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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 후진, 감성 전진
2001-04-04

시대 흐름에 맞춰 스타일 바꾼 폴크스바겐 광고

제작년도 2000년 광고주 Volkswagen 대행사 BMP DDB, London 아티스트

Justin Tindan 카피라이터 James Day

어느 초보 운전자가 폴크스바겐을 샀다. 기분이 좋아서 여기저기 차를 몰고 다니는데, 갑자기 차가 털털거리더니 서버렸다. 불안해서 보닛을

열어봤더니 엔진이 없는 것이었다. 황당해서 멍하니 서 있자니 때마침 다른 폴크스바겐 한대가 옆을 지나가다 웬일이냐고 물어왔다. 보닛 속에

있던 엔진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자 그 운전자는 의아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 그래요? 희한한 일이네요. 마침 내 차 트렁크에 엔진이 하나 있으니 가져다 쓰실래요?”

기억의 창고에서 가물가물해져 가는 1980년대 말의 일화. 엔진이 여느 차와는 달리 뒤쪽에 달려 있어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우스갯거리가

되던 시절 이야기다. 폴크스바겐을 다른 차와는 성질머리가 다른 별종으로 만든 주인공은 단연 광고였다. “Think Small”, “변하는

성능, 변치 않는 스타일”, “우리가 풍뎅이를 죽일 수 있을까요?”, “경제학이 뭐 별겁니까?” 등등…. 촌철살인의 유머스런 카피,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아트워크, 단순하면서도 일관된 레이아웃, 제품 하나만으로도 수많은 드라마를 간직한 이 시리즈캠페인은 광고사에 ‘폴크스바겐 스타일’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낼 정도였다.

칭찬에 인색하기로 한 이름 하는 <`graphis`> 같은 잡지는 요즘들어 새삼스럽게 폴크스바겐 아트에 예찬론을 펼치고 있다.

광고에 종사하는 아티스트들의 입을 빌려 창업동지 윌리엄 번벅과 헬무트 크론이 살아 있던 “좋았던 시절”을 다시 떠올리고 있다.

게리 로잔스키(DDB) : “위대한 광고는 위대한 컨셉에서 나옵니다. 아무리 좋은 광고도 연관성이 없으면 공염불일 뿐이죠.

당신의 제품이 폴크스바겐 스타일을 만난다면 지금 상황에서도 효과가 엄청날 겁니다.”

조 알렉산더 (마틴) : “이 광고에 대한 최고의 찬사는 테크닉 지향이 아니라 컨셉 지향적이라는 것이죠. 크론의 광고는 항상

아이디어 중심이었습니다. 그가 가장 싫어한 건 ‘제작 먼저, 아이디어는 둘째’를 실천하는 녀석들이었고요.”

도나 와이넘 (BBDO) : “아트디렉터 헬무트 크론의 작품은 내가 광고를 하게 된 동기의 큰 부분이었죠. 내가 생각하기엔

이 광고는 아트디렉션과 카피가 완벽하게 밀착된 최초의 성과였습니다.”

20년이나 중단되었던 그 폴크스바겐 아트가 다시 부활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세계의 전역에서 그 화려했던 전설이 되살아나고 있다. “80년대에

당신의 영혼을 팔아버렸다면 이제 되찾아올 찬스입니다”라는 카피를 필두로 폴크스바겐 캠페인은 이미 1990년대 말에 재기의 깃발을 올린 바

있다. 제품의 중요한 특징에 변화가 생겼다. 뒤에 있던 엔진을 앞으로 옮기고 파워를 강화했다. 그리고 차체 디자인을 모던하게 바꿨다. 그것을

이런 카피로 일갈하고 있다. “엔진은 앞으로 옮겼지만 심장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광고 아트에도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다. 말하자면 시대의 조류에 맞춘 스타일의 버전업이다. 흑백의 딱정벌레가 있던 자리에는

원색의 비주얼이 눈길을 현혹한다. 서늘한 논리의 카피가 있던 자리에는 현란한 이미지가 들어서 있다. 리바이스가 마티스를, 나이키가 미켈란젤로를,

이브생로랑이 렘브란트를, 코카콜라가 앤디워홀을 상업적 메시지의 전도사로 초대하고 있을 즈음 폴크스바겐이 포스트모더니즘을 채용한 것은 오히려

뒤늦은 감이 있다.

과학자의 두뇌에 예술가의 심장을 합친 것이라고나 할까. 피타고라스의 기하와 미켈란젤로의 회화를 교배한 스타일의 하이브리드. 그러나 폴크스바겐은

변함없이 컨셉의 등뼈를 곧추세우고 있다. 그 옛날 광고에서 차체와 거푸집을 나란히 늘어놓고 “이것(내부)은 바꿉니다. 그러나 이것(외형)은

바꾸지 않습니다”라고 단호하게 선언하던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요즘 유럽에서 한참 유행하는 카툰 시리즈 ‘CRACK’의 컬러풀한 컷들을 전면에 깔아버린 광고. 이미 폴크스바겐의 심벌이 되어버린 딱정벌레

모양의 바탕면에는 흑백신문의 기사가 드러난다. 캐주얼한 물방울 무늬의 순모 바탕에 깔린 스트라이프 양복천, 아이들이 그린 벽화 같은 그림

안쪽에 자리잡은 클래식한 명화, 울긋불긋한 퍼즐을 걷어낸 곳에 보이는 흑백의 타일조각…. 진지함과 중후함을 기호화하는 고전적 소재와 즐거움과

패션을 상징하는 캐주얼 요소의 결합이다.

“뉴비틀스, 겉은 우스꽝스럽지만 안은 진지합니다”라는 슬로건이 굳이 없더라도 메시지는 분명하다. 호들갑스럽게 ‘안을 보라!’고 목에 힘을

줄 필요가 있을까?

폴크스바겐의 아트는 결코 수다를 떨지 않는다. 그렇다고 절제의 강박감에 사로잡혀 허무맹랑한 미니멀리즘에 빠지지도 않는다. 무미건조함을 벗어나려고

애쓰면서도 중언부언하지 않는 비주얼 메시지. 그 스타일은 시대를 넘어서도 변치 않는 궁극적인 아트의 패러다임이다.

이현우 / 프리랜서 카피라이트·광고 칼럼니스트 hyuncom@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