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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의 파시즘, 비상구가 없다
2001-04-04

<쇼! 무한탈출>이 보여주는 황당한 상황, 고통스런 탈출소동

<쇼! 무한탈출> SBS 토요일 저녁 6시

‘생존’을 위해 눈물나는 게임을 벌이고, ‘목표 달성’을 위해 안쓰러운 몸부림이더니, 이번에는 ‘탈출’해야 한다고 대소란이다. 이쯤

되면 주말 저녁 텔레비전 앞은 편안하고 안락한 자리이기를 일찌감치 포기하고, 악다구니들의 투쟁의 장임을 선언한다. 삶의 전쟁터에서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우고 돌아온 안방에는 또다른 전쟁터가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다. 피투성이가 되는 것은 우리가 아닌 그들이니까.

‘전천후 만능 쾌락도사’를 선포한 연예인들이 샌드백이 될 준비를 하고 줄줄이 사각의 링으로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이 우리의 임무다.

그리고 ‘큐’ 소리와 함께 말초적인 신경만 곤두세운 ‘바보’가 되면 그만이다. SBS가 봄 개편을 맞아 3월17일부터 새롭게 선보인 오락프로그램

<쇼! 무한탈출>(연출 남형석·공희철·유윤재)은 제목부터 자못 의미심장하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탈출의 범주가 애초부터 ‘무한’이다. 다시

말해 탈출할 대상이 그 범위가 정해질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것이고, 바꿔 말하면 모든 고통받는 상황으로부터의 탈출이 기획의도라는 말이다.

이 얼마나 대담하고 또한 영리한 발상인가. 적어도 소재가 떨어져 문을 닫는 궁핍한 상황은 연출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막상 프로그램

안으로 들어가 보면 탈출해야 하는 ‘고통’은 황당하고 궁색하다 못해 초라한 모습으로 우릴 맞이한다. 자유롭고 편안해지기 위한 탈출을 생각했다면

미리 마음을 고쳐먹자.

#1. 신인에서 국민가수로의 ‘탈출’

첫 음반을 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생짜’ 신인가수가 과연 국민가수로서의 가능성이 있는지 시험대에 선다. 이를

위해 600명의 ‘시민 대표단’이 꾸려지고, 가수 초년생은 그들 중 80%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힘찬 콧바람을 비롯한 온갖 잡기를 동원한다.

어, 노래로 실력을 인정받는 것 아니었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사실 이 대목에서 그의 노래 실력은 그닥 중요하지 않다. 근엄하게 자리를

지키고 앉은 이 대표단들은 사실 그 가수가 판을 낸 사실도 모르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처음부터 가수 아무개를 구경하고 심사하러 온 것이

아니라, 그저 그에게 호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자리에 앉은 것뿐이고, 따라서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구태여 노래 실력‘까지’

보여줄 필요는 없다. 그런데도 연출진들은 새삼 십원어치의 값도 못하는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한다. 이른바 냉정하고 객관적이라는

‘안티’세력을 출연시킨 것이 방패막이인 듯싶은데, 이들의 역할도 별로 기대할 만한 것은 못 된다. 그들은 결국 이 신인가수가 라이브로 노래를

부를 수 있음을 증명하는 단순한 구실 외에는 역할지어진 바 없음에서다. 이제 단순하게 정리하겠다. 그냥 띄우자는 거다. ‘신인 띄우기’의

오래된 버전업이다.

#2. 一言二口에서 言行一致로의 ‘탈출’

God의 김태우가 말 실수를 했단다. 뭔고 하니, 옛날 옛적 어느 방송에 나와 “저희는 음식을 남기는 것은 용납 못하죠” 한 게

실수였단다. 왜 실수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거두절미, 문맥무시. 단지 그 말을 내뱉은 게 화근이 되어 이들 다섯 멤버는 하루 저녁에 301가지의

중국 요리를 뱃속에 처형시켜야 하는 고문을 당한다. 음식을 다 못 먹을 때엔 음식값 배상과 더불어 무시무시한 레슬러의 ‘코브라’ 관절꺾기를

겪을 판이다. 그들은 142가지의 음식을 먹는 것으로 1회 방영을 마쳤다. 앗, 이번엔 방송 도중 사회자 김진수의 발언이 문제가 됐나보다.

그는 다음 시간에 온갖 보신음식을 먹어야 하는 고문을 당할 것으로 예상되어진다. 이제는 이유를 들을 차례다. 연출진들은 ‘스타의 말 한마디가

초래하는 엄청난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호언장담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사소한 말이라도 책임감을 갖고 실천케 함을 의도로 했다고 한다. “음식을

남기는 것을 용납 못한다”는 발언이 “아무리 많은 음식이라도 다 먹어치울 자신있다”는 호언장담으로 저도 몰래 바뀌는 순간이다. 앞으로 말조심

할지어다. '막걸리 보안법'보다 더 무서운 법이 여기에 있다.

#3. 계급사회에서 평등사회로의 ‘탈출’

대통령도 하지 못한 숙원의 사업 ‘계급과 계층의 화합’을 이 코너가 하겠다고 나섰다. 거기다 남녀의 화합까지.

보통 큰 과제가 아니다. ‘인간 대화합’이 기획의도라 하면 가히 메시아적인 프로그램이다. 처음엔 그저 이성관계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서로

다른 계층의 연인이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소박한’ 의도로 출발했단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적 통념을 무시하는 몇쌍의 커플이 필요했다고.

