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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세요> 촬영 중인 이윤택(2)
2002-09-14

웃긴다,그러나 오버하지 않는다

연극 연출가 이 윤 택

아무리 '멀티플레이어'라고 하지만, 이윤택의 전공 분야는 뭐니뭐니해도 연극이다. 그동안 그가 발표한 대부분의 작품들은 평단뿐 아니라 관객의 커다란 호응을 받아왔다. <길떠나는 가족> <느낌, 극락같은> 등의 작품은 서울연극제의 대상, 작품상 등을 휩쓸었고, 올해의 연극상 같은 상도 여러 차례 그의 몫이었다.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틈새에서 자신만의 기기묘묘한 전략을 구사해온 이윤택의 연극은 지적 형식적 탐색 그 자체였지만 대중성을 놓치지 않았다. 우리의 현실을 투영하는 이야기들을 항상 새로운 방식으로 무대에 올리려는 그는 집착에 가까운 긴장을 뿜는 완벽주의자로 불리기도 한다. 스스로를 포스트모던 리얼리스트, 또는 반성적 모더니스트라 칭하는 그는 90년대 이후 한국 연극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명으로 군림하고 있다. 또 그는 현재 경남 밀양에 조성한 연극촌을 중심으로 다양한 행사를 열어나가며, 한국 연극문화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오구…>는, 하지만 이전 작품과는 확연히 다른 성향을 띤다. "우리 조상들의 것을 내가 주웠다"고 스스로 표현하듯, 현실을 날카롭게 파고들기보다는 우리네의 범상사를 차분히 보듬어내며 민족의식의 원형을 질박하게 탐구하려 한다. 13년 동안 1500회 이상 상연된 이 연극은 한 촌로의 죽음을 통해 인간도 자연과 함께 존재한다는 범신론적인 성향을 보여준다.

문화게릴라 이 윤 택

이윤택의 '나와바리'는 넓다. 문학에서 연극, 영화에서 무용까지 실로 예상치 못한 분야에서까지 그의 손때는 묻어나고 있다. 90년 서울시립무용단과 함께 <불의 여행>이라는 작품을 상연하는 등 그는 5편의 무용공연을 연출했고, 2002아시안게임 시나리오 구성작가로 활동 중인 것을 비롯, 90년 광복절 기념행사 총연출, 2000년 부산 전국체전 총연출 등 각종 대형 행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또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이후 <오세암>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장군의 아들2> 등의 시나리오를 썼던 그는 <우리는…>과 <단지 그대가…>로 대종상 각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행복어사전> <도시인> <머나먼 쏭바강> 등의 TV드라마 각본도 그가 만든 작품이다.

영화감독 이 윤 택

그의 영화 데뷔작 <잘 가세요>는 이런 방대하고 쉼없는 작업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그의 오랜 꿈이었던 영화는 그동안 그가 온갖 다른 분야에서 축적해온 지식과 기술과 감성과 재능이 한데 녹아드는 장이 될 것이다. 그는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연극의 내용을 약간 수정했다. 연극이 촌로와 저승사자간의 에피소드를 수평적으로 풀어나갔다면, 영화는 여기에 역사성과 드라마라는 수직적인 요소를 추가하게 된다. 즉, 이승과 저승 사이에 놓인 사랑이 강조되는 것.

그가 생각하기에 그의 영화가 기존 영화들과 차별성을 가질 수 있다면, 그래서 한국영화에 기여할 수 있는 바가 있다면, 그것은 우선 연기에 대한 강조다. "한국영화는 연기가 문제다. 오버액션을 하지 말라는 것은 맞는데, 그러다보니 배우들이 아예 연기를 하지 않는다. 억눌려 있는 연기를 풀어내는 게 내가 할 일이다." 그가 보기에 영화를 하더라도 배우라면 2∼3시간 버티고 서서 연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보니 기존 영화에선 그런 데서 연유하는 생기가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대부분의 배우를 자신의 연희단 거리패에서 데려왔다. 남자 주연 용택으로 <박하사탕>에서 설경구에게 고문당하는 대학생 역할로 출연하기도 했던 김경익을 기용한 것도 같은 맥락. 연극에서처럼 강부자가 노모 역할을 맡은 것이나 석출 역을 전성환에게 맡긴 것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주연이라 할 수 있는 미연 역할을 맡을 이재은에 대한 기대도 크다. "밥 먹으며 <명성황후>를 보는데, 눈에 딱 띄더라. 눈이 살아 있었다. 눈으로 연기할 줄 알더라."

또 하나, 그가 추구하는 바는 진정한 한국영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우리 영화가 사회성도 있고, 작품적 완성도도 많이 높아졌다고 보는데, 이제 한국만의 독특한 지역성이 담겨 있는 영화가 필요하지 않냐. 그게 아마 내가 할 수 있는 것일 게다." 우리 민족 고유의 죽음에 대한 넉넉한 정서가 잘 묻어 있는 <잘 가세요>를 통해 그는 한국영화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주겠다는 기대를 품고 있다.

잠깐,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길. 그가 추구하는 건 예술영화가 아니다. "나는 대중영화를 지향한다. 내가 존경하는 영화는 타르코프스키의 작품이지만, 좋아하는 영화는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 같은 작품이다. 그리고 주성치 영화에서 드러나는 황당무계함 속의 진실성과 순진성도 정말 좋아한다." 그의 생각대로 된다면 <잘 가세요>는 코믹한 오버연기 대신 상황이 주는 웃음을 가득 담은 '은근한 코미디'로 만들어질 것이다. "연극은 이렇게 만들면 얼마쯤 들겠다는 감이 오는데 아직 영화는 잘 모르겠다"며 못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초보' 영화감독 이윤택은 전날 촬영분이 너무 마음에 든다며 상세한 상황을 열띠게 설명하고 있었다.글 문석 ssoony@hani.co.kr·사진 손홍주 lightson@hani.co.kr

<잘 가세요>는 어떤 영화?

시골 노모(강부자)를 저승으로 데려가기 위해 저승사자 셋이 이승을 찾는다. 저승사자 중 하나(김경익)는 노모가 사는 집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술집 주인 미연(이재은)에게 이상하게 마음이 끌린다. 미연 또한 그에게서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꿈에서 남편을 만난 뒤 죽음을 예감한 노모는 아들에게 굿판을 벌일 것을 요구하고, 마을에선 오랜만에 잔치가 벌어진다. 무당 석출(전성환)네 가족도 실로 오랜만에 한데 모여 굿판을 만든다. 한편 저승사자들은 마을 바깥에 살던 미연이 석출네 막내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뭔가 이상한 낌새를 차린다. 아니나 다를까, 마을 사람들은 아비 없는 자식 정수를 키우는 미연이 굿을 하면 부정을 탄다며 미연을 쫓아내려 한다. 온갖 우여곡절 끝에 굿판이 벌어지고, 이 과정에서 미연은 마을 청년들에게 성폭행당한 뒤 마을을 떠났으며, 이들 중 하나가 노모의 아들인 용택이었음이 밝혀진다. 정수의 아버지는 결국 용택이었던 것. 또한 미연에게서 기이한 느낌을 받았던 그 저승사자가 사실은 자살한 용택이라는 사실 또한 드러난다. 저승과 이승 사이의 맺어질 수 없는 사랑은 뒤늦게나마 애절한 꽃을 피울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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