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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낳은 장선우 감독의 시편 11(1)
2002-09-14

금강경 한줄이 하늘가에 걸리고‥‥

장선우 감독이 시를 썼다. 지난 3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마지막 장면을 찍으려고 타이의 푸켓섬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을 때다. "오랜만에 비행기를 타서 벗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뭉쳤던 응어리들이 새어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고공에 올라가서 오는 정신착란 같기도 하고. 뭔가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충동이 치밀었다. 답답함, 그리움, 더러움 이런 걸 쏟아내고 싶어진 것인지…." 비행기를 내려 낙원 같은 푸켓섬에서,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한두달가량 계속 썼다. 그렇게 모인 게 70편 정도.

다음 영화의 제목을 <이별에 대하여>라고 정해놓았던 때문인지, 이별에 관한 시가 많다고 장 감독은 전했다. 70편 중 영화와 관련된 시 11편을 장 감독이 직접 추렸다. "이런 게 시가 되는 건지 모르겠다. 그중엔 낯간지러운 것도 있고. 시집? 반응이 멀뚱멀뚱하면 포기하고. 같이 놀자고 하는 거니까."

맨앞의 <경마장 가는 길>은 이 영화 마지막에 정신없이 소설을 써내려가는 주인공 R처럼, 갑자기 시를 쓰게 된 자신의 심기를 털어놓는 일종의 서시이고,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 나오는 '포다섬'은 타이의 촬영장 가는 뱃길에 스쳐지나갔던 섬이다.편집자

장선우 / 영화감독

경마장 가는 길

나는 그 끝 장면이 좋았다나는 지금 그 끝 장면이 되었다쓰고 쓰고 또 쓰고….'경마장 가는 길. R이 돌아왔다….'---

화엄경

꿈에…여자의 시체를 가루지고 다녔어요한명은 옛 애인 같았는데한명은 조금 아는 여자 같았어요그 여자는 하반신이 잘려나가지고 다니기가 더 힘들었어요

영안실사람들 다니는 문으로 못 다녔어요화장터에 갔는데요 문을 함부로 다닌다고 야단맞았어요다시 나오라고… 옆으로 나오라고…밑으로 나오라고…

울면서 시체를 업고 다녔어요그런데도 그것은비몽사몽 중에도 밤새 뻣뻣했어요이 질긴 애욕!애욕은 보살의 씨앗이라고 그랬나요 화엄경에서?하지만 선재는요이련을 여인숙 방에 홀로 남겨두고막걸리 한잔에 취해산으로 올라가잖아요 별 보려구요그 순진또는 대분심그녀는 떠나고 없었어요.

나쁜 영화

검열에 왕창 짤려 개봉하던 날나쁜 아이들은 대한극장 앞에 뒤늦게 모였다극장 안에 들어가기조차 싫어하던 나를 위로한답시고재경이가 말했다

'감독님 우리 본드 불고 강물에 팍 빠져 뒤질까요?'미친놈…그는 정말 한강 고수부지에서 본드 불다 강물에 빠져죽었다 재경이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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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제작자 신철이는 지옥 갈지 몰라요

거짓말해서근데요 복받을지도 몰라요<거짓말> 만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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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철도 999

메텔…청춘의 시간 속으로 여행하는 여자 그녀를 찾아서 은하철도 999를 타세요

지구를 버려두고명왕성 지나 안드로메다 은하까지떠나보세요

청춘의 시간 은하철도999를 타는 일뿐더이상 뭐 할 일이 있겠어요기계인간의 도시는 무너지고기적은 우는데메텔…그녀는 지구로 돌아가는 기차를 끝내 타지 않았어요안드로메다 플랫폼에 그녀를 남겨둔 채은하철도999는 그렇게 떠나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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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공주-진흙소(泥牛)

아 안 되겠어요바다 속에 진흙소가 어떻게 달을 먹어요아 안 되겠어요버드나무 가지 입에 물고천길 낭떠러지에 매달린천년의 고독길을 물어 그이가 입을 열어 대답하면그이는 떨어져 죽고요길을 묻지 않으면감로수 길어오길 기다리는내 부모가 죽는데요

길을 물어야 하나요말아야 하나요아 안 되겠어요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거미줄에 걸린 나방처럼오늘 하루도 난 산 게 아니에요진흙소 거기 어디 있나요?………달 뜨는 밤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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