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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우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_ STAGE1 (1)
2002-09-07

언제부턴가 장선우 감독은 인터뷰에서 선문답처럼 답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게 말장난처럼 들리지 않는 건, 실제로 세계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의 변화가 동반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쁜 영화>(1997)와 <거짓말>(1999)의 중간에 그는 “세상이 지겹게 안 변하는 건 이유가 있을 거다, 변해야 하는 건 나구나”라는 말을 했다. ‘지겹게’라는 흔한 부사에 예사롭지 않은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그 직후 볼품없고 퇴행적인 불륜행각에서, 한 애잔한 사랑의 풍경을 건져낸 <거짓말>은 미추, 선악을 구분하기에 급급해하지 말고 세상 보는 눈을 한번 바꿔보자는 제안이기도 했다.

3년 만에 장 감독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하 <성소>)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온갖 경계와 차별을 넘어 행복의 나라로 가자는 순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로운 형식을 동반하고 있어 영화가 간단하지 않다. 또 불교 경전과 노장철학을 끌어들이는 메시지 자체도 쉬운 게 아니다. 남녀의 사적인 성정치학(<경마장 가는 길>), 세대간 갈등(<나쁜 영화>) 등 남들보다 앞서 낯선 곳으로 달려가 “여기가 전선이야”라고 깃발을 흔들어온 그는 지금 어느 전선에 서있는 걸까. 장 감독은 영화 <성소>를 하나의 게임으로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게임 프로그래머로서 게이머, 즉 관객에게 ‘win’과 ‘lose’를 나눌 기준을 마련했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관객은 이 게임에서 장 감독에게 ‘win’과 ‘lose’를 매기려 할 것이다.

선문답 같았던 장 감독과의 인터뷰 내용을 게임처럼 다섯 스테이지로 나눴다. 장 감독과 함께 영화=게임 <성소>에 log in한다. 글 임범 isman@hani.co.kr·김현정 parady@hani.co.kr·사진 손홍주 lightson@hani.co.kr <성소> - 스테이지 클리어 : 장선우가 가이드하는 <성소> 게임 5단계 프리뷰STAGE1 -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게임이다”

장선우 감독은 <성소>를 시작한 계기 중 하나가 “인터넷과 게임이 당대의 숙제로 다가와서”라고 말했다. 가상현실의 가치가 어떤 건지, 영화 속에서나마 풀어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걸 위해 장 감독은 영화제작도 게임처럼 했다. 미완의 최초 시나리오를 1.0버전이라고 이름 붙이고, 그걸 고치고 여백을 채워가면서 3.0버전까지 만든 뒤, 촬영하면서 3.5버전을 영화와 함께 완성했다. 아울러 “<성소>는 게임을 다룬 영화라기보다 하나의 게임”이라면서 관객을 게이머에 견주었다.

관객이 어떻게 하면 win이고, 어떻게 하면 lose인가.

→ 영화의 엔딩이 정말 해피하게 느끼는 사람은 영화 이상으로 잘 본 거다. 줄거리상 해피엔딩이지만 그걸 슬프게 느끼면 그 사람도 잘 본 거다. 이 둘 다 win이다. 뭐가 뭔지 답답하거나 모르겠으면 게임에 진 거다. (웃음)

왜 그런 생각을.

→ 게임의 경험치나 능력치에 따라서 게임을 끝내는 느낌이 다 다를 거다. 끝냈을 때, 위너는 어떤 느낌을 가지고, 루저는 어떤 느낌을 가질지 예측을 하는 거지. 전에는 영화를 관객이 평가했지만, 이번엔 내가 관객을 평가하는 거지. 나도 게임을 만들었으니까 입장이 조금 달라진 거지. 관객도 게임 플레이어라고 생각하는 거지. 단 정보의 부족으로 혼란을 주고 싶진 않기 때문에 정보는 충분히 주고. 그런데 정보를 어떻게 해석할 건가는 또 남아 있어. 나비랑 왜 싸울까. 나비가 뭐지. 그런데 그 정보는 줄 수가 없는 거거든. 나비는 로딩 기호일 수도 있고 시스템 위에 있는 우리 행복의 열쇠일 수도 있고.

이번처럼 시나리오를 업그레이드하면서 영화 만든 적 있나.

→ 난 보통 한번 쓰면 끝이야. 수정 잘 안 해. 근데 이건 처음부터 버전을 계속 업그레이드시킨다고 생각하고 시작했다고. 게임이니까. 난 내용이랑 형식을 맞추는 편이거든. 그래야 영화가 살아난다고 믿어. 영화 안에서도 내용이 A코스가 있고 B코스가 있어서 선택할 수 있게 했고.

정보를 충분히 준다고 했는데, 영화에 ‘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라는 <금강경> 글귀도 나온다. 그런 걸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불공평해지는 것 아닌가.

→ 그 글귀는 영화에서 시스템이 주인공 주에게 가르쳐주는 힌트지. 관객에게도 힌트이고. 시스템은 악이 아니라니까. 시스템은 가르쳐준다고. 그 힌트를 갖고 승리할지 안 할지는 본인의 역량에 달려 있지. 매뉴얼을 만들어줄 거니까 그걸 보든 딴 책을 보고 알아내든. 힌트를 잘 쓰는 사람 있고, 못 쓰는 사람 있잖아. <금강경>을 미리 볼 필요는 전혀 없어. 관객이 무슨 죄졌어? 하지만 게임처럼 매뉴얼은 참고하는 게 좋겠지. 안 봐도 그만이고.

시나리오를 업그레이드해가면서 찍으면 시간적, 경제적으로 소모가 많아질 텐데.

→ 그렇지. 내용과 형식을 실험하는 동안 시간과 비용은 그만큼 높아지는 거지.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비효율적인 컨셉이지. 그러니까 촬영 중간에 잠적하는 사건도 생기고. 비용문제에 대한 나의 저항이자 미안함, 혹은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했고. 하지만 모든 예술은 양식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을 수 없어.

그 효과가 있었다고 보는가.

→ 사실 이런 영화에선 그렇게 하면 안 돼. 스탭이 두배 이상 많고 로케이션 장소도 어려운 곳이어서 사전 준비를 많이 해야 하거든. 그런데 액션마저도 그 스타일이 그때그때 달라졌거든. 난 챕터마다 액션 스타일이 달라진다고 했는데 액션감독들이 이해 못하는 게 생기더라고. 합의를 갖고 출발했어야 했는데. 이건 게임 같다, 이건 사실적이다, 이건 뻥을 엄청 쳐달라, 이런 걸 그때그때 이야기하고 이해시키기가 쉽지 않더라고. 그래서 결과가 예상을 빗나간 부분도 있고.

그 형식실험 때문에 그 많은 돈을 쏟아붓느냐는 비난도 나올 텐데.

→ 그 말도 맞지만, 그 실험에 그만한 돈을 투자할 수 있다고 본 거지. 중성자 충돌 실험하는 데 엄청난 돈을 쓰는 것처럼. 나는 실험을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지. <마이너리티 리포트>보다는 훨씬 적게 들어가지 않았을까. 영화적 에너지나 가치로는 그보다 못하지 않을 거고. 실험에 가치가 있다면, 비싸도 되지 않겠냐는 뻔뻔한 생각을 갖고 했다고. 돈이라는 것도 공허한 건데. 그 에너지가 크면 돈도 다시 오지 않겠어? 아이, 자꾸 뻔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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