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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우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_ STAGE2 (2)
2002-09-07

STAGE2 - “현실 대 가상현실, 이원론을 탈출해 카오스에 빠져라”

<성소>는 현실과 가상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허물라고 선동하는 영화다. 그래서 다른 가상현실영화와 게임의 규칙이 다르다. 아니, <성소>는 그 규칙이 아예 없는 거처럼 보이기도 한다. 납득할 만한 설명없이 그 경계를 슬쩍, 어떨 때는 당당하게 내놓고 넘어가버린다.

가상현실에 주목한 이유는.

→ 가상현실이 삶에 있어서 뭔가. 가상현실과 현실은 정말 다른 가치를 가진 건가. 가상현실이 가치없다면 현실도 가치없다. 가상현실이 가치있다면 현실도 가치있다. 현실이 가치없다면 가상현실도 가치없다. 이런 지점에 대한 답을 <금강경>에서 구하고 그걸 운반하는 거. 거기서 말한 건 가치있다, 없다가 아니거든. 다 쓸데없다, 그러면서도 유익하다. 얼마나 잘 운반했는지는 나도 모르지. 그 얘기를 어떻게 들을지, 나는 어떻게 그 얘기를 갖고 갔는지 열어봐야지. 관객이 돼서 봐야지. 아직 같이 볼 기회가 없었으니까.

쓸데없으면서도 유익하다. ?

→ 거기서 그렇게 말하고 있거든. 나는 그 말을 참이라고 생각해. 그 참을 통해서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는 나도 정말 어려운 것 같애. 내가 제대로 했다면 이 영화 끝내고 자비심이 넘쳐야 될 거야. 세상을 볼 때, 가끔 자비심에 넘쳐. (웃음) 아이, 왜 이렇게 말이 꼬이지. 가상현실의 체험과 현실의 체험이 차이가 없다. 그 안에서 희로애락도, 집착도 느끼고 파탄도 느끼고 절망도 느끼고 많은 재미를 느끼겠지. 현실과 뭐 다르냐. 나는 가상현실을 테이터로 보는데, 비디오 게임이든 뭐든 데이터들의 집산이잖아. 사람도 어떻게 보면 데이터의 집산이거든. 우리가 사는 방식은 데이터를 보고 분석하고 그에 따라서 명령을 실행하고 움직인다고. 그런 면에서 똑같다고. 그런데 그 데이터가 얼마나 공허한 건지, 보라고 얘길 하는 거지. 쾌락의 공허함과 비슷하지.

가상현실과 현실이 나뉘어지는 구조가 허술하다. SF영화를 많이 본 사람은 “이게 뭐야” 할지도 모르겠다.

→ 당연하지. 차별이 많이 되니까. 일단은 기존 가상현실을 다룬 영화는 다 SF적인 접근이고, 가상과 현실을 나눴고. 그런 게 나는 참 보기 불편했어. 진짜 세상 보는 눈을 많이 왜곡하고 있구나. 그래서 이 영화를 끝까지 추진할 동기가 나왔거든. 두개를 나누는 것. 크게 보면 다 이원론적 방법이고 그 이원론이 주는 압제와 억압이 너무 싫었어. <금강경>에 나오는 보살의 길, 구도자의 길은 너와 나를 나누지 않는 데서 출발하거든. 그런 차별을 넘어가는 게 아름다운 거다라는 이야기를 하거든.

<아바론> 같으면 가상과 현실의 구분을 무너뜨리는 데 영화 거의 전부를 바친다. 정교한 장치들을 동원해서. 관객이 거기에서 어떤 맛을 느낄 수 있을 텐데 <성소>는 슬쩍 넘어가버린다.

→ 그런 장치를 버리고 싶어서 한 건데. 지금 게임에 들어갑니다, 나옵니다, 이런 장치를 정교하고 그럴듯하게 하려고 하지 않았어. 노골적으로 가상현실에 들어갑니다라는 이야기해놓고 그 다음 단계에 들어가면 이게 게임 속인지 아닌지 몰라. 그 다음 단계에선 게임 자체와 싸워. 그 다음엔 갑자기 또 현실로 나오잖아. 다시 게임을 진행하면 게임인지 현실인지, 끝이, 모른 채 끝나거든. 중요한 건 거기에 물고 물리면서도 영화를 따라갈 수 있게 하는 장치라고 생각해. 그 구별을 무시하고 따라갈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개념은 카오스지. 애매한 걸 그린다고 설정하고, 애매함의 근거로 카오스를, 카오스가 가지고 있는 정당성과 에너지에 주목한 거지. 우린 어떤 자연법칙을 가지고 규정하는 데서 오랫동안 쾌감을 느꼈고 희망을 가졌는데 현대과학에선 다 무너지고 있거든. 상대성 원리에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극복했고, 카오스 이론에 이르면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단 말야. 그 알 수 없는 애매함, 카오스가 주는 에너지. 그게 액션을 휘날리게 하고 영화 양식을 예측할 수 없이 꼬이면서 층위가 넓어지게 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 그 에너지가 전달되느냐가 내 영화의 관건이지.

그러면 이 영화에서 가상현실은 구도, 혹은 깨달음으로 가는 일종의 방편인 셈.

→ 그런 측면도 있지만, 내가 높은 위치에서 그 방편을 쓴 게 아니라 가상현실이 뭐지 하고 물어본 거지. 그게 솔직하지. 근데 가상현실을 묻다보니까 그런 지경에 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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