 복잡한 3D그래픽으로 구현된 재패니메이션풍의 이 비디오는 적지 않은 자본과 인력이 투입된 창작물이란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풍성한 볼거리를 담고 있다. 그리고 물론, 그 배경은 첨예한 상업광고의 포뮬라에 기반한 것이다.

<Pts. Of. Athrty>는 린킨 파크가 최근 공개한 리믹스 앨범 <Reanimation>에 수록된 트랙이다. <Reanimation>은 지난 한해 동안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록된 그들의 데뷔작 <Hybrid Theory>를 밴드 외부의 DJ와 프로듀서들의 손을 빌려 윤색한 작품으로, 그 엄청난 성공작의 의존적인 부산물인 동시에 그것과 구별되는 가치를 만들어내야만 독자적으로 존립할 수 있는 모순된 한계상황의 단면이기도 하다.

여기서 린킨 파크와 그 소속 레코드 회사가 선택한 것이 바로 뮤직비디오를 통한 적극적 마케팅과 차별화 전략이었고, 그들은 그것을 가능한 한 최상의 수준으로 만들어놓았다. <Reanimation>이라는 타이틀과 재패니메이션풍의 재킷 및 비디오클립, <Points Of Authority>라는 원제를 <Pts. Of. Athrty>로 표기한 것과 같은 변형 타이틀 등은 모두 리믹스 작업을 통해 일렉트로니카 성향으로 표정을 바꾼 사운드 측면과 보조를 맞추기 위하여 세심하게 고려된 기계적인 뉘앙스의 장치들인 것이다.

그 결과 <Pts. Of. Athrty>는 상업광고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완성도 높은 영상작품으로서 상업예술의 모호한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박은석/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