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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각시> 의상 조문수
2002-09-12

`웃기는 8쪽바지`를 아시나요?

버릇이랬다. 긴장하거나, 골똘한 생각에 빠지면 이를 꽉 무는 습관은 결국 조문수(40)의 어금니를 몇 센티미터 아래로 내려앉히고 말았다. 인터뷰가 잡힌 날도 원래 치과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오전 내내 일산의 동네 치과에서 시간을 보낸 조문수는 그러나 독한 기질 그대로 인터뷰 내내 아픈 내색 하나 없다. 조문수의 이력에 귀기울이다보면 불현듯 일본 만화 <춘희>와 <유리가면>이 떠오른다. 적절한 걸로 치면 예전 신달자라는 여류 소설가가 쓴 <물 위를 걷는 여자>에 등장하는 패션 디자이너 ‘난희’가 딱이다. 일 욕심 많고, 성공을 향해 무서운 집념으로 전진하는 모습이 그렇다는 얘기다.

지금이야 해외에서 먼저 알아주는 실력을 갖춘 그녀지만, 84년 건국대 의상과를 졸업할 무렵까지, 그녀는 이론엔 강해도 실기엔 약하다는 지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의상과 학생이 바느질을 못한다는 소리도 그녀를 조바심치게 하지 않았다. 졸업 뒤, 그녀의 오랜 스승인 김자경 선생을 만나고 본격적인 오페라 무대를 경험하면서 그녀는 비로소 배움에 대한 투지와 욕심을 갖춘다. 오페라뿐만 아니라 연극, 뮤지컬, 발레 등 관심 분야가 넓어질수록 그녀는 자신의 능력에 만족하지 못하고 결국 유학을 결행한다. 2년간의 프랑스 유학과 다시 3년간의 이탈리아 유학까지, 도합 5년간의 ‘실력 향상기’를 마치고 그녀는 파리의 전문 극단 De la Scene a la rue에 안착한다. 한국에 돌아온 건 95년. 그녀가 계속 외국 활동을 고집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보다 이방인의 느낌이 싫어서였다. 어느 무대를 가나 자그마한 체격의 동양 여자는 금세 사람들의 눈에 띄었고, 조금이라도 잘하려고 애쓰는 모습조차도 그들에게 신기한 구경거리가 된다는 사실이 그녀를 돌려세웠다.

한국에 건너온 이듬해, 그녀는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작품 대박을 만난다. 4월 한강오페라 창단 오페라를 시작으로, 국립극장, 예술의전당, 국립소극장, 방송사, 대학을 오가며 꼭 12개의 작품을 치러냈다. 혹독한 신고식이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랬나, 낯선 고국의 ‘법’ 앞에서 그녀를 가장 경악하게 만든 건 불가능해 보이는 기간 안에 무대를 척척 디자인해내는 연출가들. <우렁각시>는 그간 도전해본 적 없는 영화의상을 시도하는 계기가 됐다. 남기웅 감독과 처음 만나 작품 컨셉을 얘기하는 자리였는데, 그녀 특기인 ‘나홀로 흥분+감동+아이디어 마구 쏟아내기’로 감독을 반하게 했다는 후문. 판타지영화인 점을 감안해 상상력을 높이는 동시에 설화를 충실히 재현하도록 한국의 선을 많이 차용했다. 등장인물 중 고구마의 ‘웃기는 8쪽 바지’(모두 8개의 천으로 만들어진)나 독노인, 따발총 할멈의 옷은 전통의 향기와 캐릭터의 특징이 잘 묻어난다. 글 심지현 simssisi@dreamx.net·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1984년 건국대학교 의상과 졸업1986∼87년 김자경 오페라단 근무1987년 프랑스 유학 Art & Style 무대의상 전문대학 입학1989년 졸업1989년 이탈리아 밀라노 유학 Teatro alla SCALA 입학1991년 Teatro alla SCALA에서 무대의상 및 데코레이션 Diploma 받고 근무1992∼95년 프랑스 파리 De la Scene a la rue 근무1995년 CreArtsJo(크레아조) 무대의상 오픈1998년 용인대학교 예술대학 연극영화과 무대의상 출강·파리 유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100여편의 뮤지컬, 오페라, 연극, 발레, 영화의상 제작현재 <동물농장> <팬텀> 오페라, 서울대 오페라, <헨리 4세>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