그래서 생각한 첫 번째 커플이 ‘엘리트 모범생’ 남자와 ‘비행 가출소녀’다. 사실 조건은 더 있다. 인물이 훤칠하고 능력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엄격한 부모 밑에 예절바르게 큰 남자라는 점과 말 끝마다 욕을 달고 살지만 근본은 착한, 얼굴 예쁜 여자라는 점. 분명 통념을 깨뜨리는

커플이라고 소개했는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조합이다. 굳이 할리퀸 소설을 뒤적이지 않아도 드라마, 영화에서 날마다 보는 게 이런 커플일

텐데, 작가가 남자라서 잘 몰랐던 모양인가. 이 커플을 가지고 무슨 인간 화합에다 고정관념 타파를 이야기한다는 걸까. 오히려 이런 모습이

계층의 전형성을 확고히 다지고, 케케 묵은 ‘신데렐라 콤플렉스’마저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그런데 묘하다. 이 코너를 보고 있다보면

그 와중에도 웃음이 나고 감정의 울림이 있다. 똑똑한 연출이다. 사실 자칫 계층의 차이에서 오는 몰이해와 갈등의 요소들을 로맨스라는 커다란

봉지에다 꽉꽉 봉인시켜버렸으니까. 남는 건 사랑이다. 사랑 앞에 죄는 허물어지고, 남는 건 예쁘디 예쁜 ‘러브 스토리’다. 다음에 준비중인

커플이 혹시 강남녀와 농촌남의 ‘화합’은 아닐는지. 두고볼 일이다.

#4. 못난이에서 예쁜이로의 ‘탈출’

가장 논란이 많이 일었던 부분. 수술 외에는 방법이 없는 못생긴 여자를 성형으로써 외모를 개선시키고 아울러 자신감과 삶의 의욕을

되찾게 하는 것이 코너의 목적이다. 앞에서 나열한 코너에 비하면 가장 의도가 왜곡되지 않고 잘 살아 있는 코너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더는

왜곡될 곳도 없다. 너무나 간단 명료한 목표니까. 그런데 문제가 되는 이유는 두 가지 요인에서이다. 한 가지는 과연 외모를 개선하기 위한

마지막 종착점이 성형수술이냐 하는 점과 또 한 가지는 외모의 개선만이 자신감과 삶의 의욕을 가지도록 하는 요소인가 하는 점이다. 사실 외모의

평가란 것은 다분히 주관적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기준이 있어 그것에 따르도록 강요하는 점에 문제가 있다. 성형수술이 극단적인 예인데, 미의

개념을 단지 ‘예쁘다’로 한정, 축소시키고 그것의 요소마저 획일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쁜 것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 않는가. 예쁘기로만

따지면 이 세상의 단지 몇 %에 불과한 소수만이 그 혜택을 누릴 뿐이다. 아름다움의 접근방법은 다양해져야 한다. 물론, 자신감을 회복하는

데 외모의 개선이 일조하리라는 생각을 비난하기는 힘들다. 그리고 외모의 개선방법 가운데 성형수술을 택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자신의 외모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긍정적인 요소를 발견, 개발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을 인정하기 전에 먼저 부정해버리는

태도를, 방송이 앞장서서 조장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방송이라면 그녀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다양한 시도를 매회에 걸쳐 보여주는

것이 더 낫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크다.

#5. 가학과 엽기와 선정으로부터의 ‘탈출’

현재의 쇼 오락 프로그램이 비난받는 가장 큰 이유 세 가지는 가학성, 엽기성, 선정성이다. 그런데 비난하지 말지어다. 위의 세 가지는

현존하는 오락 프로그램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허탈해서, 더는 못 보겠기에 마침내 포기한 듯) 웃을 때까지’는 이들의 지상과제이자

유일한 목표인 것이다. 오락 프로그램이 ‘재미없어서’ 못 보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즐기지 못하는 것은 오락 프로가 지시하는 ‘룰’에

응하지 않아서이다. 룰은 의외로 간단하다. ‘먼저 머리로 생각하지 말 것, 그리고 정해진 곳에 가선 웃어줄 것.’ 파시즘적으로까지 보이는

오락 프로그램의 행태는 시청자에게 웃어야 할 곳과 야유를 보낼 순간까지 철저히 짚어준다. 이제 창의성의 부재에 따른 표절시비는 더이상 논쟁거리도

안 될 정도이고, 시청률과 상업주의 논란도 더는 지적하기에 고단한 지경에 이르렀다. 얼마 전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언련)에서는 성명서를

통해, <쇼! 무한탈출>의 폐지를 촉구한 바 있다. 하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그들의 말마따나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프로그램이 비단 위의 프로그램만은 아니라는 점. 아이들이 엄마 대신, 선생님 대신으로 삼고 있는 텔레비전이 이제 그 아이들의 뇌를 좀먹고

있는데, 어른들의 대응은 고작 ‘폐지하라’다. 그에 따른 대응책을 내놓길 기대하는 건 너무 무리일까.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더이상

텔레비전이 ‘바보상자’로 더 변하기 전에 그 텃밭을 가꾸고 지켜보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점이다. 더이상 방기하면 정말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텔레비전은 이제 무시무시한 폭탄이 되었다.

글 심지현/ 객원기자 simssisi@dreamx.net

사진제공 SBS 홍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