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죽어도 좋아> Free Talking, 조광희 vs 임상수(1)
2002-09-13

♂지·♀지,슬픈 육체, X같은 검열

<죽어도 좋아>의 제한상영 결정은, 잡지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도 참 갑갑하다.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이, 논리와 국면을 달리하면서 전개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출범한 99년부터 지금까지, 싸움의 내용이 똑같다. "체모와 성기 노출 때문에 못 튼다", "전체 맥락을 봐야 한다"는 이 지겨운 공박이 4년째 이어지고 있다. 얘길 조금 달리 풀어보자는 취지로, 영화감독 가운데 독설이 심하다고 알려진 임상수 감독과 지금까지 영화계의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소송에 쉬지 않고 관여해온 조광희 변호사의 대담을 마련했다. 임 감독의 다음 영화 <바람난 가족>(가제)의 시나리오 작업을 '관리'하고 있는 명필름 심보경 이사가 대담 도중에 자리에 동참했다. 대담 기사에는 포함시키지 말라며 개인 의견을 개진했지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돼 함께 넣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대담인 만큼, 남녀 성기에 대한 표현을 살리되 '♂지', '♀지'로 '모자이크 처리'했음을 미리 밝힌다.

■■■ 임상수(이하 임) :: :: 며칠 전 한 신문사에서 감독 데뷔기를 써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바빠서 못 썼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내 데뷔기가 검열과의 투쟁이더라고. 98년에 <처녀들의 저녁식사> 필름을 지금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등급위)의 전신인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이하 공진협)에 냈는데, 그때 영화국장이 어떤 장면이 어떻다, 이런 말을 하는 거야. 그래서 삿대질하고 싸웠지. 헌법이 검열하지 말라는데 당신이 왜 관여하냐. 그뒤로 등급이 안 나오는 거야. 전에 공연윤리위원회(이하 공륜) 심의위원을 오랫동안 하셨던 아버지께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물었지. 이러시는 거야. 기기묘묘하게 뇌물을 주면 받을 것이고 받으면 해결이 될 것이다. (웃음)

■■■ 조광희(이하 조) :: :: 그래서?

■■■ 임 :: :: 계속 등급은 안 나오고, 결국 제작자 차승재가 그때 <유령> 작업실에 가서 편집기로 직접 자르더라고. 나중에 다 복원될 수 있게 해줄게, 하면서. 필름 자르는 제작자 옆에 앉아서 해삼탕하고 고량주 시켜 혼자 홀짝홀짝 먹고 있었지. 제작자는 자르고, 감독은 열 올라서 옆에서 술먹고, 희한한 풍경이었지. (웃음) 자르고 넣었는데 또 등급이 안 나와. 차승재가 혼자서 한번 더 잘라 넣고 등급을 받았지. 그리고는 차승재가 수완을 부려서 메인 상영관에는 자른 걸 틀고, 날개 극장에는 자른 걸 다시 붙여서 틀었지.

■■■ 조 :: :: <죽어도 좋아>는 어떻게 봤어요?

■■■ 임 :: :: 지루하게 봤어요. 지루하게 봤는데, 한 가지 충격이 나도 별 수 없이 저렇게 늙는구나 하는 깨달음이 딱 오더라고. 그 영화가 코미디처럼 안 느껴지고 되게 슬프게 다가오더라고. 그 영화 되게 괴상한 영화예요. 다큐도 아닌 것이, 극영화도 아닌 것이 세계 영화사에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괴상한 영화.

■■■ 조 :: :: 어제 아는 분이 식사하면서 말라르메 시구라며, '육체는 슬프다. 모든 책을 다 읽었건만' 나이든 분이 이런 말을 하시더라고. 그때 이 영화가 떠오르더라고.

■■■ 임 :: :: 한국에서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다니, 한국영화의 자산으로 여기려는 어른스런 생각을 가져야 하는데, 이걸 잘라서 훼손하고 못 틀게 하려는 건, 사회에서 밥깨나 먹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거지. 돈도 없고 젊은 감독이 이런 영화를 찍었으면 이걸 문화자산으로 품을 노력을 하기는커녕 훼손하려는 건 이해가 안 가.

■■■ 조 :: :: 아까 얘기로 <처녀들의…> 때도 이미 법이 바뀌어서 공진협은 등급만 매기도록 한 뒤인데, 어디어디를 자르라는 사인이 왔단 말인가요.

■■■ 임 :: :: 그게 놀라우면서도 핵심적인 거예요. 그렇게 법이 바뀐 뒤에 문제된 게 내 영화가 처음인 것 같아. 등급위원들도 당황하고 있었지. 정홍택씨 만났는데, 왜 삼각팬티 입으면 털이 넙적다리로 이어지는 남자 있잖아, 그걸 갖고 "야, 상수야, 그거 잘라야 되겠더라" 그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선생님, 수영장도 안 가보셨어요? 수영장 가면 그런 남자 천지인데, 그랬지. (웃음) 또 그때 박종원 감독이 등급위원이었는데, 내가 조수도 했고 조연출도 해서 찾아가 만났어. 왜 등급이 안 나오는 거냐, 물었지.

■■■ 조 :: :: 등급이 안 나왔다는 건….

■■■ 임 :: :: 법적인 보류가 아니라 내부적으로 보류를 한 거야. 박종원 감독 말이 자기가 이렇게 주장했다는 거야. 내부적으로는 어디어디를 잘라라 하는 식으로 요구하지 말자, 법이 바뀌었는데. 그러면서 '그렇지만 상수야, 너 이거 그대로 통과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잖아' 그러더라고. (웃음) 그 논리는 그런 거야. 어디어디를 자르라고 말은 안 하겠는데 알면서 왜 그러니, 정리 해와라. 그때 충격받았어. <구로아리랑> 때 가위질 당해서 영화가 개판이 된 사람인데. 그때 내가 연출부였고.

■■■ 조 :: :: 김수용 위원장도 같은 맥락이네.

■■■ 임 :: :: 나도 질문을 던지고 싶어. 당신도 한다 했던 감독인데, 당신 영화를 온전하게 볼 수 있냐 이거야. <허튼 소리>가 문제돼서 영화계를 떠났던 적도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영화가 문제될 이유가 없어. 그런데도 영화공부하는 사람들, 후배 감독들이 보려야 볼 수가 없어. 이게 무슨 미친 짓이냐고.

■■■ 조 :: :: 세월이 지나면 다 수용할 수 있는 걸 텐데.

<<< 이전 페이지

기사처음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