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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의 오!컬트 <마이너리티 리포트>
2002-09-04

태어난 것도 죄,사는 것도 죄

병아리감별사라는 직업이 있다. 부화한 지 24시간 이내의 햇병아리의 항문을 손끝으로 돌출시켜 좁쌀 반 정도 크기의 생식돌기 유무를 육안으로 확인해서 암수를 구별하는 기술을 가진 직업이다. 이렇게 감별된 병아리들은 암수가 상반된 운명을 따라간다. 암컷들은 양계장으로 가서 평생 알을 낳는 기계로 살다가 프라이드 치킨이 되거나 삼계탕이 된다. 하지만 수평아리들은 그대로 폐사된다. 수탉이 양계장에 섞여 자라면 암탉들은 유정란을 생산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달걀 유통에 문제가 발생한다(우리가 먹는 달걀은 천재소년 에디슨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품어봐야 부화되지 않는 무정란이다). 그래서 양계산업에서 수탉은 ‘불필요한 존재’이고 그것을 병아리 시절부터 미리 선별해 내는 직업이 병아리감별사다. 이 기술은 고도의 손기술이 필요해서 80년대 말까지 해외 취업이민까지 보장받는 고부가가치 유망직종으로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양산업이 되고 있다. 그 이유는, 역시나 그 일을 대신 할 수 있는 ‘기계’가 발명되었기 때문인데, 더 끔찍한 사실은, 혹은 더 잘된 일인지도 모르지만, 그 기계는 병아리 감별이 아니라 ‘달걀감별법’을 사용하고 있다. 달걀을 초음파 촬영을 해서 태어나기 전에 이미 컴퓨터로 암수를 구별해내는 장치다. 이 기계의 등장으로 21세기 유망직종이던 병아리감별사들은 다시 실업 걱정을 해야 하고 태어나자마자 죽어갈 수평아리들은 사라졌다.

인간의 세계를 돌아보자. 현재 세계인구 60억명을 넘어섰다. ‘이대로 간다면’이라는 가정하에 산출된 숫자는 그야말로 문제다. 심각한 문제다.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늘어나지 않게 하는 방법’뿐인데 지금까지는 개개인의 현명한 판단에 호소해왔다. 하지만 국민들이 비교적 현명한 판단력을 가진 이른바 선진국은 출산율이 지나치게 낮은 반면 인구가 늘어가는 쪽은 설득이 안 먹히는 국가들이다. 결국 인구증가는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없었으면 더 좋았을 인간과 꼭 있어야 할 인간 부류에 대해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무능한 인간이라고 모조리 폐사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보니 그런 인간들은 부디 태어나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아! 아… 그렇다. 태어나지 않게 하면 되는구나. 인류 모두의 생존과 행복을 위해 인류에게 도움이 안 되는 식충 같은 존재들은 태어나지 못하게 하자. 병아리감별, 아니 달걀감별 기계의 원리를 응용하고 거기에 게놈유전자 분석 자료들을 근거로 어떤 개체들이 결혼을 할 경우 그들의 2세가 어떤 등급의 인간이 될 것인지 계산해서 출산 권리를 배당하는 법률을 만들자. 1등급 인간은 정부 보조금도 주고, 2등급 인간은 고등교육을 보장해주고…. 하지만 3등급 인간 이하는 출산할 경우 고액의 세금을 부과하고, 부모와 국가의 경제능력이 수준이하일 때는 출산권리를 박탈하는 법안을 만들자. 그것이 현실화된다면 세상은 똑똑하고 수준 높은 인간들만으로 꾸미고 인류 생존에 불필요한 식충 같은 인간들에게 더이상 땅과 먹을 것을 내주지 않아도 될 터이다. 인구가 너무 많아지면 ‘태어난 것이 죄’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는 초능력자들에 의해 예지된 범죄를 알아내서 범죄자를 미리 검거한다. 그것은 사후처리가 아니라 사전처리이기 때문에 범죄자는 구속하지만 피해자는 없다는 대단한 효율성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것은 ‘공상과학’일 뿐 현실화되기엔- 기술이 개발되었다 하더라도- 각종 종교계, 인권단체 등등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터이다. 하지만 인구밀도가 인류 전체의 생존을 위협할 때가 되고 영화 속의 예지자처럼 ‘미신적’인 것이 아니고 좀더 ‘과학적’인 장치라면 사람들은 은근슬쩍 동의하게 될지도 모른다. ‘고등인간 감별장치’의 조속한 합법화와 의무적 시행을 말이다.김형태/ 화가·황신혜밴드 http:hshband.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